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국에서는 흔히 월화, 수목, 주말 체제로 드라마를 편성한다. 하지만 지난 2013년 tvN에서 최초로 금토드라마를 편성하면서 오랜 기간 정착됐던 드라마의 판도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tvN은 <응답하라 1994>를 시작으로 <미생> <오 나의 귀신님> <응답하라1988> <시그널> <도깨비> 같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은 금토 드라마들을 히트시켰다(tvN은 2017년 6월부터 금토 드라마를 폐지하고 주말 드라마 체제를 다시 부활시켰다).

최근 '금토드라마 열풍'은 종합편성채널의 JTBC가 이어 받았다. <청춘시대>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로 주목 받기 시작한 JTBC의 금토 드라마는 <힘쎈여자 도봉순>을 시작으로 <품위 있는 그녀> <미스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 SKY캐슬 >이 차례로 인기를 얻으며 JTBC의 효자 시간대로 자리 잡았다. 이에 지상파 SBS도 지난 2월부터 케이블과 종편을 따라 금토 드라마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일단 출발은 매우 성공적이다. SBS의 첫 금토드라마 <열혈사제>가 최종회 시청률 22%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전작이 인기가 많으면 다음 작품의 부담은 더욱 커지기 마련. 하지만 SBS는 26일에 첫 방송되는 새 금토드라마 <녹두꽃> 역시 <열혈사제> 만큼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2014년 <정도전>을 통해 정치사극의 새 장을 열었던 정현민 작가가 3년이 넘는 준비 끝에 선보이는 신작이기 때문이다.

정치 사극의 새 지평 연 정현민 작가의 인생작 <정도전>
 
 정현민 작가가 재해석한 이인임은 박영규의 명연기를 만나 입체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현민 작가가 재해석한 이인임은 박영규의 명연기를 만나 입체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KBS 화면 캡처

 
드라마 작가들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를 지망해 꾸준히 글을 쓰며 데뷔한 '정통파'들도 있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작가로 전업한 인물들도 적지 않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을 히트시킨 현존하는 최고의 인기 각본가 김은숙 작가는 과거 강릉의 가구공장에서 경리직원으로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김은숙 작가는 회사원으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작가의 꿈을 이룬 케이스다.

<내조의 여왕>과 <별에서 온 그대>로 유명한 박지은 작가와 <응답하라> 시리즈를 집필한 이우정 작가는 예능작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작가 특유의 위트 있는 대본들에는 예능작가 시절의 감각이 베어 있다. 이 밖에 <품위 있는 그녀>의 백미경 작가는 영어학원 강사, <쌈, 마이웨이>의 임상춘 작가와 <비밀의 숲> <라이프>의 이수연 작가는 평범한 회사원에서 작가로 전향한 케이스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전문 글쟁이가 되기 전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현민 작가만큼 특이한(?) 인생경험을 했던 작가는 찾기 쉽지 않다. 동아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노동운동을 하던 정현민 작가는 민주당 박인상 의원과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경력이 있다. 약 10년 동안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 놨던 정현민 작가는 우연치 않게 KBS 극본공모전에 당선되며 전업작가로 전향했다.

2010년 4명의 작가가 함께 집필한 <자유인 이회영>을 통해 데뷔한 정현민 작가는 같은 해 연말 KBS 드라마 <프레지던트>의 공동작가로 참여했다. <프레지던트>는 최수종, 하희라 부부가 결혼 후 처음 함께 출연한 드라마로 큰 화제를 모았지만 비슷한 소재의 SBS 그라마 <대물>에 밀려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이후 몇 편의 단막극과 공동집필을 통해 경험을 쌓던 정현민 작가는 2014년 드디어 인생작 <정도전>을 만났다.

<정도전>은 그동안 이성계에게 집중돼 있던 조선 건국 스토리를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집중시키며 웰메이드 사극으로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특히 중견배우 박영규가 연기한 이인임은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분)과 비교될 정도로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실제로 <정도전>이 큰 인기를 얻은 이후 조선 건국 과정을 담은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정도전(김명민 분)이 매우 중요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정도전> 작가와 <뿌리 깊은 나무> PD, 사극 전문가들의 만남
 
 <어셈블리> 이후 3년 넘은 공백이 있었던 정현민 작가는 동학 농민운동 시대를 다룬 <녹두꽃>으로 돌아온다.

<어셈블리> 이후 3년 넘은 공백이 있었던 정현민 작가는 동학 농민운동 시대를 다룬 <녹두꽃>으로 돌아온다.ⓒ SBS <녹두꽃> 홈페이지

 
<정도전>으로 KBS 연기대상, 제7회 코리아 드라마어워즈, 제41회 한국방송대상에서 작가상을 휩쓴 정현민 작가는 2015년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을 중심에 내세운 드라마 <어셈블리>를 선보였다(서민적인 초선 국회의원은 중년 배우 정재영이 연기하고 훈훈한 신입 보좌관 역은 보이그룹 2PM 출신의 미남 배우 옥택연이 연기했다. 이는 보좌관 출신 정현민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게 분명해 보였다).

<어셈블리>는 현실 정치를 실감나게 다뤘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시청률에서는 5% 내외에 머물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어셈블리>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부정부패 국무총리의 인준을 막기 위한 '25시간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장면은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 의해 현실에서 재현되기도 했다.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린 드라마 <어셈블리>와 정현민 작가가 새삼스럽게 재평가된 순간이었다.

<어셈블리> 이후 3년이 넘는 공백을 가진 정현민 작가가 26일 오랜만에 신작 <녹두꽃>으로 돌아온다. <뿌리 깊은 나무>와 <육룡이 나르샤>를 연출했던 신경수PD가 연출하는 작품으로 조선말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에서 농민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싸워야 했던 이복형제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조정석이 동학농민군 별동대장 백이강을, 윤시윤이 문명을 신봉하는 중인계급의 엘리트 백이현을 연기한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다룬 <녹두꽃>에는 시청자들이 한 쪽의 편을 들기 힘든 기구한 장면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정현민 작가 특유의 명대사와 명장면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또한 두 주인공과 함께 과거 신경수 PD와 함께 작업했던 한예리, 박혁권, 민성욱, 조희봉, 김하균 같은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도 <녹두꽃>의 볼거리가 될 것이다. 다만 정현민 작가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러브라인에는 큰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사실 드라마의 시청률과 성공 여부는 아무리 유명한 배우나 작가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영애의 복귀작으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사임당, 빛의 일기>가 한 자리 수 시청률에 허덕이기도 하고 신예들이 주역이었던 <제빵왕 김탁구>가 50% 시청률을 돌파하는 곳이 바로 드라마라는 오묘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현민 작가가 <정도전>과 <어셈블리>를 통해 보여준 뚝심을 이어간다면 <녹두꽃>도 충분히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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