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 역을 맡은 남궁민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 역을 맡은 남궁민ⓒ KBS2

 
"형 집행정지는 일종의 제도이지만 의학적인 접근과 권력, 인물들이 맞물리지 않나. 그걸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황인혁 PD)

KBS2 <닥터 프리즈너>는 '형 집행정지'의 (판타지가 조금 섞여 있는) 교과서와 같은 드라마이다. 형 집행정지란 말 그대로 형(刑)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인데, 수형자에게 형의 집행을 계속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판단될 때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뤄진다. 물론 '일정한 사유'에 해당돼야 하고, 검사의 지휘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그 판단은 꽤나 '정치적'이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하는 게 뭐지?"
"몸을 망가뜨려야죠."


나이제(남궁민)는 '형 집행정지'를 이끌어 내는 데 탁월하다. 그는 여대생 살인교사 혐의(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 씨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벌 사모님 오정희(김정난)를 찾아가서 형 집행정지로 꺼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오정희는 코웃음을 쳤다. 돈과 인맥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실패했는데, 듣도보도 못한 작자가 와서 하는 말에 신뢰가 생길 리 없다. 그러나 나이제는 오히려 더욱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다.

판코니 빈혈. 나이제는 이름도 요상한 유전병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럴 듯하게 들렸을까? 오정희는 나이제의 지시에 따라 판코니 빈혈의 증세를 몸에 새기기 시작했다. 몸에 반점 모양으로 살을 태우고, 몸을 끊임없이 괴롭혀서 혈소판 수치를 떨어뜨렸다. 수면 시간도 하루 2시간으로 줄였다. 몸은 자연히 쇠약해졌고, 수시로 코피를 쏟을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오정희는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고, 병원 특실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정희의 환심을 산 나이제는 그의 도움으로 서서울 교도소 의료과장이 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여성을 감금하고 폭행한 죄로 수감된 사이코패스 김석우(이주승)를 교도소에서 빼내려한다. 김석우가 재벌 아들이라는 걸 알고 거래를 한 것이다. 이번에는 양극성장애와 윌슨병이라는 유전병을 작전에 활용했다. 이렇듯 <닥터 프리즈너>는 형 집행정지를 다양한 인물들의 역학 관계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닥터 프리즈너>의 한 장면

<닥터 프리즈너>의 한 장면ⓒ KBS2

 
드라마의 인기 덕에 형 집행정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그런 중에 현실에서 형 집행정지를 신청한 사례가 등장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지난 17일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는 구속 기간이 도과해 기결수 신분이 된 박 전 대통령의 형 집행정지 신청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그렇다면 형 집행정지를 신청한 '사유'는 무엇일까?

"경추 및 요추 디스크 증세 등이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불에 덴 것 같은 통증과 칼로 살을 베는 듯한 통증, 저림 증상으로 정상적인 수면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유 변호사는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집권한 현 정부가 고령의 전직 여성 대통령에게 병증으로 인한 고통까지 계속 감수하라는 것은 비인도적인 처사"라고 꼬집었다. 또 "극단적인 국론의 분열을 막고 국민 통합을 통한 국격의 향상을 위해서" 형 집행정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도 "여성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계신 점을 감안해 국민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거들고 나섰다.

관건은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한 판단이다. 그건 대개 구치소 내 의사의 몫이다. 드라마 속에서 나이제가 서서울 교도소 의료과장이 되기 위해 그토록 애썼던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다소 의아한 지점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의 "형 집행정지 신청은 구치소 내 의사가 건의하는 형태인데 외부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신청한 것이 특이하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해선 법무부가 나서 공식 발표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법무부는 자료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으며, 음식도 사먹는 등 식사도 잘 하고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또, 허리 통증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도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최근 '형 집행정지 신청'에 의문이 따라붙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 속 형 집행정지를 바라보는 대중의 우려
 
 JTBC <뉴스룸>의 한 장면

JTBC <뉴스룸>의 한 장면ⓒ JTBC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는 무려 32번이나 형 집행정지를 성공시켰지만, 현실 속에서 형 집행정지는 그리 쉽게 허용되지 않고 있다. 2013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씨가 형 집행정지를 받고 병원 VIP 병실에서 10년 동안 호의호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케이스지만,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병보석(病保釋)으로 풀려난 상태에서 술담배를 즐겼다는 정황이 포착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동안 형 집행정지라는 제도는 인도적인 차원이라는 본연의 목적과 기능에 충실했다기보다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가진 자'들의 '편의'를 위해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닥터 프리즈너>는 그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고, 제도적 허점에 대한 대중들의 우려를 환기시켰다.

박 전 대통령의 형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우선 형 집행정지에 대한 대중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불식시키는 게 먼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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