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적폐청산"을 외쳐 정권을 교체한 지도 어언 3년여가 지났다. 과연 우리가 그토록 염원했던 '적폐청산'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가십성 사건들이 난무하면서 제대로 된 적폐청산이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기득권, 그리고 적폐청산에 대한 답답함이 쌓여갈 즈음, 지상파 방송국들이 내놓은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우리는 매일 저녁 갑질과 기득권, 가진 자들을 처단하는 속 시원한 상황을 드라마로 만난다.
 
분노는 정의로 치환된다, SBS 금토드라마 <열혈 사제> 
 
 열혈 사제

열혈 사제ⓒ sbs


드라마의 시작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성당에서 쫓겨난,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사제의 등장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통에 대뜸 주먹부터 휘두르고 보는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는 과거 겪은 사건의 트라우마로 인해 폐인이 되어가던 자신을 거둬준 이영준 신부의 구담 성당으로 오지만, 그가 맞닥뜨린 건 이영준 신부의 죽음이다.
 
이영준 신부 자살 위장 사건 뒤에는 구담 구청장, 경찰서, 구담시 국회의원, 그리고 검찰 특수 수사부 부장 검사 등 구담구 지역 카르텔이 있었다. 당연히 김해일 신부는 '분노'하고 혈혈단신 이 사건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전직 국정요원답게 거침없는 그의 액션은 <정글의 법칙>이 떠난 빈자리를 꽉꽉 메운 채, 답 없는 세상에 답답해하던 시청자들의 가슴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며 최근 지상파 드라마에선 보기 드문, 20%대 시청률을 얻는다.
 
김해일 신부는 이영준 신부 사건에서부터 저질 급식을 공급한 왕맛푸드 사건을 거쳐 구담구 카르텔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이용하는 '라이징문'까지 치고 들어간다. <열혈사제>에서 라이징문이 등장하기 얼마 전 '버닝썬 사건'이 터지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선 현실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아 놀랍다는 의견이 나왔을 정도다. 이후 구대영 형사(김성균 분),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를 비롯하여, 서승아 형사(금새록 분), 한성규 사제(전성우 분), 김인경 수녀(백지원 분), 편의점 직원 오요환(고규필 분), 중국집 배달원 쏭싹(안창환 분)까지 김해일 신부와 함께 구담구 카르텔에 대항하면서, 약한 자들의 연대가 얼마나 힘이 센지 보여줬다.
 
현실의 버닝썬 사건 수사는 아직 지지부진하지만, <열혈 사제> 속 라이징문 사건에 대한 응징은 이미 마무리됐다. 라이징문의 실질적 소유주였던 문홀딩스의 차명 사업자들, 아들을 문홀딩스 대표로 내세운 박신우 의원, 구담구청장 정동자, 구담 경찰서장 남석구, 검사 강석태 등은 구담구 어벤져스의 작전에 따라 서로 이전투구하며 몰락했고,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통수 위에 외통수, KBS2 <닥터 프리즈너> 
 
 닥터 프리즈너

닥터 프리즈너ⓒ kbs2


KBS2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의 문을 연 건 태강 병원 응급 의학센터 에이스였던 의사 나이제(남궁민 분)다. 자신의 월급을 털어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를 도왔던 그는, 태강그룹의 망나니 아들 이재환으로 인해 아끼던 환자 부부를 잃는 건 물론 의사 가운마저 벗고 감옥에 가는 처지가 된다. 그랬던 그가 3년 만에 자신이 투옥되었던 서서울 교도소의 의무 과장으로 부임하고자 한다.
 
