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감독.

배우 김윤석이 첫 영화 연출작 <미성년>을 들고 관객과 만나고 있다. ⓒ 쇼박스

     
지난 5년 김윤석은 말 그대로 '조용히' 움직였다. 2014년 연말 한 연극을 접한 뒤 영화 연출을 결심했고, 해당 희곡을 쓴 작가와 만나 부지런히 고치고 또 고쳤다. 그렇게 2019년 영화 <미성년>의 감독으로서 김윤석은 관객과 만나게 됐다. 

"굉장히 조용히 준비했지. 알게 모르게. 허언을 할 수는 없잖나. 아무리 내가 열심히 준비하고, 또 완성한다고 해도 투자가 안 될 수도 있고, 캐스팅에서 무너질 수도 있고."

이 한 마디에 김윤석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명징하게 드러난다.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두드리고 토론하며 고뇌하는 기질. 연기에서 보이던 그의 자세가 연출에도 반영되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작품에 있어서 그는 철저한 '학구파'였다.

<미성년>, 김윤석의 접근법

연극 공연 당시 제목은 <옥상위의 카우보이>. 부모의 불륜으로 서로를 원망하게 된 두 청소년의 이야기였다. 영화에서도 주요 골격은 유사하다. 가정적인 줄만 알았던 주리(김혜준)의 아빠 대원(김윤석)이 같은 학교 동급생 윤아(박세진)의 엄마 미희(김소진)와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두 청소년의 갈등, 나아가 이들이 어른의 무책임함을 극복해가는 이야기다.

"원작은 소년과 소녀였다. 작가를 만나서 영화화를 해보자고 얘기했고 두 인물을 소녀로 하자고 하니 원래 본인의 설정도 두 소녀였다고 하더라. 캐스팅이 어려워서 소년과 소녀로 무대에 올린 거라고 했다. 불륜, 어찌 보면 흔한 소재잖나. 근데 그 사건 중심이 아이들로 바뀌는 순간 모든 게 신선해 보이더라. 영화로 만들고 싶었지만 연극을 영화화 할 때 많이들 실패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완전히 새로 집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이보람 작가가 많이 고생했지. 두 소녀로 하자고 한 건 소년과 소녀일 때 자칫 청춘 로맨스로 보일 수 있겠더라. 영화가 말하려는 건 그 방향이 아니라서 여학생들로 해서 집중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미성년>이 흥미로운 건 불륜을 소재로 하면서도 인물 간 갈등 구도와 주제 의식이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점. 관객에 따라선 두 소녀, 주리의 엄마 영주(염정아)와 윤아 엄마 미희가 남성들에 비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묘사되기에 젠더 관점에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김윤석은 이런 해석을 존중하면서도 다소 경계했다.
 
 영화 <미성년> 장면

영화 <미성년> 장면 ⓒ (주)쇼박스

 
"예를 들어 김희원씨가 맡은 학교 선생님은 사실 그렇게 잘못하는 캐릭터는 아닌데 그 시스템 안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이다.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학생을 바라보지. 주리는 모범생, 윤아는 문제학생으로 보잖나. 본인의 잣대로 아이들을 재다가 한 방 맞는다. 그리고 그런 성 역할 관점의 해석은 오히려 이 영화를 좁게 바라보게 하는 것 같다."

오히려 김윤석은 세대 문제와 성년의 개념으로 작품에 접근하고 있었다. 단순히 여성이 주체적이고, 남성이 비겁하다는 관점보다는 큰 틀에서 누가 성숙한 사람이고 미성숙한 존재인가라는 고민을 담은 것. 

"제목인 <미성년>은 '우리는 모두 미성년이다'의 준말로 생각하시면 된다. 이 제목으로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오릿집 연가(극 중 미희가 오리고기 식당 사장이다-기자 주), 유원지의 불청객, 주리와 윤아 등 여러 후보들이 있었는데 미성년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중의적 의미지. 우리 시대에 성년이 어디 있을까, 대체 누가 미성년이고 성년인가, 아름다울 미라고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중년이 과연 존재할까 등. 많은 걸 얘기할 수 있더라. 
 
대원을 예로 들면 몇 번 설명한대로 부대의 대원 이런 식으로 익명성에 숨은 개인을 상징하는데 그를 괴물같은 악당으로 그릴 필요가 없었다. 끔찍한 사건은 뉴스에 이미 많이 나오잖나. 관객들이 대원에게 분노를 품는다면 이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보다는 블랙코미디 성격을 품고 기성세대의 나약함, 찌질함을 대변하는 것이 맞다고 봤다. 

