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MBC에서 준비한 특집 다큐멘터리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가 지난 21일 4부를 끝으로 종영했다.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는 일제시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후손을 찾아가 선조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국 방문을 청하는 컨셉으로 구성하였다.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는 일반 다큐멘터리와 달리 예능적 요소도 가미하여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제작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25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책임 프로듀서를 맡았던 신지영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신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 4부작이 지난 21일 종영했어요. 방송을 마친 소회가 있을 거 같아요.
"저희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한 건 아니었어요. 많이 촉박했어요. 다 해외촬영이다 보니 나라별로 촬영 허가를 받아야 하고 후손분들 섭외해야 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그래서  준비 과정에서도 제대로 만들어 내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어요. 방송이 4회까지 나갔다는 거만으로도 굉장히 뿌듯하고 큰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 반응은 어땠나요?
"주변에서 보신 분들은 감사하게 재밌게 보셨다고 해주셨어요. 생각 없이 보다가 눈물 흘렸다는 분들도 계셨고 댓글 반응도 보면 'MBC가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칭찬을 받았거든요. 그런 게 감사했어요."

- 방영 시간대가 늦어서 아쉬움도 있지 않나요?
"1, 2회는 월요일 저녁 9시에 하고 3, 4회는 일요일 밤 12시에 했잖아요. 기본적으론 유료로 세팅돼 있는데 많은 분이 보길 바랐어요. 저희가 이 콘텐츠로 돈을 벌려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무료로 다시보기를 풀었고 방송은 끝났지만 관심 있는 분들이 보실 수 있게 했어요."

"너무 무겁지 않길 바랐다"
 
 신지영 MBC 기자

신지영 MBC 기자ⓒ 이영광

 

- 본업이 기자이신데 이 프로그램에서 CP를 하셨어요. 처음 아닌가요?
"그렇죠. 근데 제가 한 일이 기자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자도 무언가를 전달하는 거고 제가 이번에 한 일도 독립 운동가와 그분들 후손의 삶을 전달해드리는 거였잖아요. 그 방식이 뉴스인지 아니면 예능 다큐 형태를 빌릴 것인지, 또 제가 저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출연진과 다른 장치를 통해 전달하는지 정도의 차이였던 거 같아요."

-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셨으니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본업이 기자고 특히 저는 데일리 뉴스에서만 13년 넘게 있었거든요. 뉴스 리포트는 짧으면 하루, 길어야 일주일 정도의 기간을 두고 만들잖아요. 그리고 보도국에서 일할 때 스태프라고는 저와 카메라 기자, 오디오맨, 그리고 나중에 편집해 주시는 분과 CG해주시는 분이 협업하는 수준인데요. 이번 프로그램 같은 경우 연출팀, 카메라 팀 그리고 출연자들까지 하면 30명 가까운 그룹으로 작업했어요. 그런 차이에서 오는 배움이 많았던 거 같아요. 각자 다른 분야의 여러 사람이 모여 국내도 아니고 해외를 빡빡한 일정으로 다녔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사람 불평을 얘기한다거나 고집을 피우거나 싸우는 일 없이 분위기 좋게 다녔어요."

-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은 어떻게 기획된 프로그램인가요?
"올해가 3.1운동과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여서 그에 맞는 기획이 필요했어요.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상세하고 전문적인 다큐로 풀어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에게 친절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미 독립운동 다큐는 많이 나와 있기도 하고요. 전 독립운동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고 너무 무겁지 않게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프로그램의 주된 형식이라는 게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의 입을 빌려 듣는 이야기잖아요. 우리가 독립 운동가 분들을 직접 만나면 가장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도 사람이 직접 나와 그분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훨씬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나온 기획이었습니다."

- 예능적 요소가 있는데 이유가 있었나요?
"처음 톤을 정해야잖아요.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죠. 아무래도 독립운동 이야기다 보니 너무 가볍게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게 가면 보는 분이 힘들어 할 것 같았어요. 고민하는 와중에 손현주 배우가 합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톤이 정해진 부분도 있어요. 손현주 배우는 너무 무겁지도 않지만, 너무 가볍지도 않은 중간 어딘가에 계시는 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사절단 구성은 어떻게 하셨어요?
"일단 워낙 일정이 빡빡했고 모든 일정을 다 가야 하는 분들은 한 달 이상 본인의 시간을 다 비워야 했어요. 그러나 저희가 섭외를 작년에 한 것도 아니고 연말 연초에 하다 보니 이미 연중 일정이 잡혀있는 분들이 다수였고요. 그런데 손현주 배우는 기획을 듣고 의미가 참 좋다고, 함께 하고 싶다고 흔쾌히 답해 주셨어요. 마침 여유가 있으셨고, 너무 하고 싶어 하셔서 합류하게 되셨고요. 허일후 아나운서는 MBC 직원이죠(웃음), 근데 사실 허일후 아나운서 섭외가 제일 어려웠어요. 왜냐면 스포츠뉴스 간판 아나운서라서 스포츠 뉴스 부장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부탁드리는 저희도 너무 죄송했는데 절박한 마음에 삼고초려 끝에 함께 하게 된 사람이 허일후 아나운서예요."

