영화 <바이스> 포스터

영화 <바이스> 포스터ⓒ (주)콘텐츠판다

 
사람의 삶이 후대에 알려지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생전의 위명과 악명이 기록되는 방식으로 후대에 알려진다. 대부분의 평가는 사후에 이루어진다. 마침표가 찍힌 지점부터 그의 인생을 거슬러 올라 보다 완전하게 그의 공적을 더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누군가는 그가 여전히 코로 산소를 들이쉬고 있음에도 평가가 끝나 있다. 왜일까. 이미 선명한 이미지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리라.

<바이스>는 전 미합중국 부통령 딕 체니에 대한 영화다.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딕 체니는 흥미롭다. 그는 모두가 주목하는 권좌가 아닌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자리에 앉았던 인물이다. 동시에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은 남자였다.

딕 체니가 부시 정부의 '강력한' 부통령이 되기까지
 
 영화 <바이스> 스틸 컷

영화 <바이스> 스틸 컷ⓒ (주)콘텐츠판다

 
그는 정치결정력이 뛰어났다. 자신에게 이로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명백히 구분할 줄 알았으며 기회가 주어지면 반드시 잡을 만큼 명민했다. 학점 미달로 예일대학교를 중퇴했지만 다시 와이오밍 대학에 입학해 2개의 학위를 따냈으며 고등학생 시절 고향에서 만난 린 체니와 결혼했다. 와이오밍 주 상원 입법부에 겸임 입법 교생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네 살의 일이었다. 딕 체니는 학력과 결혼 그리고 구직에서 모두 성공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던 것이다.
 
딕 체니의 부모는 민주당원이었지만 정작 딕 체니 본인은 공화당원이었다. 그는 엘리트 코스를 걸었다. 여러 공화당 지사들의 측근으로 일하다가 도널드 럼즈벨트가 경제기획국장이 되는 데 핵심적으로 협력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 백악관 수석을 지냈다. 정치생활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낀 뒤 첫 심근경색을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다섯 번의 재선에 성공했다.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시절에는 국방부 장관을 맡아 걸프전쟁을 다뤘다. 이후 딕 체니는 1992년 정부를 떠나 민간 군사기업 핼리버튼 사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많은 직업적 성취를 달성했고 가정에도 별다른 불화가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했다. 그리고 무난히 정치를 마쳤다. 그는 좋은 아버지였고 다양한 의미로 귀감이 될 정치인이었다.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지 워커 부시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딕 체니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조지 워커 부시는 2000년 대선을 준비하며 러닝메이트로 딕 체니를 원했다. 아버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치를 배웠던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시야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딕 체니의 정치경력은 굉장히 매력적인 카드였다.
  
 영화 <바이스> 스틸 컷

영화 <바이스> 스틸 컷ⓒ 콘텐츠판다

 
그러나 딕 체니는 여전히 예의 그 명민함과 명석함, 그리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는 부통령직이 단지 상징적인 직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딕 체니는 미끼를 던진다.
 
딕 체니는 부통령의 권한이 대통령에 의해 규정된다는 걸 알았다. 이에 부통령으로 러닝메이트가 되자는 부시의 제안을 듣고 역으로 제안한다. "당신과 나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당신은 직관에 의한 일을 다루지만 나는 조금 더 일반적인 일을 한다"라면서 부시에게 부통령의 권한을 다르게 해줄 것을 요구한다. 부통령이지만 관료들을 감시한다던가, 군대를 관리한다던가, 에너지와 외교정책을 다루던가 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것 참 좋네." 부시가 미끼를 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딕 체니는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남자가 되었다.
 
9.11 테러마저 이용한 정치 세력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되었을 때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철저히 계산하고 저울질하여 손바닥 위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다. 딕 체니는 여실히 후자였다. 부통령이 된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극 중 그는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이 정의로운 선택이거나 미국적 가치에 부합하다고 믿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애초 당위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국익과 연관지어 대중을 현혹시키는 데 탁월했고, 그것이 법망에 걸리지 않게끔 조작하는 데 능숙했다. 백악관 모든 곳에 그의 영향력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앞에 나서지 않고 일을 추진했으며 자신의 이익을 챙겼다. 딕 체니는 정녕 타고난 정치꾼이었던 것이다.
  
