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강에게> 포스터.

영화 <한강에게> 포스터.ⓒ 인디스토리

 
진아(강진아 분)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첫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녀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술도 마시고, 합평회나 낭독회에도 나가 자리를 빛낸다. 하지만 왜인지 잘 타던 자전거를 팔아버린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그녀에겐 10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 길우(강길우 분)가 있었다. 하필 그와 크게 싸우던 나날이 이어질 때 그에게 사고가 났다. 결과는 의식불명. 진아는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자기 탓인 것만 같다. 매일, 매순간이 괴롭다. 시를 쓰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백이면 백 그녀의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묻는다, 괜찮냐고. 안 괜찮다고 할 수 없으니 괜찮다고 말하는데, 사실 진아는 전혀 괜찮지 않다. 10년 동안 헤어질 거라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다툼을 벌인 후 영영 볼 수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나아갈 수도 멈출 수도 뒷걸음질을 칠 수도 없는 신세가 됐다. 

멈춰버린 시간
 
 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시인 진아.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시인 진아.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영화 <한강에게>는 생각하지 못한 사고로 모든 게 멈춰버린 시인 진아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영화의 첫 장면이 광화문에서의 416 낭독회인 만큼, 5년 전 그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사자가 아니고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일상이란 무엇일까. 

그래도 감히 상상해본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눈물만 흘리고 있을 것 같다.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할 것 같지만, 한편으로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며 위로를 바라고 싶을 것 같다. 끝없는 모순에 흔들린다. 

무엇보다 죄책감이 들 것이다. 그동안 잘해주지 못했던 것, 잘해주기는커녕 심술부리고 짜증내고 화를 내며 멀리하려 했던 말과 행동이 하나하나 떠올라 가시처럼 박혀올 것이다. 이 정도가 감히 상상해본 멈춰버린 시간이다. 쓰는 것으로도 아프다.

아픔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다
 
 진아는 아픔을 안고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진아는 아픔을 안고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느니, 그래도 살아진다느니 하는 말도 있다. 누구나 언젠가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을 잃어봤거나 혹은 잃을지도 모르기에 저런 말들이 고깝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위로를 위한 위로가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말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의 극렬한 경험이라고 해도 고스란히 전해져 완벽한 위로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전하는 바는 꽤 적확한 편이다. 아픔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진솔하게 전달된다. 실제로 많은 경우 처절할수록 조용하고 아플수록 움츠러들며 슬플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영화는 느리면서도 긴 호흡의 롱테이크를 전반적으로 사용해 시인 진아의 상태와 상황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게, 그 감정을 관객이 전달받을 수 있게 하였다. 먹고 싸고 자는 일을 포함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게 있을 것이다. 또한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할 텐데, 와중에도 불쑥불쑥 진아를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들이 애처롭다. 

슬픔을 소화하는 태도
 
 이 영화가 유의미한 건 진아가 슬픔을 소화하는 태도가 아닐까.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이 영화가 유의미한 건 진아가 슬픔을 소화하는 태도가 아닐까.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한강에게>가 유의미한 건 진아가 아픔을 대하고 슬픔을 소화하는 태도가 아닐까. 그녀는 외부성으로서의 일상을 계속 살아간다. 떨쳐버릴 순 없을지라도 과거의 기억을 끌어안고 현재에 두 발을 굳건히 붙인 채 말이다. 누군가에겐 괜찮다고, 누군가에겐 괜찮지 않다고 말하며. 

하지만, 그녀는 내부성으로서의 일상을 영위하기 힘들다. 시인인 그녀에게 외부의 일상 아닌 내부의 일상은 곧 '시'일 텐데, 전혀 진전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 다 거짓말 같고 또 한없이 죄책감만 들 뿐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라면 본인의 경험을 한 번쯤 짚고 넘어간다고 하거나, 이런 큰 경험이야말로 기막힌 자산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을 향해 조용히 그리고 정중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 같냐고. 

세상에, 인간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강은 흘러간다. 나는 멈춰버렸지만 언제나 한강은 흘러간다. 바다는 갔다 왔다 하지만, 한강은 그런 바다를 향해 끝없이 흘러간다. 강을 보고 있으면 동일하게 반복되는 흘러감에 답답하기도 하지만 흘러가는 모습 자체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흘러가기만 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극 중 시인 진아가 쓴 '한강에게' 일부를 옮겨본다. 이 문장들은 박근영 감독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책의 첫 장에 그 사람을 써서 보냈다
그가 손목을 잡아 당겼다
그의 말이 떠오르고
떠오르는 모든 것을 미워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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