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아일리시가 3월 29일 발표한 정규 앨범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의 앨범 커버

빌리 아일리시가 3월 29일 발표한 정규 앨범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의 앨범 커버 ⓒ 유니버셜뮤직코리아

 
17세 '배드 가이'가 팝 시장을 흔들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첫 정규 앨범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와 영국 UK 앨범 차트 정상을 동시 석권한 로스앤젤레스 출신 2001년생 소녀, 빌리 아일리시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에서 첫 주 31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영국에선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 가장 어린 여성 솔로 가수가 됐으며,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차트 1위 곡 'Bad guy'를 포함 톱 텐 안에 세 곡을 진입시켰음은 물론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안에 앨범의 9곡을 차트인 시키는 등 완연한 대세의 지위를 굳히고 있다.

2016년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데뷔곡 'Ocean Eyes'를 발매한 빌리 아일리시는 2017년 데뷔 EP < Don't smile at me >를 공개하며 인터넷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국 BBC의 '사운드 오브 2018'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던 그의 음악은 지난해부터 여러 조짐을 보여왔는데, 2018년 애플(Apple)의 연말 광고 주제가 'Come out and play'를 시작으로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 <로마>로부터 영향을 받은 합작 앨범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려왔다.

올해는 그 기세가 더욱 거세졌다. 선공개 싱글 'Bury a friend'는 빌보드 싱글 차트 14위까지 올랐을 뿐 아니라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 1억 회를 넘겼다.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 뮤직에서 이번 정규 앨범을 '미리 담기'한 유저의 수는 80만 명에 달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7위와 스포티파이 차트 1위에 오르며 인기 싱글이 된 ‘bad guy’의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빌보드 싱글 차트 7위와 스포티파이 차트 1위에 오르며 인기 싱글이 된 ‘bad guy’의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 Billie Eilish 유튜브 캡쳐

 
빌리 아일리시는 기존 팝스타 이미지와 거리가 먼 인물이다. 읊조리는 듯 가녀린 목소리, 최소 장치만으로 꾸민 어두운 비트, 자기 연민과 혐오를 뒤섞은 메시지는 그를 하여금 '다크 히어로'라 불리게 했다. 빌리는 흔히 여성 팝스타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늘씬한 몸매, 인형 같은 외모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이는 빌리가 유년기부터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정형화된 음악인의 길과는 전혀 다른 성장 배경을 갖고 있는 덕이다. 11살 때부터 본인의 곡을 쓰고 노래를 불렀던 그는 이미 음악 활동을 하고 있던 오빠 피네스와 함께 본격적인 창작을 시작했다. 피네스는 빌리 아일리시의 유일한 프로듀서이자 공동 작곡가이며, 라이브 무대를 함께하는 핵심 인물이다. 

피네스와 빌리의 홈메이드 음악은 2001년생 빌리 아일리시의 독특함을 극대화한다. '잠든 사이 벌어지는 일', '침대 밑 괴물' 등 사춘기의 위험한 상상을 테마로 잡고, 직선적인 록과 힙합의 감각적 비트를 미니멀하게 아우른다. 마릴린 맨슨, 나인 인치 네일스 같은 1990년대 인더스트리얼의 어두움과 2010년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기괴한 이미지를 묶어 비주얼 쇼크를 안기기도 한다. 제도권의 논리로는 가능하지 않았을 과감함이다.

'유리를 밟고/ 스테이플러로 혀를 찍어'라 노래하는 'bury a friend'를 예로 들어보자. 무의식 속 섬뜩한 분위기를 위해 피네스와 빌리는 일상 속 치과 드릴과 오븐 알람 소리를 활용했으며, 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연기하며 광기의 몸짓을 선보이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구체화됐다. 'you should see me in a crown'에선 얼굴 위 거미를 풀어놓으며, 'bad guy'에선 배 나온 남자들, 목 잘린 채 금붕어처럼 봉투 안에서 뻐끔거리는 남자들을 보여주며 종국엔 남자 위에 올라타 팔 굽혀 펴기를 시킨다.

DIY 정신과 저돌적인 비주얼, 선명한 주제 의식은 빌리 아일리시로 하여금 이 시대의 '록스타'로 불리게 한다. 전설적인 밴드 너바나의 드러머이자 록 그룹 푸 파이터즈의 리더 데이브 그롤이 '빌리 아일리시는 1991년 너바나가 했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다'라 격찬한 것은 물론, 에이브릴 라빈과 파라모어의 헤일리 윌리엄스 등 선배 여성 로커들도 빌리를 '로커'라 부르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침대 밑 괴물’의 입장을 상상하며 쓴 노래 ‘bury a friend’는 치과 드릴, 오븐과 같은 독특한 사운드 샘플과 섬뜩한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됐다.

‘침대 밑 괴물’의 입장을 상상하며 쓴 노래 ‘bury a friend’는 치과 드릴, 오븐과 같은 독특한 사운드 샘플과 섬뜩한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됐다. ⓒ Billie Eilish 유튜브 캡쳐

 
빌리 아일리시의 자기혐오적인 메시지와 거친 패션은 2000년대 초 사춘기 감성을 거칠게 노래했던 이모(Emo) 열풍을 연상케 하며, 실제로 그의 패션과 뮤직비디오는 이모 시절의 비주얼과 상당수 흡사하다. 주류 시장의 간택이 아니라 홈메이드로부터 중소 기획사로, 중소 기획사에서 대규모 기획사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것 또한 록의 문법이다.

이것이 스트리밍과 유튜브의 Z세대를 통해 거침없이 확산되며 공고한 지지층을 만드는 것도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유행을 연상케 한다.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은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 유튜브,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급속도로 공유되고 이슈가 되며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음악이 전통적인 록과 거리가 있음에도 많은 이들이 록을 언급하는 이유다.

빌리 아일리시는 '애플 뮤직'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인기를 언급하며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거의 천 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놀라운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예상치 못한 음악, 예상치 못한 스타일로 예상치 못한 인기를 거머쥔 빌리 아일리시의 성공은 Z세대 새로운 음악 스타의 한 문법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338)에도 실렸습니다.
빌리아일리시 아티스트 음악 홈메이드 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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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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