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면 방영 초기 빠른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다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힘이 떨어지는 소위 '용두사미 드라마'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시청률이나 제작환경 등의 외부요인으로 인해 제작 초기의 기획 의도가 흔들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물론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키는 드라마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제작진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20일 화제 속에 막을 내린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가슴 속 상처가 있는 다혈질 신부가 벌이는 통쾌한 정의구현'이라는 기획 의도를 끝까지 지킨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열혈사제>는 <굿 닥터>와 <김과장>을 집필했던 박재범 작가의 유쾌한 필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조금은 유치하지만 가상의 지역 구담구에서 벌어지는 비리들을 하나, 둘 해결해가는 통쾌한 이야기 전개가 방영 기간 내내 시원하게 펼쳐졌다.

무엇보다 <열혈사제>를 빛낸 것은 주연과 조연, 선역과 악역을 가리지 않은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천만 배우 이하늬와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김성균, 신예 금새록이 뛰어난 호흡을 과시했고 고준, 안창환, 음문석, 전성우, 백지원 등 <열혈사제>를 통해 재평가된 배우들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열혈사제>를 재미있게 시청했던 사람들은 이 드라마의 일등 공신이 김해일 신부를 연기한 김남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입체적인 캐릭터 비담 매력 살리며 스타덤 오른 김남길
 
 <선덕여왕>에서 김남길이 연기한 '조연' 비담의 매력은 엄태웅이 맡은 '주연' 김유신을 압도했다.

<선덕여왕>에서 김남길이 연기한 '조연' 비담의 매력은 엄태웅이 맡은 '주연' 김유신을 압도했다.ⓒ MBC 화면캡처

 
고등학교 때 연극을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김남길은 2003년 MBC 31기 공채 탤런트 모집에서 수석으로 합격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수려한 외모와 데뷔 전 연극무대 경험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데뷔 직후 교통사고로 인해 일찍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실질적인 드라마 데뷔작이었던 <굳세어라 금순아>에서는 등장한 지 일주일 만에 교통사고와 의료사고로 목숨을 잃는 비운의 역할을 맡았다.

대선배 강남길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데뷔 초 '이한'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김남길은 2008년 영화 <강철중 : 공공의 적 1-1>부터 다시 본명으로 활동했다. <강철중>에서 기업형 폭력조직 두목 이원술(정재영 분)의 오른팔 문수역을 맡아 냉철한 연기로 주목받은 김남길은 2009년 출세작 <선덕여왕>을 만났다.

<선덕여왕>에서 미실(고현정 분)의 아들 비담을 연기한 김남길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선덕여왕>의 공식적인 남자주인공은 김유신 역의 엄태웅이었지만, <선덕여왕> 후반부 최고 명장면을 만들어 낸 배우는 주인공인 이요원도, 엄태웅도, 유승호도 아닌 무명에 가까웠던 김남길이었다.

김남길은 2010년 드라마 <나쁜 남자>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물론 <나쁜 남자>는 50%의 시청률을 기록한 경쟁작 <제빵왕 김탁구>의 압도적 우세와 남아공 월드컵으로 인한 잦은 결방으로 8%대의 낮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하지만 <나쁜 남자>는 드라마의 흥행과 별개로 김남길의 옴므파탈 매력과 섬세한 눈빛 연기가 돋보였던 작품으로 김남길은 <나쁜 남자>를 통해 많은 해외 팬들을 얻으며 한류스타로 발돋움했다.

<나쁜 남자>를 끝으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친 김남길은 2013년 드라마 <상어>를 복귀작으로 삼았다. 손예진과의 연기호흡으로 기대를 모은 <상어>는 웰메이드 복수극 <부활>과 <마왕>을 집필했던 김지우 작가의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전작 <직장의 신>이 16%, 후속작 <굿 닥터>가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12%를 채 넘기지 못한 <상어>의 시청률은 만족하기 힘든 숫자였다. 

김해일 신부와 하나가 된 김남길, 시청자들을 사로잡다
 
 김남길은 <열혈사제>에서 코믹하면서도 다혈질적인 김해일 신부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김남길은 <열혈사제>에서 코믹하면서도 다혈질적인 김해일 신부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SBS 화면캡처

 
하지만 김남길의 슬럼프는 길지 않았다. 김남길은 2014년 다시 한번 손예진과 호흡을 맞춘 영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을 통해 허당의 면모를 드러낸 코믹 연기를 멋지게 소화하며 전국 860만 관객을 동원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작품이 1700만 관객을 모은 <명량>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100만을 갓 넘긴 것을 고려하면 <해적>의 성공은 그야말로 대이변이었다.

김남길은 2016년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 <판도라>에서 수더분한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8kg을 증량했고, 2017년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강철중>이후 9년 만에 설경구와 재회했다. <판도라>와 <살인자의 기억법> 모두 평단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손익분기점을 통과하며 김남길의 티켓파워를 증명했다. 2017년 김아중과 함께 <명불허전>에 출연했던 김남길은 지난 2월 6년 만의 지상파 드라마 <열혈사제>를 선보였다.

김남길은 <열혈사제>에서 국정원 대테러 부대 특수요원 출신의 김해일 신부를 연기했다. 김해일 신부는 돌이킬 수 없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성직자의 길에 들어섰지만 눈앞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김남길은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의 존재감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얼마나 살릴 수 있는지 몸소 증명해냈다. 많은 시청자가 <열혈사제>의 장르를 '김남길'이라고 부를 만큼 김남길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김남길은 <열혈사제>에서 특유의 익살스러운 코믹 연기를 과장되지 않게 소화해내며 시청자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전달했다. <선덕여왕> 시절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액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를 비롯해 구대영(김성균 분), 서승아(금새록 분) 형사, 황철범(고준 분), 한성규 신부(전성우 분), 김인경 수녀(백지원 분), 쏭삭(안창환 분) 등과 호흡을 맞춰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큰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렇다고 김남길이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코믹한 연기로 일관한 것은 아니다. 김남길은 초반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던 이영준 신부(정동환 분)가 살해됐을 때와 사석에서 호형호제하기로 한 한성규 신부가 눈 앞에서 이중권(김민재 분) 일당에게 태러를 당했을 때 엄청난 분노 연기를 보여준다. 19화에서 조금은 뜬금 없었던 김해일 신부의 '폭주'가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었던 것도 김남길의 섬세한 연기 덕분이었다.

김남길은 데뷔 초부터 사고가 많은 배우로 유명했다. <열혈사제>를 찍으면서도 손가락과 손목이 굴절됐고 지난 3월에는 액션씬을 촬영하다가 늑골을 다쳐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남길은 결방을 막기 위해 4일 만에 퇴원해 다음날 곧바로 촬영장에 복귀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비담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에도 국내외를 오가며 꾸준한 선행과 기부를 이어온 김남길이 6년 만의 지상파 복귀작에서 시원한 홈런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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