영웅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신지영 MBC 기자

신지영 MBC 기자ⓒ 이영광

 
- 파리를 시작으로 러시아-미국-중국 흐름이었잖아요. 이렇게 구성한 이유 있나요?
"파리 이야기는 1번으로 고정되어 있었어요. 왜냐면 이 이야기가 기획의 시작 같은 의미였거든요. 러시아 북쪽의 항구도시, 무르만스크에 한인 노동자가 있었고 그 노동자가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끌려갈 위기에서 벗어나서 프랑스에 정착하게 됐어요. 노동자들이 전쟁 중 파괴된 쉬프라는 도시를 재건하며 시체도 수습하고 묘지 만드는 일을 하면서 번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어요. 그게 1919년, 1920년에 벌어진 일인데 이미 조선은 없는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본인이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지켜가기 위해 노력하셨다는 내용이 <집으로> 구성의 시발점과 같은 스토리였어요.

그 뒤 어떻게 갈지 논의가 있었는데 결과를 놓고 보면 '낯설고 먼 곳'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익숙한 이야기로 좁혀온 셈이에요. 유럽 얘기하고 러시아는 분량이 많아요. 러시아 항일 운동이 많고 카자흐스탄 지역 사시는 후손이 많이 계셔서 분량상 이유로 1.5편 되고 미국이 0.5편 되는 식으로 구성했어요."

- 독립 운동가 후손 초청은 기준이 있었나요?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니고 모집단이 있었어요. 국가보훈처에서 하는 '독립 유공자 후손 초청' 행사가 해마다 있어요. 올해는 100주년이라 삼일절 때 하고 4.11 임시정부 수립일에 했죠. 저희가 촬영 대상의 모집단으로 생각한 건 4월 11일 기념식에 초청된 100명의 후손이었어요. 물론 유공자분들은 모두 다 훌륭한 공적을 가지고 계세요. 하지만 촬영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했어요.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으셨다고 다룰 가치가 없었던 건 아니고요. 저희 촬영 동선이나 일정같은 걸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었어요."

- 후손들 이야기를 직접 들으셨을 텐데 어떠셨어요?
"예를 들어 이자해 선생님이 군의관으로 독립운동하신 건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죠. 저희가 중국에서 이자해 선생님의 손자분을 만났는데 16세까지 같이 사셨대요.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직접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외과 의사시니 손재주가 너무 좋으셔서 바지를 다시 디자인 해서 만들어주기도 하고 양말이 헤지면 기워주기도 하셨대요. 손자분께서 할아버지가 병상에 누워계시던 모습을 기억 하신대요. '이제 내가 죽으면 누가 양말 기워주겠나'라는 말씀을 하셨다며 우시는 거예요, 듣는 사람도 너무 슬퍼서 울었죠.

이런 이야기가 저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냐면 독립 운동가라면 어쩐지 히어로 같잖아요. 말하자면 어벤저스 같은 거죠. 그러나 이분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거예요. 가정이 있고 일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의 삶을 희생하신 거예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어 싸우시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후손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확 와닿더라고요. 역사 속 김산, 최재형, 이동휘는 굉장히 비범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고 나라를 위한 일은 그런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후손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들도 평범한 나의 이웃과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로 인해 이분들의 용기와 희생이 더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MBC 다큐멘터리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의 한 장면.

MBC 다큐멘터리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의 한 장면.ⓒ MBC

 
- 독립운동사를 임시정부 중심으로 배우잖아요. 그러나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는 임시정부 너머까지 조명해서 독립운동사를 더 풍성히 했다는 평가도 받던데.
"저희가 일부러 임시정부를 조금만 다루고 다른 이야기를 많이 다루자고 작정한 건 아니었어요. 임시정부 이야기는 워낙 잘 알려진 게 있잖아요. 그리고 임시정부 계셨던 분들은 말하자면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톱스타들'이세요. 

