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법정을 세우다'.왼쪽부터 기자 수연(김지은 분), 판사비서(최지환 분), 판사(김용선 분), 해고노동자 경중(문창완 분), 신평호 변호사(맹봉학 분), 사무장 진철(정종훈 분).

연극 '법정을 세우다'.왼쪽부터 기자 수연(김지은 분), 판사비서(최지환 분), 판사(김용선 분), 해고노동자 경중(문창완 분), 신평호 변호사(맹봉학 분), 사무장 진철(정종훈 분). ⓒ 저널인미디어 극단 청산

  
패스트트랙이 동물국회를 뚫고 통과되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는 등 잡음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곳곳에서 물 불 가리지 않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터라, 현실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공연장르가 차라리 모범적이고 거룩하게 다가온다.

최근 사법농단으로 시름하는 법원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연극이 한 편 나왔다. 바로 극단 청산의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이다. 4월 19일을 기념하며 시작한 이 공연은 5월 19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3관에서 공연된다.

이번 공연은 실제인물인 신평 변호사의 동명의 소설이 출발이었다. 신평 변호사는 1993년 판사와 변호사 사이에 돈봉투가 오가는 부패한 현실을 질타했다가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한 법관 '1호'다. 이러한 내용이 박장렬 연출과 신성우 작가의 극본을 통해 재탄생했다.

판사시절 동료 판사들의 금품 수수를 내부 고발해 재임용 탈락한 신평호 변호사(맹봉학 분)는 이번에는 동료 변호사의 비리 의혹을 공개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게되고 결국 패소한다. 그는 부당 해고노동자 김경중씨의 상호사용 가처분 신청 사건을 맡게 되고, 내부고발자 판사 재임용 판결과 김경중의 사건판결을 내린 법원을 고발한다. 극 중 신평호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소소실업 부당 해고노동자 김경중 대표의 사건을 맡으면서 깨달음이 왔습니다. 판결은 판결 그 자체로 판결받을 수 있어야 한다. 1+1이 3이라는 것과 같은 부당한 판결, 그 판결을 법정에 세우자는 것입니다. 부당한 판결 뒤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습니다. 뭐냐고요? 비리죠, 비리. 뇌물, 뒷돈, 청탁 이런거요."

배우 맹봉학의 대사는 정확하고 담담하지만, 씁쓸하고 어색하다. 오히려 선배 판사(김용선 분)가 술에 취해 "얌마, 1+1이 3이라고 판사가 땅땅 때렸어. 그러면 3이야. 판결이란 그런거야.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할 때가 오히려 와닿는다. 세상이 그러니까.

정의롭게 산다고 보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정의를 위해 의기투합하는 주인공 4명의 모습은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던져준다. 
 
극 중 등장한 사연 또한 가슴이 와 닿는다. 김경중씨는 부당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시위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회사의 상호를 사용했다가 '상호사용가처분'을 받게 된다. 김경중씨(문창완 분)의 사연은 정말로 억울하기 짝이 없다. 부당함을 호소하는데 해당 회사 이름 언급 없이 하라니...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농약 자살시도로 병원에 입원한 김경중씨가 딸이 준 토끼모자를 쓰고 딸에게 이틀밤 후에 아빠가 집에 돌아갈 거라고 하는 장면이 애틋하다. 김경중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법원을 법정에 세우고 사회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신평호 변호사는 집 담보 대출을 받아 사무실을 정돈한다. 사법시험에 10년 넘게 떨어진 친구이자 사무장(정종훈 분)에게 줄 월급도 마련하고, 기자 수연(김지은 분)과 경중 이렇게 네명은 곰탕에 소주 한 잔을 하며 의기투합한다.
 
 극의 마지막 그림 '캄비세스왕 의 심판' 앞에 선 신평호 변호사(맹봉학 분).

극의 마지막 그림 '캄비세스왕 의 심판' 앞에 선 신평호 변호사(맹봉학 분). ⓒ 저널인미디어 극단 청산

 
극 초반에는 <캄비세스 왕의 심판>에 대해 극중 비리를 저지른 도슨트 김미선(김진영 분)이 설명하고, 마지막에는 신평호 변호사가 한 번 더 설명하는데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 그림은 잘못된 판결을 한 법관의 가죽을 벗기라는 왕의 명령이 행해지는 장면의 왼쪽 그림과 그 처형된 법관의 아들이 다시 법관이 되어 죽은 아버지의 가죽으로 감싸진 법관의자에 앉아 있는 오른쪽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이라는 최고 권력을 왕이라는 국가 최고권력이 다시 심판한 것이다.
 
돈 많고 힘 있는 자는 법 뒤에 숨고, 돈 없고 힘 없는 자는 가진 것을 모두 바쳐도 쟁취하지 못하는 법. 그것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만약 실제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최소한 약자들이라도 기만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라의 존립을 위해 권력의 성역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 성역이 부패하였다면 당연히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근간을 유지하는 기초규칙과 질서를 세우고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법을 유리하게 이용해서만은 안 된다. 또 그 법을 만들 때나 적용할 때 최소한 소외된 사람들의 인간적 삶과 생존권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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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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