 영화 <바이스> 스틸 컷

영화 <바이스> 스틸 컷ⓒ (주)콘텐츠판다

 
딕 체니는 재임 시절은 물론 정계를 떠난 현재까지도 언론을 통해 네오콘(극단적 자유주의자)이자 부시정권의 후견인 및 정권유착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하원의장 시절 절대적 사유재산인정과 개인주의, 납세 반대를 주장했다. 언제나 법에 어긋나지만 않거나 법망만 피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가능하다고 일관했다.
 
세계무역센터 테러는 절호의 기회였다. 체니는 사건 발발 즉시 변호사와 상담해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계산했다. 영화에는 부시가 체니에게 은밀히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 뒤 부시 정부는 탈레반의 오사마 빈 라덴이 이라크의 무장세력과 결탁하여 세계무역센터를 테러했다는 논리를 이용해 미군과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했다. 살인범이 평소에 잔인한 영화를 즐겼기 때문에 잔인한 영화가 살인을 부추겼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었고, 구체적인 근거는 부족했다. 그러나 분노의 대상이 필요했던 미국인들에게 부시 정부의 주장은 고막에 각인됐다. 그렇게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역사에 다른 방식으로 기록된 닉슨과 딕 체니

지금에 이르러 이라크 전쟁은 재평가된다. 의문이 남은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과 평가는 세월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에 관련해서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화씨 9/11>은 음모론의 태도로 연역적 방법을 따라 당시의 내막을 파헤친다. 그것이 도달한 결과의 사실여부를 떠나 이러한 영화는 사회적 건강을 위해 더욱 자주 등장해야 한다.
 
세계무역센터 테러는 우리들보다 미국인들에게 더 강한 무언가로 작용한다. 그들은 극 중 첫 번째 크레디트가 올라간 이후의 모든 장면에 각기 다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고, 누군가는 참을 수 없는 배신감에 분노했을 것이다. 마침내 다양한 형태의 아쉬움과 한탄, 분노는 한 지점으로 모인다. 만약 부시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면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을까.
  
 영화 <바이스>의 한 장면

영화 <바이스> 스틸컷.ⓒ (주)콘텐츠판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그 날 체니에게 부시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참상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지금에 이르러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그 이후에 있을 반성과 책임의 태도가 언제나 귀중하다.

극 중 첫 번째 크레디트는 그런 소용없는 가정은 집어치우고 나아가 정치인과 유권자들에게 시대적 과오의 책임을 묻는 입질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크레디트가 올라가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바이스>는 극우적 이해관계에 치중하여 대중 심리를 악용함으로써 이 사달을 낸 주동자들과 격렬한 반대 없이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갔거나 수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무언가를 직시할 의지가 결여된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부디 가슴 속 어딘가 일말의 부끄러움은 품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경종의 울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체니의 역겨운 자기변호에 과감하고도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진 못하더라도.
 
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딕 체니는 텔레비전에 등장해 자신의 사임 의사를 밝히는 닉슨 대통령을 바라본다. 닉슨이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에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순간이다. 모든 미국인들이 주목하는 그 순간, 딕 체니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치켜 올리고 중얼거린다. "너무 부주의해"라고.
  
 영화 <바이스> 스틸컷

영화 <바이스> 스틸컷ⓒ (주)콘텐츠판다

 
닉슨은 케네디가 좋은 집안의 덕을 타고난 금수저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자신은 농촌집안에서 자수성가해 박수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는 케네디에게 피해의식이 있었다. 1960년 대선 TV토론에서 케네디에게 졌으며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케네디를 등에 업은 상대후보에게도 졌다. 

닉슨은 언제나 자신이 피해자라고 믿었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거짓말에 대해서도 케네디의 거짓말과 자신의 거짓말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 반복됐고, 결국 모든 정치적 지지대를 잃은 닉슨은 몰락했다. 그러나 딕 체니는 자기결정에 대한 확신과 이해관계를 둘러싼 탁월한 계산능력으로 많은 것을 손에 쥐었다. 그야말로 권좌 뒤에 숨어 창을 휘둘렀던 섭정이었다.
 
닉슨과 체니, 둘은 모두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꼭대기에 올랐던 누군가는 파멸했고 그림자 속에 있던 누군가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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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입니다. 주로 영화글을 쓰고, 가끔 기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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