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호텔 포스터

▲ 강변호텔포스터ⓒ (주)영화제작전원사

 

홍상수는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23년 동안 26편의 단편을 내놨고, 그때마다 작품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있었다. 두 번째 장편 <강원도의 힘>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이후 홍 감독의 작품 여럿이 칸 영화제 각종 부문에 진출하며 화제를 모았다. 칸과 함께 유럽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를린과 베니스가 김기덕에게 감독상을 안겼던 시절이었다.
 
평단에서 홍상수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기 전까지 비슷한 성취를 거둔 김기덕이 지독한 혹평과 마주해야 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첫 영화부터 주류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업은 그는 두 번째 작품부터 칸 영화제의 부름을 받으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다만 홍상수 영화에 대한 비판에도 상당한 힘이 있다.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남녀가 나오고, 이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며, 시인·화가·영화감독과 그에게 호감을 가진 여성이 등장하는 등 어김없이 반복되는 요소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요컨대 홍상수가 스스로를 복제하는 것 아니냐는 것인데, 영화전문 잡지의 권력이 막강하던 시대가 끝을 보이며 이러한 비판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홍상수는 변했나, 아니면 그대로인가
 
강변호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추파는 변치 않는 홍상수 영화의 관심이다.

▲ 강변호텔여성에 대한 남성의 추파는 변치 않는 홍상수 영화의 관심이다.ⓒ (주)영화제작전원사

 
지난달 개봉한 <강변호텔>은 홍상수의 변화와 한계를 그대로 내보인 작품이다. 누군가에겐 전과는 확연히 다른 작품으로 느껴졌고, 다른 누군가에겐 여전히 특별할 것 없는 홍상수 영화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요컨대 변화는 있었으나 근본적인 부분에선 나아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영화는 외딴 강변호텔에 2주째 투숙하고 있는 노 시인 영환(기주봉 분)이 주인공이다. 이태원에서 술을 마시다 우연히 만난 호텔주인에게 공짜로 묵으라는 제안을 받았다는 그는, 아들 둘을 호텔로 불러 만나려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이 죽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다.
 
아들로 등장하는 이는 첫째 경수(권해효 분)와 둘째 병수(유준상 분)다. 첫째는 최근 아내와 이혼했지만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감추려 하며, 꽤나 유명한 영화감독인 둘째는 어린 시절 자신들을 버리고 제 길을 떠난 아버지에게 애증의 감정을 가진 듯 보인다.
 
여기까지 이전 홍상수 영화와 구별되는 두 가지 특징이 회자된다. 하나는 오프닝과 함께 배우 이름 등을 언급하는 내레이션이 홍상수 감독 목소리로 나온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부자지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다른 감독의 영화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으나 워낙 새로움을 찾기 어렵던 홍 감독의 영화인지라 많은 의견이 분분한 듯하다.

처음 드러낸 '아버지'란 정체성
 
강변호텔 호텔에 투숙하는 두 여인 상희(김민희 분)와 연주(송선미 분).

▲ 강변호텔호텔에 투숙하는 두 여인 상희(김민희 분)와 연주(송선미 분).ⓒ (주)영화제작전원사

   
특히 부자지간의 등장은, 전 국민적 관심이었던 홍 감독의 불륜 논란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영화 캐릭터에 제 모습을 은근히 투영해 온 홍상수가 비로소 아버지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와 그를 찾아온 두 아들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엇갈리는 대목과 애써 부른 아들들을 서둘러 돌려보내려는 장면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만은 않은 듯하다.
 
<강변호텔>을 이끄는 또 다른 축은 이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두 여인, 연주(송선미 분)와 상희(김민희 분)다. 서로 남자에게 받은 상처를 가진 듯이 보이는 두 여인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가며 호텔에서 지내고 있는데, 우연한 계기로 영환과 엮이게 된다. 영환과 그 아들들을 관찰하는 제3자인 이들은 서로의 사연은 끝내 감춘 채로 이야기를 새로운 각도에서 관객에게 전한다.
 
앞에 언급했듯 기존 홍상수 영화에선 보기 어렵던 특징을 몇 갖고 있지만, 영화는 근본적으로 '홍상수스러운' 영화다. 명확한 목적지를 갖고 관객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며 극적 재미를 주는 보통의 영화와 달리 <강변호텔>은 정작 중요한 건 무엇도 말해주지 않는다.
 
관객은 영화 결말부의 충격적 사건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끝내 알 수 없으며, 여자들의 울음과 그 안에 담긴 진실 역시 짐작할 수 없다. 호텔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는 영환의 말이 맞는지, 그가 호텔 주인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심지어 현재 처한 상태가 어떠한지도 알 수 없다. 영화 안에서 의미심장하게 언급된 연주가 판 자동차에도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방도가 없다. 사실상 영화는 중요한 건 하나도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홍상수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쉽게 혹평을 내릴 법한 작품이지만 정작 그런 평을 내놓는 용감한 평론가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홍상수에 대한 평론이 대개 그렇듯,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해도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 가득할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래도 되는가.

'그저 이름 석자만 썼을 뿐인데...'  
강변호텔 외딴 호텔로 아버지를 찾아온 두 아들. 영화는 언제나처럼 이들과 아버지 사이의 사연 대부분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

▲ 강변호텔외딴 호텔로 아버지를 찾아온 두 아들. 영화는 언제나처럼 이들과 아버지 사이의 사연 대부분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 (주)영화제작전원사

 
<강변호텔>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장면은 다른 평론들이 잘 언급하지 않는 작은 부분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호텔 곳곳을 뛰어다니던 병수가 자신의 팬을 자청하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이름을 써주던 장면이다. 직원은 병수를 알아보고는 종이를 내밀어 사인을 한 장 청하는데, 병수는 사인이 없다며 한 차례 거절한다. 하지만 직원이 재차 사인을 청해오자 병수는 마지못해 제 이름 석자를 써 건넨다. 그러자 직원이 말한다.
 
"사인이 정말 멋져요"
 
병수는 '그냥 이름 석 자 쓴 것'이라고 답하지만 직원은 다시 한 번 사인이 멋지다며 병수를 치켜세운다.
 
어쩌면 이 장면이야말로 홍상수 감독이 제가 스스로 걸어온 길을 돌아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 것에나 카메라를 들이밀고, 제가 할 수 있는 아무 이야기나 찍어낸 것임에도 모두의 찬사를 받는 상황을 말이다.
 
연주의 입을 빌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어정쩡하고' '작가라고 부르긴 좀 그런' 영화감독과 끝내 어떤 성취를 얻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은 늙은 시인 사이에서 홍상수 본인은 무얼 말하고자 한 것일까?
 
<강변호텔>을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분명하다. 하지만 글을 읽는 당신의 결론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야말로 홍상수 영화가 가진 최고의 미덕일 테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7703)에서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즐겨보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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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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