왜 교도소 의무 과장이었을까? 형사 소송법 471조에 따르면, 형 집행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염려가 있거나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 해당 교도소 과장의 동의를 받아서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조항 때문에 교도소 의료 과장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서서울 교도소에서 그 권력을 누려온 것이 바로 선민식(김병철 분)이었다. 그는 교도소 의료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정치인이나 재벌 등 가진 자들을 위한 형 집행정지를 해왔고 그로인해 권력을 누려왔다. 나이제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희생량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선민식을 향한 나이제의 복수는 곧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져 왔던 부도덕한 정-재계 카르텔에 칼을 겨누는 것이 된다. 초기 교도소 의무과장 자리를 노리던 나이제는 선민식의 가족이 운영하는 하은병원까지 무너뜨린다. 선민식 과장은 그 과정에서 나름 저항을 해보지만, 결국 정의를 향한 나이제의 외통수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자신의 목적을 향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하지만 결국 '정의'의 목적에 충실한 '다크 히어로' 나이제의 방식은 <열혈 사제>의 분노 액션과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시청자들을 환호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이제의 복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진 하은병원을 선민식으로부터 받아내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 병원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야심차게 내보인다. 결국 카르텔의 허브였던 선민식을 제친 나이제가 궁극적으로 상대해야 할 대상은 태강 그룹이라는 재벌이다. 나이제는 자신의 승계를 위해 아버지를 살해하려 하고 정민제 의원 살해마저 사주한 이재준(최원영 분)과의 본격적인 한 판을 앞두고 있다. 과연 나이제의 작전은 재벌을 상대로한 싸움에서도 먹힐까? 엎치락뒤치락하며 선과 악의 롤러코스터가 주는 마력이야 말로 <닥터 프리즈너>의 결정적 매력이다.
 
금권 카르텔에 대항하는 고지식한 선의, MBC <더 뱅커> 
 
 더 뱅커

더 뱅커ⓒ mbc


매회 끝을 알 수 없는 통수의 향연인 <닥터 프리즈너>의 가장 큰 희생양은 아마도 동시간대 수목드라마 MBC <더 뱅커>일 것이다. KBS2 드라마의 부진을 깨끗이 잊게 만드는 <닥터 프리즈너>가 20% 시청률의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김상중과 유동근, 채시라 등 쟁쟁한 출연진의 호연에 잘 짜인 대본으로 승부수를 건 <더 뱅커>는 안타깝게도 4%의 시청률을 올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만으로 <더 뱅커>를 낮게 평가할 수는 없다. 일본에서 만화는 물론 드라마로도 인기를 끌었던 <감사역 노자키>의 리메이크작인 <더 뱅커>는 대한은행이라는 금융계의 절대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정의구현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하며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대한은행 공주지점장이었던 노대호(김상중 분)는 지점 폐쇄라는 불운을 겪지만 뜻밖에도 행장 강삼도(유동근 분)에 의해 감사로 위촉된다. 벌써 3번이나 행장을 연임한 강삼도는 어수룩한 노대호를 감사 자리에 앉혀 그의 공명정대한 감사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위협했던 '배임 행위'로 육관식 부행장을 밀어내는데 이어, 현실 속 KT 채용비리가 연상되는 사건을 통해 도전무(서이숙 분)를 토사구팽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든다.
 
이후 노대호는 새로 등장한 부행장 이해곤(김태우 분)이 은행을 개혁할 것이라며 자신의 편에 서라고 회유하자, '그건 부행장님의 권력욕일 수 있다'며 돌아선다. 드라마는 이합집산하는 대한은행과 정재계 카르텔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길을 고수하는 감사의 정점이 어딘가 궁금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가 더욱 궁금해지는 건, 노대호와 같은 길을 걸었던 이들이 최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행장 강삼도는 노대호가 꺼내 든 은행 개혁과 관련된 D1보고서를 덮으라며 노대호의 동지였던 한수지(채시라 분)에게까지 부행장을 시켜주겠다며 회유한다. 곧 노대호 대 강삼도의 본격적인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이제이, 적을 이용하여 적을 제거하는데 그 누구보다 교활한 강삼도 앞에 우직한 노대호 감사의 칼날이 먹힐까? 더불어 이해곤과 한수지의 욕망의 끝은 어디일지도 궁금하다. 그 욕망과 정의의 파노라마, 그 귀결점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무한한 근로감독관의 '일', MBC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 mbc


근로 기준법에 명시된 내용의 실시 여부를 감독 지도하는 근로 감독관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에 나오듯, 각종 정치적 외풍과 금권을 휘두르는 기업주에 맞서 일개 공무원이 근로 기준법을 법대로 구현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MBC월화드라마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은 바로 이 법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법대로' 하는 히어로가 된 근로 감독관 조장풍을 조명한다.
 
