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해> 중 하정우의 모습.

"지금이 밥 먹을 때냐? 밥이 넘어 가냐?" 이따금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의아함을 느끼곤 했다. (사진은 영화 <황해> 중 하정우의 모습)ⓒ (주)쇼박스

 
"지금이 밥 먹을 때냐? 밥이 넘어가냐?"

이따금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의아함을 느끼곤 했다. 식사를 하면 안 되는 때가 있을까? 배가 고프고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면 그 때에 밥을 먹으면 될 일이 아닐까?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단식이나 금식을 하는 사람 앞에서 식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차마 '밥을 넘겨선 안 되는 때'라는 것이 존재할까?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조차도 마음속으로 저런 되뇌었던 순간이 있었다. 해야 할 일은 산적한데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 혹은 일의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가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로 여겨질 때. 그래서 속이 너무 상한 나머지 감정이 곤두박질칠 때. 느껴지는 허기에도 나는 속으로 묻는다. 나는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 인간인가. 지금이 밥 먹을 때인가?

하긴 꼭 식사뿐일까.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우리에게 필요하거나 혹은 즐거운 일들을 미룬다. 10년 가까이 새해마다 나는 해외여행을 올해의 버킷리스트에 넣었지만 정작 실행에 옮긴 적은 한 번도 없다.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면 한 푼이라도 더 모아두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다.
 
 화폐

나는 적금을 들 때 만기일이 다가오면 돈의 일부를 떼어 해외에 나가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정작 그 때가 다가오면 계좌의 돈은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적금통장을 새로 만든다.ⓒ Pixabay

 
나는 적금을 들 때 만기일이 다가오면 돈의 일부를 떼어 해외에 나가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정작 그 때가 다가오면 계좌의 돈은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적금통장을 새로 만든다. 사실 돈을 모을 때도 해외에 나가겠다고 해놓고선 여권도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내가 '해외여행을 꼭 가려고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여권부터 만들라'고 농담을 한다.

그 뿐이랴.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를 만나는 것도 나중으로, 봄에 꽃놀이를 나가는 것은 내년으로, 휴가를 쓰는 것도 언젠가로 미뤄진다. 딱히 바쁘지 않을 때에도 '그럴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행복을 미루지 말라는 미미 시스터즈의 독려

이렇게 누구도 시키지 않은 '주제 파악'을 하느라 이런저런 일들을 치일피일 미루던 어느 날 미미 시스터즈의 신곡 <우리, 다 해먹자>를 들었다. 이 노래와 관련하여선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미미 시스터즈가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인 <레트로 먼데이>의 열렬한 시청자인데(사실 바쁜 일정에 방송을 자주 보지 못해 마음만 그렇다), 하루는 미미 시스터즈가 방송에서 <우리, 다 해먹자>로 다시 활동을 시작할 것을 알리며 공연 일정을 공개한 것.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다 해먹자'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다 해먹자'ⓒ 미미시스터즈

 
나는 방송을 보며 들뜬 마음으로 행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채팅으로 남겼고 이후에는 티켓 구매가 열리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공연에 가지 못했다. 내가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든 사이 표가 모두 매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황당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미 시스터즈의 노래 <우리, 다 해먹자>는 전작인 <우리, 자연사하자>에 이은 위로 캠페인 3부작 중 두 번째 곡이다. <우리, 자연사하자>에서 미미 시스터즈는 '홀로 먼저 가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남아 함께 자연사에 이르자'는 유쾌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관련 기사 : 청춘들에게 "이렇게 죽자"고 하는 노래... 추천1을 누르다).

그렇다면 죽지 않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캠페인의 시작을 알렸던 첫 노래가 띄운 운을 받아 <우리, 다 해먹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며 하고 싶은 것을 다하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하지만 미미들의 이 매혹적인 제안에도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예상했듯 미미 시스터즈는 노래의 시작에서 이런 가사로 우리의 등을 두드린다.

"우린 잠깐 놀아도 돼/ 그냥 조금 쉬어도 돼/ 너 열심히 산 거 내가 다 아니까"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 하자'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 하자'ⓒ 미미시스터즈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랄까

그래, 열심히 살아온 나는 놀고 쉴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다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불안한 마음으로 질문하게 된다. 이전에 열심히 했다고 지금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미래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앞은 보이지 않는데, 지금 놀았다가 나중에 초라한 결과를 마주하면 어쩌지? 더 고생하면 어쩌지? 여기에 답이라도 하듯 <우리, 다 해먹자>에는 이런 가사도 등장한다.

"내일의 나야, 오늘의 나를 잘 부탁해!"

내일의 나와 오늘의 나를 분리시키는 이 유체이탈과도 같은 가사를 보고 나는 처음에 '너무 무책임하잖아?!'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흐르는 시간을 가운데에 두고, 마치 다른 사람을 보듯 '내일의 나'라는 존재가 '오늘의 나'를 보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가령 나는 내가 조금 고생을 해도 누군가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 같다.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다 해먹자'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다 해먹자'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미미시스터즈

 
딱히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행복을 가로막는 선택을 했다는 게 마음에 너무 큰 짐으로 남기 때문이다(차라리 고생하는 쪽이 건강에도 낫고 속이 시원하다). 미래의 내가 여전히 그런 사람이라면 오늘의 나에 대해서도 태도가 달라질 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다. '내일의 나'는 어쩌면 지금의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지 않을까.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타인을 보듯 지금의 나를 보았을 때, 내가 모든 행복과 여유와 편안함을 미루고 있다면 슬퍼하지 않을까. 자기 스스로를 조금 더 믿고 행복을 향해 손을 뻗기를 바라지 않을까. 어차피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행복을 멀찍이 미뤄두지 않기를 바라지는 않을까. 사실 이것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과거의 나에게 지금 내가 가지는 생각이기도 하다.

돌아올 현실을 미리 걱정하지 말고, 우리 다 해먹자

나는 우리가 행복한 순간에는 각각의 고유한 색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느끼지 못한 행복을 미래에 결코 똑같이 느낄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 다 해먹자>는 곡의 중간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사운드와 '서울의 뽀얀 봄볕', '말랑말랑 밀떡, 매콤달콤 어묵'과 같은 가사를 통해 그런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가장 백미는 '여행의 끝엔 내 침대가 기다리잖아'라는 가사. 긴 시간 집을 비웠다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을 때, 익숙했던 포근함이 다소 생소해져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는 그 감각은 정말 강렬하지 않은가. 미미 시스터즈는 우리가 결코 옆으로 밀어두어선 안 되는 '지금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짐을 내려놓고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도록 독려한다.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 하자'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 하자'ⓒ 미미시스터즈

 
사실 나는 <우리, 다 해먹자>를 소개하며 '미미 시스터즈의 신곡'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미미 시스터즈의 팬으로서 노래가 나오자마자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한 달이 넘어서야 원고를 적고 있기 때문이다. 미미들의 노래를 들으며 때로는 즐거워서 웃고, 때로는 위로받아서 울었던 사람으로서 '미미 시스터즈 위로 캠페인'에 담길 노래들에 대한 글은 놓치지 않고 모두 쓰고 싶었다. 그것이 나에겐 너무도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스케줄 노트에는 오늘과 내일의 업무가 산적하다. 하지만 노래에서 미미 시스터즈가 말한 것처럼 '돌아올 현실은 미리 걱정하지' 말고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아, 그리고 조만간 여권도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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