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지구> 영화 포스터

▲ <유랑지구> 영화 포스터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가까운 미래. 태양이 급격히 확장하면서 지구에 대재앙이 찾아온다. 멸망의 위기 앞에서 인류는 단결하고 세계 연합정부를 구성한다. 세계 연합정부는 지구를 태양계 바깥으로 이동시키는 '유랑지구 프로젝트'를 계획한 후, 지구 곳곳에 엔진을 건설하고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들어 생존자를 이동시킨다. 지구 주위를 돌면서 우주여행을 안내할 우주정거장 '항해사'를 발사한 지구는 태양계를 벗어나는 2500년의 여정에 오른다.

17년이 흐른 후, 지구는 목성의 궤도를 지나가다가 강한 인력에 영향을 받게 된다.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다수의 엔진이 고장을 일으키고 지구는 목성과 충돌할 위기에 처한다. 우주정거장에 파견된 중령 류배강(오경 분)은 목성 충돌을 막고자 고군분투한다. 배강의 아들 류치(굴초소 분)와 입양된 여동생 한송이(조금맥 분), 운송차 기사인 할아버지 한지앙(오맹달 분)은 우연한 기회에 중대장 왕레이(이광결 분)가 이끄는 지구 엔진 구조대에 합류하게 된다. 이들은 멈춰버린 엔진을 다시 작동시키고자 항저우로 향한다.
 
<유랑지구> 영화의 한 장면

▲ <유랑지구> 영화의 한 장면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유랑지구>는 중국 영화가 처음으로 도전한 SF 재난 블록버스터다. 영화는 2015년 <삼체>로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SF 소설계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한 류츠신 작가가 2000년에 발표한 동명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지구를 이동시킨다'는 원작 소설의 설정만 가져왔을 뿐, 이야기는 <아마겟돈> <지오스톰>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등 할리우드 SF 장르의 걸작을 골고루 버무린 SF 재난물로 새로이 썼다.

<유랑지구>의 '유랑하는 지구'는 중국의 사상을 잘 녹인 아이디어다. 중국에선 전쟁터에서 죽은 것만큼이나 타지에서 사망하는 걸 비참하게 죽었다고 여긴다. 장례는 고향에서 해야 한다. 이런 사상은 중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강시'에서 알 수 있다. 전쟁터나 객지에서 죽은 자를 고향으로 옮겨다 묻어주기 위해 영환술사가 부적을 붙여 움직일 수 있게 만든 상상력의 산물이 강시다.

<유랑지구>는 유랑하는 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집'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할리우드 SF 영화에선 보통 대형 우주선을 만들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전개를 보여주었다. 살던 곳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떠났다. 반면에 <유랑지구>는 지구를 이동시킨다. 지구는 곧 집이라고 보고 있다. 지구는 집이면서 유랑하는 자이기도 하다. 지구는 새로운 터전인 집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류배강 중령은 17년간의 임무를 완수하고 지구로 귀환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줄곧 가족이 머무는 집인 지구를 그리워한다. 답답한 지하 도시 생활이 지루했던 류치는 동생 한송이를 데리고 몰래 바깥세상에 나왔다가 위기에 빠진다. 류치는 한송이, 할아버지 한지앙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한다.
 
<유랑지구> 영화의 한 장면

▲ <유랑지구> 영화의 한 장면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유랑지구>는 할리우드 SF 재난 영화가 흔히 보여주던 영웅주의적인 색채가 옅다. <유랑지구>는 중국에서 제작한 영화이기에 중국인들이 중심에 선다. 이건 어느 나라 영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는 운명공동체로서의 지구를 줄곧 강조한다.

하지만 <유랑지구>에서 세계 연합 정부를 이끄는 세력은 지금의 UN 상임이사국들이다. 중국도 일원일 따름이다. 중국에서 엔진을 수리한다고 위기를 벗어나는 건 아니다. 다른 국가에서도 엔진을 고쳐야 지구는 움직인다. 한 사람의 힘이 아닌, 여러 사람, 나아가 전 인류가 힘을 모아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영화는 외친다. 이것은 인류를 향한 보편적인 호소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치색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유랑지구>는 미국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세계 연합정부의 대변인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한 중국인의 인간적인 '따뜻한' 선택을 거부하고 기계적인 '차가운' 결정을 내리는 우주정거장의 인공지능 '모스'는 영어를 사용한다. 결국 중국(인)의 판단이 옳았다는 대목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의 속내는 분명히 드러난다.
 
<유랑지구> 영화의 한 장면

▲ <유랑지구> 영화의 한 장면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중국은 지난 1월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탐사선을 착륙시켰다. 2020년 화성 탐사선을 발사할 예정이며 2029년경엔 목성 탐사선을 보내기 위하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주 분야에서 우뚝 서기 위한 중국의 '우주 굴기'의 욕망은 <유랑지구>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전랑2>(2017)에 이어 <유랑지구>가 중국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전랑2>와 <유랑지구>의 흥행은 중국인이 군사 대국과 경제 대국의 자신감을 반영한 결과다.

현재 중국은 영화 산업 규모에서 할리우드를 앞질렀다. <유랑지구>는 2002년 <영웅>으로 시작한 중국형 블록버스터가 이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규모와 재미에서 확실한 도약을 이루었다. SF 장르물로 부족함이 없다. 또한, <유랑지구>는 지금 세계 초강대국을 향한 중국의 야망을 읽는 길잡이다. 과거 미국의 <인디펜던스 데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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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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