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전야>.

<파업전야>.ⓒ 장산곶매

  
배우들의 연기력이 떨어지는 영화를 관람하다 보면, 집중력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동자의 날(근로자의 날)인 5월 1일, 29년 만에 재개봉되는 <파업전야>는 다르다.
 
30년 전 영화라 그런 면도 있겠지만,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에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낯선 느낌을 주기 쉽다. 하지만 대단한 것은, 영화에 대한 집중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영화가 내뿜는 강력한 울림이 관객의 심장을 두드릴 만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 노동자들은 야간 및 철야 작업을 비일비재하게 강요당한다. 그들의 작업을 '감시'하는 벽시계 속의 시침이 가리키는 1시가 낮 1시가 아니라 밤 1시일 때가 많다. 그렇게 힘들게 중노동하면서도 그들은 정당한 봉급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식사나 휴식마저 누리지 못한다. 반장으로부터 반말과 욕설을 듣는 일도 대수롭지 않은 일상사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 비인간적 장면들은, 이 영화가 처음 상영된 1990년 못지않게 지금도 여전히 가슴 찡하게 다가올 만하다. 1990년 당시에는 그런 장면이 자연스런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좀더 나은 지금 시대에는 상당히 낯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19년에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가슴 찡함을 느낄 여지가 상당히 많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었나 하는 생각에, 온몸 신경망으로 전율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의 배경음악 중 하나인 <철의 노동자>의 "단결만이 살 길이요 노동자가 살 길이요/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대목이 관객의 육신을 짜릿하게 할 수도 있다. 배우들의 책 읽는 듯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점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 듯하다.

노동자들이 벌인 경제민주화 투쟁
 
 990년 개봉 당시의 영화 포스터.

990년 개봉 당시의 영화 포스터.ⓒ 장산곶매

  
<파업전야>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본격화된 '노동자 대투쟁'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직선제 개헌이라는 정치민주화가 달성된 직후, 인간다운 노동을 목표로 노동자들이 벌인 경제민주화 투쟁이 영화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영화의 주 무대인 인천 남동공단 내 동성금속은 꽤 많은 수의 노동자가 일하는 중견 제조업체다. 이성철·이치한 교수의 영화 비평서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에 따르면, 이곳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시나리오 상으로 약 200명이다. 화면 상으로는 공장 넓이나 건물 등을 통해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이곳 노동자들의 주된 작업은 단조 프레스다. 금속을 두들기거나 눌러서 필요한 형태로 만드는 작업이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아니면 다음날 아침까지 그들은 똑같은 동작을 지겹도록 반복한다. 마치, 기계 옆에 '기계'가 붙어 기계를 조종하는 형국이다.
 
요즘 같으면, 그 정도 작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는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영화 속 노동자들의 대사에서도 그 점이 드러난다. 영화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 노동자들에게, 우리 다섯이 모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30명을 어떻게 모으냐며 하소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을 겁낸 이유

6월항쟁 전년도인 1986년 12월 31일 시행된 노동조합법(법률 제3925호) 제13조 제1항은 "단위 노동조합의 설립은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근로자 30인 이상 또는 5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는 설립총회의 의결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6월항쟁이 벌어진 뒤인 1987년 11월 28일 시행된 노동조합법(법률 제3966호)에는 이 규정이 없다. 법률 제3925호 시절의 제13조 제1항이 6월항쟁 직후에 폐지됐던 것이다. 그러니까 6월항쟁 직후까지만 해도, 30명 이상을 모아야만 조합 설립이 원칙상 가능했던 것이다.
 
동성금속에는 30명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가 근무한다. "반장을 시켜주마", "수당을 더 주마" 같은 감언이설에 속아 구사대에 가입한 일부 노동자를 제외해도, 30명은 훨씬 넘는다. 숫자 상으로 볼 때, 노조 설립이 안 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노동자 대다수는 항상 불만에 차 있다. 또 작업장 곳곳에는, '전투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라도 무기로 변할 수 있는 연장들이 널려 있다. 사용자나 구사대와의 물리적 충돌에 위축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노조 결성을 겁낸다. 이 때문에 소수 노동자들은 아주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노조 결성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출신의 '학출' 노동자와 별 관계 없이 스스로 각성한 '선진 노동자'들은 동료들의 공포심을 의식하면서 신중하게 일을 추진한다.