영화 중간에 대원이 바닷가 방파제에서 어떤 할머니에게 삥을 뜯기잖나. 반대편에선 비행 청소년들이 진을 치고 있고. 딱 아랫세대와 윗세대에 끼어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인물이지. 아내에게도 늘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잖나. 무슨 그 나이까지 생각을 계속 하나. 대원이 우물쭈물 하는 사이 이미 아이들은 사건을 해결해가고 있었고. 그런 대비를 통해 관객분들이 각 인물에 이입할 수 있다고 봤다."

   
 김윤석 감독.

ⓒ 쇼박스


"우린 모두 노력할 뿐"

같은 맥락에서 <미성년>의 주요 사건이 불륜이라는 게 김윤석에겐 크게 의미 부여할 대상이 아니었다. 작품에 따라 불륜은 종종 미화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추하게 묘사되기도 하는데 그런 착시효과에 애초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사실 불륜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었다. 불륜에 대한 어떤 이유라도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그 이후 해결이 내겐 중요했다. 가족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다. 그 안에서 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두 개지. 누군가 돌아가거나 가족이 해체되거나. <미성년>은 후자다. 불륜의 이유나 변명은 알 필요없고, 해체 위기에서 인물들이 대처하는 모습이 중요했다. 

사실 영화를 준비할 때 청소년 심리 상담사에게 많은 자문을 구했다. 여러 상담 사례를 들으며 그런 가정에 처했을 때 학생들이 어떤 상태인지를 살폈다. 현실을 아예 외면하는 아이도 있고, 불안에 떠는 아이들이 있다. 또 본인이 직접 겪지 않더라도 친구의 불행을 보고 본인이 그런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도 있었다."


영화 속 주리와 윤아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 하려 했다. 어른들은 반대로 회피하거나 마음 속으로 꾹꾹 감정을 눌러담는 식이었다. 신체적 나이가 성년과 미성년의 잣대가 될 수 없음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나이가 든다 해도 온갖 유혹이나 상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가 몸소 알고 있는 진리 중 하나.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없어지는 게 단적인 예다. 시야도 더 좁아지곤 한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게 피곤한 거다. 내가 마음 편한 사람과만 지내겠다는 거지.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선) 청소년보다 어른이 더 불안할 수도 있다. 영화 속 대원이 퇴직한 친구가 차렸다는 펜션에 놀러갔지만 이미 친구는 망했잖나. 이 사회는 한 번 삶에서 낙오되면 다시 돌아온다거나 하는 완충 시스템이 없어 보인다. 우린 굉장히 냉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통해 김윤석이 관객에게 던진 질문을 다시 김윤석에게 돌렸다. 과연 성숙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죽는 날까지 성숙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성년 아닐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운전면허처럼 한번 따 놓으면 계속 갱신되는 게 아니라 무뎌지고 이기적이 되는 순간에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기 쉬운 게 인간의 삶"이라며 그는 "성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성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존재할 뿐"이라 덧붙였다.

 
 김윤석 감독.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선) 청소년 보다 어른이 더 불안할 수도 있다. 영화 속 대원이 퇴직한 친구가 차렸다는 펜션에 놀러갔지만 이미 친구는 망했잖나. 이 사회는 한 번 삶에서 낙오되면 다시 돌아온다거나 하는 완충 시스템이 없어 보인다. 우린 굉장히 냉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쇼박스

 
감독 김윤석, 그 이후

이제 김윤석은 감독으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모든 창작자가 그렇듯 작품에 만족할 순 없다면서 그는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긴장감을 드러냈다. 매번 걱정하고 떨면서도 "영화라는 공동작업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재밌는 일 중 하나"라는 신념으로 자신과 스태프를 독려했던 그다. 이 작품이 전부가 아니다. 20대 초반 연극 무대에 서고, 또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쌓아놓은 여러 재료들이 여전히 그의 노트북에 있다. 과연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은 무엇이 될까. 

"첫 작품을 찍었다고 무슨 자신감이나 그런 게 생긴 건 아니다. 다만 적어도 개성 있는 작품이라는 평은 듣고 싶다. 완성도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건 아직 먼 길이고. 요즘 영화들이 편집도 음악도 무슨 공산품처럼 비슷한 경향이 있는데 개성 있는 영화가 한 편 나왔다는 말이 지금은 제일 좋을 것 같다. 다음 작품으로 부족한 걸 채워가야겠지. 

전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을 최선을 다해서 할 뿐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걸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장르적으로 무슨 기교가 뛰어난 영화보단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해지는 순간을 포착한 영화를 좋아한다. 그걸 잘 표현하기 위해선 무뎌지는 감각을 살려야지. 사람에 관심을 계속 갖고 대화하려 한다. 이번 영화로 인연이 된 혜준과 세진이와도 종종 만나서 얘길 했다. 염정아씨, 소진씨와도 같은 중년이지만 난 남성이고 그분들은 여성이라 생각하는 지점이 다르잖나. 그렇게 얘기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 같다."
김윤석 미성년 염정아 김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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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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