유도 선수 출신이자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시절 조진갑(김동욱분, 일명 조장풍)은 학교 폭력에 적극적으로 끼어든 덕분에 폭력 교사로 낙인 찍혀 직장과 가정을 잃었다. 그랬던 조진갑이었기에, 그는 어렵사리 얻은 근로감독관이란 직분을 복지부동으로 버텨가고자 한다. 하지만 선생직을 잃게 만들었던 그 학교폭력 사건의 피해자였던 학생이 다시 상도여객의 운수 노동자로서 희생될 처지에 놓이자, 그는 예의 불의를 참지 못하던 옛 '조장풍'의 기질을 살려낸다.
 
유도 선수 출신으로, 그 어떤 조폭이 떼를 지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배포에 눈앞에서 깐죽대며 쳐보라는 구대길 이사장(오대환 분)을 향해 대뜸 주먹을 날려버리는 대책 없는 용기까지. 하지만 이번에는 고등학교 교사로 있었을 때처럼 그저 당하지만은 않는다. 그 시절 그의 은혜를 입었던 천덕구(김경남 분)가 운영하는 갑을기획의 특출난 사업 능력을 빌려 일을 해결해나가고자 한다. 구원시 노동지청은 물론, 검찰까지 회유한 구대길이 몇 천의 벌금으로 법망을 피해 나가려 하자, 운행 정지라는 법적 조치를 통해 벌금을 메우려 밤낮없이 혹사당하던 버스와 운수 노동자들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묘수를 발휘, 근로 감독관으로서의 법적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조진갑의 법적 해결은 뜻밖에도 시민의 발을 정지시켰다는 역풍을 맞고 조진갑은 진상조사위에 회부된다. 좋게, 좋게 해결하자는 조사위원들에게 조진갑은 "꼭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어야만 합니까"라며 당차게 반문한다. 그런 가운데 구대길은 고의 파산을 통해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려 하지만, 조진갑을 넘지 못하고 결국 구속되고 만다. 그렇게 조진갑은 근로 감독관으로의 첫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열혈 사제>부터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까지>, 주중과 주말을 휩쓸며 답답한 현실에 가슴이 꽉 막힌 시청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드라마들의 주인공들은 공교롭게도 '아재'들이다. 마흔줄에 들어서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자신의 직분을 지키며 살아가던 이들이 자신을, 혹은 자신 주변의 이들을 위협하는 어떤 사건을 통해 각성하고, 그 사건 이면에 숨겨진 우리 사회 거대한 카르텔에 도전한다.
 
이 드라마들은 평범한 시민의 각성과 실천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도전'의 키가 되는 건 뜻밖에도 그들의 직업이다. <열혈 사제>의 김해일 신부는 신부라는 특별한 위치이지만 그 이전에 그가 속했던 국정원이라는 직업이 지금 그가 해결하고 있는 사건에 주된 '마스터 키'가 된다. 나이제 역시 의사였던 그의 과거가 선민식, 이재준에 대한 복수의 길에 가장 유리한 방패이자 칼이다. <더 뱅커>의 감사 노대호나,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의 근로 감독관 조진갑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저 평화롭게 살아가고픈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직업적으로 만난 사람들, 사건들로 인하여 그들 안의 '정의'가 불타오른다.
 
결론적으론 적폐청산을 위해 애쓰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들의 공통적 특성은 핏대를 올리며 '정의'를 목 놓아 외치지 않는다는 거이다. '분노 조절장애' 김해일 신부는 외려 때론 그의 분노가 귀엽게 느껴질 만큼 순수하며, 그래서 그의 분노는 중독성 있게 주변 사람들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또 시니컬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는 나이제의 여유와 아재 개그를 남발하며 썰렁해서 어느덧 정다움이 느껴지는 노대호, 거기에 몸무게를 불려 그 덩치만큼 넉넉한 조진갑의 넉살이 이들 드라마의 날선 경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짓게 만든다.
 
마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았다던 그 전설의 복서처럼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매료시켜 내 편의 긴장을 풀어주되, 결코 정의의 전선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투철함으로 이 시대 넉넉한 히어로의 모습을 구현한다. '넉넉함'과 '투철함', 어쩌면 이들 드라마의 환영받는 주인공으로부터 사람들이 그리는 히어로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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