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N 드라마 <빙의> 포스터

OCN 드라마 <빙의> 포스터ⓒ OCN


귀신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갈수록 무서워지고 있다. 귀신이 머리 풀어헤치고 입가에 피를 묻히고 등장했던 KBS 2TV 공포 드라마 <전설의 고향>쯤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다.
 
지금 OCN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빙의>도 편한 마음으로 보기는 힘든 드라마다. 앞서 방송돼 많은 사랑을 받았던 OCN 드라마 <손 the guest>의 귀신 박일도에 비하면, <빙의>의 귀신 황대두(원현준 분)는 외형상으로는 덜 무서워 보인다. 하지만 끔찍하기는 매 한가지다. 박일도처럼 산 사람의 몸을 빌린 뒤 흉기로 눈을 찌르는 일은 하지 않지만, 그냥 재미 삼아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황대두의 모습도 편히 시청하기는 쉽지 않다.
 
황대두는 박일도에 비해 폭력성은 낮지만 좀더 지능적인 듯하다. 살아 생전 연쇄살인범이었던 황대두는 의사 선양우(조한선 분)나 재벌 2세 오수혁(연정훈 분) 같은 사람들의 몸에 빙의돼, 외형상으로는 말쑥하고 세련된 모습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경찰과 신경전을 벌이다가 허를 찌르는 방법으로 살인을 감행하곤 한다. <전설의 고향>에 나왔던 귀신들은 차라리 순박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황대두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청자들을 잔뜩 겁주고 있다.

갈수록 흉포해지는 귀신들, 그 이유
 
<손 the guest>나 <빙의> 같은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듯, 최근 드라마 영화 속의 귀신들은 갈수록 흉포해지고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다. 현실 세계의 범죄자들처럼 귀신들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귀신 드라마가 점점 더 무서워지는 것은 시청자들이 공포물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 시대 사람들의 정서가 그만큼 삭막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공포물에 대한 수요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점은 조선시대 문학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나온 귀신 소설들을 봐도, 시대 분위기에 따라 귀신 모습이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문학작품을 소재로 귀신 형상의 변천 과정을 정리한 국문학자 김정숙의 '조선시대 필기·야담집 속 귀신·요괴담의 변화 양상'은 그 변천 양상을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아래 글 속의 <용재총화>는 1525년 발행됐고, <강도몽유록>은 1637년 이후에 발행됐다.
 
"(귀신의) 구체적 형상이 문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용재총화>에서부터이지만, 사실적이며 그로테스크(기괴)한 형상은 <강도몽유록>에 와서였다. 19세기의 필기·야담집은 그로테스크한 귀신보다 조령(祖靈, 조상 영혼)에 대한 내용이 부각되며 유교적 이념을 강조한다. ······ 1900년대 이후 고전소설 속 원귀들은 근대 영화 기법의 영향으로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원귀로 전형화된다."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가 2008년 발행한 <한자한문교육> 제21집.
 
현재 우리 머릿속에 입력된 조선시대 귀신의 이미지는 1900년대 문학작품들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고 했다. 우리 머릿속의 조선시대 귀신이 실제 조선시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귀신의 이미지가 시대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위 논문 속의 <용재총화>는 조선 전기로도 볼 수 있고 중기로도 볼 수 있는 시기에 나왔다. 유학자 성현(1439~1504년)이 정리한 책이다. 다른 책들에 비해 귀신 이야기를 많이 수집해놓은 이 책을 통해, 이 시대 사람들이 떠올린 귀신의 이미지가 지금보다 훨씬 소박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귀신들 중에서 구체적 형상이 묘사된 것은, 큰 관을 쓰고 나무에 의지해 서 있다가 점점 사라지는 귀신, 머리를 풀어헤친 채 붉은 옷을 입고 앉아 있다가 담장을 넘어 달아나는 귀신, 허리 위는 보이지 않고 종이 치마를 입었으며 다리가 앙상한 귀신 정도다.
 
허리 위가 안 보이는 귀신이 좀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용재총화> 속의 귀신들은 현대인들이 마음 편히 대할 만한 귀신들이다. 그런 모습을 한 존재가 눈앞에 실제로 나타난다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영화나 TV에서 마주친다면 편한 마음으로 시청하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끔찍한 전쟁을 겪은 뒤 바뀐, 귀신의 형상

물론 <용재총화>가 발행될 당시의 사람들한테는 그 정도도 상당히 끔찍했을 것이다. 조선 건국 이후 100년 넘게 태평성대가 이어지던 그 시절에는 그 정도의 귀신도 무섭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에 이어 정묘호란·병자호란 같은 끔찍한 전쟁들을 연이어 겪은 1600년대 전반기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시대가 되면 <용재총화> 속의 귀신들은 '명함'도 내밀 수 없게 된다. 병자호란 뒤에 나온 작자 미상의 한문소설 <강도몽유록>에 묘사된 귀신의 형상은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한 길 가량의 노끈과 한 자쯤 되는 칼이 여인들의 목에 찔려 있거나 가루가 된 뼈에 매달려 있었다. 어떤 이는 머리가 다 깨져버렸고 어떤 이는 입과 배에서 피가 흘렀으니, 그 참혹한 모습은 차마 볼 수도 없고 말로 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강도몽유록>을 포함해 1600년대에 나온 문학작품들은 이처럼 끔찍하고 기괴한 귀신들을 보여주었다. 위의 김정숙 논문은 이 시대 귀신 소설의 경향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전란 이후 황폐와 혼란 속에서 수많은 죽음이 양산되지만, 그 수습마저 제대로 되지 못하는 현실,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가 판을 치는 부정적 현실을 기괴한 형상의 요괴를 통해 암유(은유)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악령 황대두가 저지른 살인사건 때문에 출동한 경찰들.

악령 황대두가 저지른 살인사건 때문에 출동한 경찰들.ⓒ OCN

  
그런데 병자호란 후로 사회가 안정되고 국제적으로도 평화로워지면서 기괴한 형상의 귀신이 이전보다 줄어들기 시작했다. 문학작품 속의 귀신 형상이 덜 기괴하게 된 것이다.
 
일례로, 숙종 때인 1701년 과거시험에 급제한 임방의 <천예록>이나 1692년에 출생한 신돈복의 <학산한언>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이전 시기 귀신들에 비해 '점잖은' 편이다. 키가 크고 눈이 무서운 귀신, 횃불처럼 번득이는 두 눈에다가 다리는 한쪽뿐이면서 밀짚모자와 도롱이를 걸친 귀신 정도다.
 
이는 시대 분위기에 따라 인간 마음속의 귀신도 모습을 달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귀신이 실제로 있는지, 있다면 어떤 모습인지에 관계없이, 우리 마음속의 귀신은 시대 상황에 따라 변신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손 the guest>나 <빙의>에서처럼 요즘 들어 귀신들이 한층 더 끔찍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우리 시대가 황폐해지고 우리 마음이 황량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진짜로 경악해야 할 대상은 화면 속의 악령들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내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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