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성년> 포스터

영화 <미성년> 포스터ⓒ (주)쇼박스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리(김혜준)는 아빠 대원(김윤석)의 불륜 사실을 알아채고는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전전긍긍해한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아직 엄마 영주(염정아)는 이와 같은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눈치다. 주리는 아빠의 불륜 상대 미희(김소진)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가 몰래 염탐도 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그날도 주리는 식당을 염탐 중이었다. 다만, 미희 그리고 그녀의 딸이자 주리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년배 윤아(박세진)에게 염탐이 탄로 나는 바람에 부리나케 빠져나오느라 휴대폰을 떨어뜨린 게 화근이었지만 말이다. 다음날 윤아는 학교에서 주리를 불러낸 뒤 휴대폰을 건네면서 윤아의 엄마 영주에게 미희와 대원의 불륜 사실을 폭로하고 만다. 아주 짧은 찰나였다. 이후 모든 것이 뒤바뀌고 만다.

영화 <미성년>은 두 남녀가 아슬아슬하게 불륜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해당 사실이 아내에게 폭로되면서 두 가정이 거대한 후폭풍에 휘말리게 되고, 이후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들과 그들 자녀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폭로된 불륜, 불똥 튄 두 가정

이번 사건으로 가장 충격이 컸을 것으로 짐작되는 영주는 생각보다 훨씬 담담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여자 영주로서의 역할에 치중하고 싶었겠지만, 주리 엄마로서의 역할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처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없는 참담한 현실을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영화 <미성년> 스틸 컷

영화 <미성년> 스틸 컷ⓒ (주)쇼박스

 
혹시 자신과 대척점에 서있는 미희를 같은 여자로서 동병상련의 시선으로 바라본 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든 일생일대의 위기 상황에서도 미희에게 갓 쑨 죽을 건네는 등 따듯한 마음씀씀이를 발휘하면서 속으로는 피눈물을 삼켰을 그녀를 생각하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대원의 불륜 상대 미희는 거칠 것 없어 보일 만큼 강한 여성상으로 그려져 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스스로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충실히 따르는 스타일의 여성이었던 탓이다. 이러한 성향이 아마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임을 알면서도 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회피해야 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그저 쿨하게 받아들이도록 했음이리라.
 
 영화 <미성년> 스틸 컷

영화 <미성년> 스틸 컷ⓒ (주)쇼박스

 
어쨌거나 미희의 선택과 결정은 두 가정에 평지풍파를 일으켜놓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겉으로는 강한 척 해보지만 사실 내면은 한없이 여린 사람이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짐짓 꼿꼿하게 행동했던 건 어쩌면 그러한 속내를 감추기 위해 겉으로만 강해 보이는 척하는, 일종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두 가정을 뒤흔든 사건의 발단은 사실상 대원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책임함으로 일관한다. 사건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 아빠를 찾아 고군분투하던 딸 주리와는 달리 당장의 위기만을 모면하려 하고, 두 가정을 불행으로 몰아간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려던 대원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영주가 대원에게 미희와의 불륜 행태에 대해 "사랑이냐 욕정이냐"고 물었을 때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의 행동에는 한결 같이 우유부단함이 배어있었다.
 
 영화 <미성년> 스틸 컷

영화 <미성년> 스틸 컷ⓒ (주)쇼박스

 
무책임한 어른들, 누가 성년이고 누가 미성년인가

불륜으로 엮인 두 가정의 어른들뿐 아니라 영화 곳곳에서 불쑥 등장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인들의 면면은 형편없는 모습으로 그려질 때가 잦다. 윤아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편의점에 들이닥친 남녀 손님은 미성년인 윤아에 비해 훨씬 덜 떨어진,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을 일삼곤 한다.
 
 영화 <미성년> 스틸 컷

영화 <미성년> 스틸 컷ⓒ (주)쇼박스

 
주리와 윤아를 꾸짖던 학교 선생님(김희원)은 또 어떤가. 윤아를 먼저 집으로 돌려보낸 뒤 주리 앞에서 윤아의 뒷담화를 일삼던 선생님의 모습은 전혀 어른스럽지가 못하다. 이러한 행태에 뿔이 난 주리가 도리어 선생님을 질책하던 모습은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불륜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 당사자들, 그러니까 주리와 윤아의 가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사건이 벌어진 후 그들의 행동과 내면을 뒤쫓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이른바 '웃픈'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 <미성년> 스틸 컷

영화 <미성년> 스틸 컷ⓒ (주)쇼박스

 
김윤석과 염정아 그리고 김소진까지,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려 500대 2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김혜준과 박세진 두 신예 배우의 연기 앙상블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에 데뷔한 김윤석의 역량이 돋보이는 건 바로 이렇듯 뛰어난 캐스팅뿐 아니라, 각 캐릭터마다 내면을 섬세하게 훑고 이를 묘사한 디테일함에 있다.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 그리고 어른스러운 아이들. 영화를 관람하다 보면 과연 누가 어른이고 아이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책임감 없는 어른들이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성년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하는, 표면은 매우 말랑말랑하고 부드럽지만 그 이면은 시퍼렇게 날이 선, 무척 예리한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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