우리나라에서 독립운동 했다는 사람만 만 오천 명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150명도 배우지 않죠.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독립운동가 이름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20명이라도 나오면 다행이죠. 그런 게 안타까워 시작한 기획이기도 하니까 되도록 여러 지역 많은 분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어요. 시간 제약으로 깊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보시고 '이런 독립 운동가도 있었네?' 하는, 누군가의 호기심에 불을 당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 아쉬운 점도 있었을 거 같아요.
"시간 제약이 제일 아쉬웠어요. 편집된 스토리가 꽤 있어요, 그리고 출연진 스스로의 얘기도 많이 있었는데 4회 안에 다 녹여 내야 했기 때문에 다루지 못한 게 있어서 아쉽고요. 깊이 있게 다뤘으면 했던 독립 운동가들, 예를 들어 최재형 선생님 같은 경우 저도 준비하며 풀 스토리를 알게 됐는데 그분의 인생 전체가 참 감동적이더라고요. 이런 부분들이 많이 알려지면 좋겠어요."

- 단장이었던 배우 손현주 씨가 제작발표회에서 '4부작으로는 모자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시즌 2라든지 진행형으로 계속됐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잖아요. 혹시 계획 있으세요?
"지금 시즌 2를 준비하고 있진 않아요. 방송 끝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해외에 계신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나 뵙는 컨셉이라서 비용이라든지 현실적 문제도 있어요. 근데 기회가 된다면 또 하고 싶긴 해요. 아직 다루지 못해서 만나 뵙지 못한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요. 만 오천명입니다(웃음)."

숭고한 희생 정신을 기억하다
 
 신지영 MBC 기자

신지영 MBC 기자ⓒ 이영광

 
- 23일까지 <집으로> 특별 사진전을 열었잖아요. 어땠나요?
"영상으로 보는 거와 사진으로 보는 느낌은 다르더라고요. 물론 제가 모든 촬영을 함께 했지만 결과물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사진을 한지에 프린트했어요. 일반 인화지는 매끈한 느낌인데 한지에 프린트 하니까 굉장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더라고요. 사진전 의미와 잘 맞는 소재였던 거 같아요.

제일 좋았던 건 사진전오프닝 행사에 촬영하셨던 후손들을 모셔서 보여드리는 게 목표였는데 거의 다 오셨어요. 연배가 있으신 데도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게 비단 전시장에 자기 얼굴 있어서 좋아하신 것도 있겠지만 더 큰 건 자신의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하신 일을 이런 식으로 인정받고 보상과 치유 받는 느낌을 받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 후손들을 보니 너무 뿌듯했어요."

- 이번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뭔가요?
"제가 9살짜리 딸이 있어요. 한국사를 알 나이는 아니고 이순신, 유관순 정도만 알죠. 제가 한 걸 보여주려고 주말에 딸을 데려 왔어요. 지루해하죠. 딸에게 한 말이 '이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네가 엄마와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학교도 다니고 놀이터에서 뛰놀고 신나게 웃을 수 있다. 만약 이분들 희생이 없었다면 너나 나나 지금 일본어를 쓰면서 누군가의 노예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너는 그걸 잊어선 안된다'였어요. 딸이 제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지만요. 솔직히 저도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러나 독립 운동사를 알면 알수록 '이분들이 없었다면...'이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저희가 촬영 기간 중 최태성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많은 분들이 최태성 선생님에게 묻는 질문이 '독립은 일본이 원자폭탄 맞고 항복해서 된 거 아니에요? 독립운동해서 된 건 아니잖아요'라는 거래요. 그때마다 최태성 선생님은 '만약 우리가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리 일본이 패망해서 전쟁이 끝났더라도 한반도는 일본령으로 남아 있었거나 아니면 승전국 전리품처럼 넘어갔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독립 운동가 덕분에 한민족이 얼마나 독립을 원하는지에 대해 세계가 알게 됐고 그 결과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하신대요. 그 말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끝으로 지면을 통해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해주세요.
"다시보기가 무료로 풀렸으니 아직 못 보신 분은 꼭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독립 운동을 학교에서 비중있게 배우진 않아요. 또 교과서에 나온 독립운동사 자체가 많이 파편화 돼있다고 해야할까요? 인물 중심으로 '이 사람은 뭐 했고 저 사람은 뭐 했고'라는 식으로 나열이 돼 있으니까 흥미를 갖고 보기가 어려운 게 전 참 안타까워요. 학교에서부터 독립운동사를 두루 배울 기회를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독립운동이라는 게 한 군데에서 하나의 일이 벌어지고 맺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지역과 조직이 어느 한 부분에서 연결이 돼 있거든요.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보면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역사를 보는 시야도 넓힐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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