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철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

김호철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 국제배구연맹

 
'김호철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김호철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이 올림픽 예선전 등 중요한 국제대회를 앞둔 상황에 대표팀을 포기하고 프로팀으로 가려고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배구계와 배구팬들은 관련 기사와 커뮤니티 등에서 김호철 감독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등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급기야 대한민국배구협회(아래 배구협회) 남자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인 최천식 인하대 감독이 17일 책임을 통감하고 전격 사퇴했다.

남자 경기력향상위원회는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과 선수를 선발·관리하는 핵심 부서다. 최 위원장의 사퇴는 당연한 조치라는 반응도 나온다. 그만큼 사태의 파장이 크다는 방증이다.

또한 배구협회는 김호철 감독을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김 감독은 이번 사태로 스포츠공정위에서 징계를 받는 건 물론, 대표팀 감독을 계속 유지할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대표팀, 내가 알아서 정리하겠다"... 김호철 감독의 충격 발언

지난 16일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OK저축은행 핵심 관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실 관계를 물었다. 이 관계자는 김호철 감독과 진행된 그간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주요 발언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김세진 감독이 사퇴한 이후 차기 감독 1순위로 석진욱 수석 코치를 검토하고 있었다. 김호철 감독은 후보군에도 없었다. 그런데 중간에 김호철 감독이 저희 구단 고위 관계자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아직 감독이 정해지지 않았으면 나한테도 기회를 달라'고 요청을 했다.

구단 고위 관계자는 처음에 김 감독에게 '대표팀 전임 감독이고, 올림픽이라는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있는데 어떻게 프로팀으로 오실 수 있겠는가. 좀 의아하다. 올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라고 물었다. 그런데 김 감독이 '그건 내가 알아서 정리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 내용을 듣고 저희도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김호철 감독이 우리 구단에 감독 선임 가능성을 계속 타진했고, 본인이 직접 전임 감독 관련 문제는 다 정리를 하겠다고까지 말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얘기해볼 수 있다'고 해서 접촉을 하게 됐다. 그러니까 김 감독이 국가대표 전임 감독직을 원만하게 마무리를 한다는 조건 하에 저희가 감독 후보군에 넣어서 검토를 해본 것이다.

그러던 도중 지난 4월 9일 일부 언론이 '김호철 OK저축은행 감독 내정' 기사를 냈다. 그 이후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그런데 언론 보도가 OK저축은행이 먼저 영입 제안을 해서 국가대표 감독을 빼오려고 했는데, 김 감독이 고심 끝에 고사하고 대표팀에 전념하겠다는 식으로 쏟아져 나왔다. 우리 구단은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사실 관계만이라도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어서 그간의 진행 과정을 외부에 밝힌 것이다."


김호철 감독도 자신이 먼저 OK저축은행에 감독직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17일 "김호철 감독이 배구협회와 통화에서 본인이 먼저 OK저축은행에 감독을 맡을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한국 남자배구호 선장... 침몰 위기에서 먼저 '탈출 시도'

OK저축은행이 김호철 감독에게 먼저 영입을 제안한 것과 김호철 감독이 먼저 프로팀으로 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두 상황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귀책 사유와 책임의 문제에도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팀 감독이 올림픽 예선전이라는 중요한 국제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자신의 영달을 위해 대표팀을 내팽개치고 프로팀으로 가려고 했다는 사실은 배구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과 상처를 안기는 일이다. 결국 비난 여론이 빗발치면서 김호철 감독의 프로행은 실패했다.

한 현직 배구팀 감독은 "김호철 감독이 먼저 프로팀으로 가려고 했다는 사실을 시인한 순간, 대표팀 감독으로서 자격 상실"이라며 "대표팀에서 도망치려다 실패하자 다시 돌아온 분이 어떻게 대표팀 선수를 소집하고,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라'고 지시할 수 있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최근 남자배구는 갈수록 국제경쟁력이 하락해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스피드 배구와 장신화라는 세계 배구 흐름에 뒤처지면서 20년 동안 올림픽 출전도 못하고 있다. 이제는 아시아 중위권 국가조차 이기기 버거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김호철 감독은 맨 앞에 서서 대표팀 살리기에 혼신을 기울여야 할 선장이다. 그런데 위기에서 가장 먼저 탈출을 시도한 셈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 남자배구 대표팀을 더 비참하게 만든 상황이다.
 
