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리스> 영화 포스터

<러브리스> 영화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주)

 
열두 살 소년, 알로샤가 사라졌다. 지난 밤, 이혼을 앞둔 부모, 제냐와 보리스가 자신의 양육을 두고 다투는 것을 알로샤는 모두 들었다. 부모는 아들이 혹여 이 다툼을 들을까, 목소리를 죽일 생각도 않고, 아이의 양육을 서로에게 미루며 날선 말들을 내뱉고, 아이는 침묵 속에 절규한다.

이미 버림받은 것과 다름없는 아이는 스스로 가족을 버릴 것을 선택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학교에 간다고 아침에 나간 아이가 돌아오지 않은 밤, 아이의 부모는 각자의 연인과 밤을 보내느라 집에 없고, 둘 중 누구도 아들이 학교는 잘 갔다 왔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문단속은 잘 하고 있는지 전화하지 않는다.

만 하루가 지나서야 아들의 부재를 알아차린 부모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수색대의 도움을 받아 아들을 찾아 나선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주)

 
제냐와 보리스. 이들이 어떻게 이혼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오랜 시간동안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키워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는 과정이 아닌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사랑 없는 이들 부부의 과거와 현재에 상상력을 더해 모순과 위선으로 점철된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냐는 13년의 결혼 생활로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알로샤를 임신하는 바람에 사랑 없는 결혼을 했고, 그때의 어리석었던 선택이 지금의 불행을 만들었다고, 모든 원망을 보리스에게 쏟아 붓는다.

그녀가 보리스와 알로샤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얼음송곳처럼 차갑고 날카롭다. 사랑 없는 결혼 생활로 인한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며, 그래서 지금의 연인과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그녀는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한편 이혼을 앞두고 보리스가 가장 크게 걱정하는 것은 이혼을 터부시하는 사장이 자신을 해고하진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혼을 알아챌 틈 없이 재빨리 재혼을 하면 괜찮을 거라고 그는 나름의 대안을 고민한다. 누구도 알로샤를 걱정하지 않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이들에게 실패한 결혼의 결과물이며 새로운 출발의 장애물에 불과한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주)

 
제냐와 보리스는 알로샤를 찾기 위해 수색대와 함께 온 도시를 샅샅이 뒤진다. 아파트와 쇼핑몰, 공원과 숲 일대, 폐건물을 수색하는, 오로지 자원봉사자로만 이루어진 수색대의 모습은 실종 아동 찾기의 매뉴얼을 보여주는 것만 같고, 각 공간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은 차갑다.

모스크바는 어느 도시보다 빠르게 겨울을 부르고, 도시에 내려앉은 차가운 기운이 영화 전체를 무겁게 짓누른다. 여기 어딘가에 알로샤가 홀로 추위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안녕을 걱정하는 대사를 단 한마디도 집어넣지 않았다. 심지어 혹시나 알로샤가 갔을지 몰라 찾아간 외할머니 집에서도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알로샤에 대한 걱정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대신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막말을 내뱉는 가족들의 모습이다.   

제냐와 보리스는 서로에게 결핍된 사랑을 가정 밖에서 충족한다. 과연 이들이 찾은 사랑은 진짜 사랑일까? 자신의 책임은 간과한 채 각자의 연인에게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고 고백하는 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이들의 사랑이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준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주)

 
지난 4월 18일 개봉한 <러브리스>는 내놓는 영화마다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는 러시아의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제 70회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 러시아 사회 전체를 보게 하는 놀라운 통찰력이 담긴 이 영화는 이야기의 설정이 간단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단순하지만 한 편의 영화로서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과 존재감은 묵직하다. 

알로샤는 어디로 갔을까? 그의 가출은 철없는 사춘기 소년의 반항이 아니라 가족에게 배신당한 아이가 자신이 먼저 가족을 버리기로 결단하고 옮긴 행동이자 무책임한 어른들이 초래한 결과이다. 아파트 CCTV에 담긴 모습을 마지막으로 전단지 속 그의 앳된 얼굴은 흐르는 시간 속에 색이 바래간다. 

제냐와 보리스는 과연 그들의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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