회사와 경찰의 감시망 피해 은밀히 활동하는 노동자들
 
영화 속의 완익(임영구 분)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다니다가 이곳에 위장취업한 '학출'이기는 하지만, 그는 노조 결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구사대 일원인 한수(김동범 분)의 밀고로 경찰에 끌려간 뒤, 그는 더 이상 영화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완익 자신은 원자핵폭탄을 터트릴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위장취업 했겠지만, 이곳에서 실제로 '원자핵폭탄'을 준비한 사람들은 학교와 인연이 먼 노동자들이다.
 
대규모 중공업 단지가 많았던 경남 지역에서 선진 노동자의 역할이 컸던 것과 달리, 서울·인천 지역에서는 학출 노동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컸다. 하지만, 인천을 무대로 한 이 영화에서는 그런 실제 상황과 관계없이 선진노동자의 역할에 훨씬 더 방점을 찍는다. 선진 노동자의 의지와 역량이 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원동력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각성한 이곳 노동자들은 마치 독립운동을 하듯이 노조 결성을 추진한다. 회사와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은밀히 활동을 전개한다. 이로 인해 그들이 겪게 되는 역경과 더불어 노동자와 사용자, 노동자와 노동자 상호 간에 벌어지는 갈등이 <파업전야>를 이끌어가는 핵심 스토리다.
 
 <파업전야> 스틸컷.

<파업전야> 스틸컷.ⓒ 장산곶매

   
노동자들이 숫자 상으로 우세한데도 마치 독립운동 하듯이 활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영화 곳곳에서 제시된다. 그들이 사용자를 겁내는 것은 자본의 힘 때문만은 아니다. 물리적 투쟁이 벌어지면 사용자의 돈다발이 자신들의 주먹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겁낼 수밖에 없는 것은, 경찰로 상징되는 공권력이 사용자와 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금속 후계자인 김 전무(왕태언 분)가 경찰 정보과장으로부터 노동계 동향이나 노조 탄압 노하우를 배우는 것에서 나타나듯이, 사용자는 국가권력과 공고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사용자가 위급에 처하면, 공권력은 전경 부대라도 동원해서 사용자를 보호한다. 그 정도로 이들의 연대는 굳건하다. 노동자들이 마치 독립운동 하듯이 노조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스스로를 희생한 선배 노동자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노동자 대투쟁.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열린 전시회 때 찍은 사진.

노동자 대투쟁.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열린 전시회 때 찍은 사진.ⓒ 김종성


6월항쟁은 정치적 의미의 민주화투쟁이었다. 경제적 의미의 민주화운동인 노동자 대투쟁은 그 직후에 벌어졌다. 경제민주화가 정치민주화에 뒤처지는 이런 현상은 그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있었다.
 
2016년 촛불혁명을 발판으로 정치적 민주화세력은 국가권력을 차지했지만, 이 혁명을 실질적으로 이끈 노동조합 등의 경제민주화 세력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정치민주화 세력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견제마저 받고 있다.
 
사실, 정치적 민주화운동보다 경제적 민주화투쟁의 역사가 훨씬 길다.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민중은 항상 경제투쟁을 벌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투쟁해 왔는데도, 경제민주화 세력은 여전히 정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따금 국회 의석 몇 석을 건지는 데 그칠 뿐이다.
 
경제민주화 운동의 경우에는, 기득권층의 저항도 훨씬 심하고 투쟁의 범위도 훨씬 광범하다. 그래서 경제민주화 세력은 훨씬 더 오래, 훨씬 더 치열하게 투쟁하고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수확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그처럼 힘들기 때문에, 6월항쟁이라는 대변혁 뒤에도 동성금속 노동자들이 여전히 전근대적 억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처럼 노동운동이 여전히 힘들던 그 시절에 마치 독립운동 벌이듯 노동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파업전야>에 담겨 있다.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노동자들은 훨씬 수월한 조건 속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어느 정도나마 보장받고 있다.
 
물론 인간다운 노동의 단계에 도달하려면, 넘어야 할 많은 산과 물이 아직도 많다. 허지만, 노동자들이 지금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던 데는 그 시절 노동자 대투쟁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파업전야>는 그때 그 시절에 스스로를 희생한 선배 노동자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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