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인의 축제, 칸 영화제가 18일 앞으로 다가왔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이 경쟁 부문에 진출한 가운데 과거 어느 때보다 쟁쟁한 이름들이 칸의 선택을 놓고 격돌한다. 앞서 두 차례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거장 켄 로치와 다르덴 형제가 경쟁부문에 진출해 사상 최초의 황금종려상 세 번째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번 '김성호의 씨네만세'에선 코앞으로 다가온 칸 영화제 경쟁부문 후보를 소개하고 수상 가능성을 탐색한다. 물론 이들 모두가 칸 영화제에서 제 신작을 처음 공개하는 것이라, 완성도와 작품성은 오직 짐작만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가? 소풍은 아무것도 모르는 전날 밤이 가장 설레는 법이다.
 
올해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는 모두 19편이다. 공동감독까지 모두 21명의 감독이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무게감이 있는 인물은 대략 대여섯 정도다. 친숙한 봉준호 감독을 포함해, 켄 로치, 다르덴 형제, 테렌스 맬릭, 짐 자무시, 자비에 돌란 정도가 한국 영화 팬에게 알려진 이름이다. 외국에선 봉준호를 빼고 소개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켄 로치다. 켄 로치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목록에서 그의 작품을 가장 앞에 세우는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인이 된 블루칼라의 시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 촬영 당시 켄 로치 감독.

<나, 다니엘 블레이크> 촬영 당시 켄 로치 감독.ⓒ 영화사 진진

  
켄 로치는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안은 거장이다. 1936년생, 올해로 83세인 켄 로치는 지난 2014년 <지미스 홀> 이후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으나 은퇴를 번복하고 전 못지 않은 걸작으로 팬들을 감동케 하고 있다.
 
20대 시절 극단 연출자로 출발해 ABC 조감독을 거쳐 BBC 견습감독으로 영상매체와 연을 맺은 켄 로치는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방송국에서 독립, 비로소 제 색깔을 낸 영화를 내놓기 시작한다. 1969년 <케스>와 1971년 <가족 생활> 등이 이 무렵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대처 시절 동안 사회 전 분야를 가로지르며 다큐멘터리를 쏟아낸 켄 로치는 1990년대부터 극영화 감독으로 귀환, 연달아 훌륭한 작품을 내어놓는다. 특히 1993년작 <레이닝 스톤>과 1995년 작품 <랜드 앤 프리덤>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도 오르며 전 세계 평단에 제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알파벳 기준으로도 Ken은 석자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영국인 노동자의 시선이 인상적인 <랜드 앤 프리덤>은 그의 이전 작품과 맞물려 켄 로치의 이념적 성향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무엇이 제가 속한 세계를 넘어 다른 세상의 문제에 다가서게 하는가, 어째서 혁명가들은 패할 수밖에 없었나, 그럼에도 어째서 그들은 혁명을 지지했는가 같은 질문에 대해 켄 로치는 결연한 어조로 제가 가진 생각을 전한다.
 
이후 북아일랜드 정치상황을 다룬 <숨겨진 비망록>과 딸의 영성체 예복을 마련하려는 가난한 아버지의 이야기 <레이닝 스톤>으로 켄 로치는 두 차례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탄다. 그리고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마침내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는다.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과 북아일랜드 분리를 다룬 이 영화는 2006년 개봉당시 이라크전쟁을 암시하는 게 아니냐는 영국사회 내부의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오늘날엔 켄 로치가 거둔 영광만이 굳건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이후 10년 만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았을 때, 켄 로치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연출자가 되어 있었다.
 
백발의 청춘 켄 로치의 별명은 '블루칼라의 시인'이다.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더없이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그의 작품 앞에 서면, 가장 비판적인 인간도 쉽게 그의 영화가 선동적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제는 꽤나 많은 감독들이 켄 로치의 뒤를 따라 그가 먼저 갔던 길을 따라서 걷고 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서 훼손되어선 안 되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전설이 된 거장 켄 로치가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신작 < Sorry We Missed You >를 선보인다. 그가 평소 내놓은 작품 만큼만 된다면 이보다 강력한 후보작은 없을 것이다.

영화 감독 토니 케이는 '세상에는 훌륭한 것이 이미 많으니 자신이 없으면 베끼'라고 했다. 켄 로치가 남긴 말로 부족한 글을 마무리한다.

"역사란 향수가 아니다. 역사는 왜 우리가 지금의 모습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현재의 상황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역사가 향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부르주아들에게 적합한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그들이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을 설명해주며 따라서 역사를 탐구하여 민중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되돌려 주는 것은 감독으로서 갖는 책임 중 하나인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민중의 과거에 대한 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들의 현재를 재조정할 수 있고 현재를 조정하게 되면 결국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민중의 생각을 조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1997년 9월 <키노> '켄 로치, 싸우는 작가주의에 대하여' 인터뷰 기사 중에서.)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7703)에서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즐겨보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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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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