 아시안게임 당시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으로 작전 지시하는 김호철 감독(중앙, 자료사진)

아시안게임 당시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으로 작전 지시하는 김호철 감독(중앙, 자료사진)ⓒ 연합뉴스

 
대표팀 감독 그만두는 방향으로 '계약서 정면 위반' 시도

무엇보다 김호철 감독이 전임 감독 계약서 위반에 해당하는 행동을 시도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전임 감독 계약서에는 계약 기간 중 프로팀으로 가서는 안 되고, 갈 경우에는 당해 연도 연봉의 50%를 반환하도록 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

때문에 대표팀 감독을 포기하고 프로팀으로 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다는 건 중대한 계약 위반이다. 단순한 징계를 논할 사안이 아니라, 해임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례에서는 비록 프로팀과 계약을 맺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감독의 프로팀 진출 시도 자체로도 문제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배구협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 따르면, 제6조(결격사유)에 '불미스러운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임원 및 선수는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배구협회 관계자도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김호철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그만두는 방향으로 계약서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를 했다"며 "계약서상으로 보나, 대표팀 규정으로 보나 해임 사유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참으로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번 일은 전임 감독 도입 취지를 '전임 감독'이 앞장서서 무너뜨린 황당한 사태이기도 하다. 대표팀 전임 감독을 도입한 핵심 이유는 장기적인 플랜으로 대표팀의 국제경쟁력을 끌어올리자는 측면과 계약 기간 도중 낮은 처우 때문에 대표팀을 그만두고 프로팀으로 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물론 국가대표팀에 충성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김호철 감독이 프로팀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도 존중 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직을 내려놓고 하는 게 도리다.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직이 프로팀과 협상하다 안 되면 다시 돌아와도 되는 자리가 돼선 안 된다.

대표팀 감독의 연봉이 프로팀 감독보다 낮아 불만족스럽다면, 애초부터 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았다면 될 일이다. 결국 김호철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프로팀으로 가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이용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물론 대표팀 감독의 연봉이 프로팀 감독보다 낮은 부분은 개선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이 부분을 대표팀 감독의 프로팀 진출 시도를 옹호하는 소재로 삼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OK저축은행도 사과 필요... 배구협회·KOVO, 재발방지책 시급

영입을 논의한 OK저축은행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대표팀 전임 감독과 영입 협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대표팀을 위해 13개 구단들이 약속한 사항을 깬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지고, 배구계와 배구팬들에게도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똑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확실한 메시지를 남겨야 할 책무가 OK저축은행에도 있다.

배구협회는 이번 사태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유탄을 맞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배구협회가 김호철 감독의 프로행 움직임을 알고도 방관했다는 설, 프로팀이 원하는 김호철 감독을 내주고 보상을 받아 돈을 마련하려 했다는 설 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모두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처음 OK저축은행 내정 기사가 나오기 하루 전날 김호철 감독이 배구협회를 찾아 왔었다. 그때도 김 감독은 OK저축은행으로 간다는 소문에 대해 정색하며 부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무슨 의도로 확인하지도 않고 추측성 얘기를 뿌리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책임 추궁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또 있다. 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KOVO)은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KOVO 규정에 따르면 대표팀 선수들은 대표팀으로 선발된 이후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될 경우에도 일정 기간 경기 출전 금지라는 제재를 받는다.

그런데 대표팀 감독이 계약 기간 도중 본인의 의사로 그만두고 프로팀으로 가려고 시도한 경우에는 실효성 있는 제재 규정이 없다. 형평성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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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연대(www.cjycjy.org) 정책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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