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4월 15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는 우스꽝스럽지만 마냥 웃을 순 없었던 장면이 연출됐다. 일명 KIA 김기태 감독의 '눕기태' 사건이었다. KIA가 5-2로 앞서던 7회말, 양현종의 견제에 걸린 LG의 1루 주자 문선재(KIA)는 2루로 파고 들다가 영리하게 태그를 피해 2루 베이스에 먼저 도달하며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에 불복한 김기태 감독은 격하게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했다.

김기태 감독은 문선재가 태그를 피하는 과정에서 '주자는 다음 루로 이동할 때 좌우 3피트(91.44cm)를 벗어날 수 없다'는 규칙을 어겼다고 항의했다. 김기태 감독은 자신의 항의가 통하지 않자 모자를 벗고 직접 2루 베이스 위에 누웠다. 김기태 감독의 신장은 180cm인데 문선재가 자신의 신장을 넘을 정도로 멀리 벗어났다는 의미였다. 물론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지연시킨 김기태 감독은 그대로 퇴장 당했다.

'눕기태' 사건 이후 어느덧 4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 사건은 김기태 감독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로 잊혀졌다. 하지만 4년 전 김기태 감독이 그라운드에 드러눕고 퇴장 당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3피트 라인은 올 시즌 다시 KBO리그의 화두가 되고 있다. 3피트 규칙 때문에 웃고 우는 팀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 다른 판정으로 황당한 피해를 본 LG 트윈스
  
 2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K 와이번스와 서울 LG 트윈스의 경기. 9회초 두산 공격 무사 1·2루 상황에서 LG 이형종이 3피트 수비방해로 아웃되자 류중일 LG 감독(가운데)이 심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2019.3.27

2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K 와이번스와 서울 LG 트윈스의 경기. 9회초 두산 공격 무사 1·2루 상황에서 LG 이형종이 3피트 수비방해로 아웃되자 류중일 LG 감독(가운데)이 심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2019.3.27ⓒ 연합뉴스

  
지난 6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진행된 LG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3피트 수비방해' 관련 오심이 나왔다. 2회 말 1사 1루 상황, kt 심우준은 투수 앞 땅볼을 치고 1루로 뛰어가다가 아웃됐다. 이때 LG 류중일 감독은 심판진에게 '심우준이 파울 라인 안쪽으로 달렸으니 수비방해'라고 주장했다. '수비방해'가 선언되면 2루로 간 주자는 다시 1루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수비방해는 인정되지 않았고 경기는 2-1 kt의 승리로 끝났다.

반면 3월 27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LG의 경기에서는 정 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9회초 무사 1, 2루 상황. LG 이형종은 희생 번트를 대고 1루로 뛰는 과정에서 파울라인 안쪽으로 뛰면서 '수비방해' 판정을 받았다. 결국 LG는 이때 점수를 내지 못했고 경기는 11회말 SK의 끝내기로 마무리 됐다.

상황은 비슷했지만 '3피트 라인'에 대한 심판의 판정은 전혀 달랐다. LG로서는 충분히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7일 KBO심판위원회는 LG-kt의 경기에서 있었던 '3피트 수비방해' 오심을 저지른 심판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비디오 판독? VAR에 포함시키면 해결될까

프로 테니스 투어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리플레이 비디오 판독용 시스템 '호크아이'를 도입해 선수들이 세트당 3회씩 챌린지를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축구에서도 작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심판의 오심을 줄이기 위해 비디오 보조심판 제도인 'VAR'을 도입했다. 하지만 너무 잦은 VAR 판독으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선수들이 심판을 믿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종목의 특성상 오심이 자주 나올 수밖에 없는 배구에서도 비디오 판독은 이미 익숙한 제도로 자리 잡았다. 큰 규모의 국제대회는 물론이고 국내 V리그에서도 한 번의 결정적인 비디오 판독이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기도 한다. 특히 2018-2019 시즌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를 V리그 여자부 통합우승으로 이끈 박미희 감독은 비디오판독 성공률이 유난히 높아 배구 팬들로부터 '호크아이'로 불리기도 했다.

야구에서도 비디오판독을 도입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각 구장마다 챌린지 전용 카메라 12대를 설치해 총 13개 항목에서 비디오 판독을 실시한다. 2014년 후반기 심판 합의 판정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KBO리그의 비디오 판독은 홈런과 아웃,세이프, 포구, 페어와 파울 등 6개 항목에 한해 적용된다. 자체 카메라로 판독하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KBO리그는 방송국 중계 카메라를 이용한다(따라서 중계가 없는 경기는 비디오 판독도 불가능하다).

올 시즌 문제가 되고 있는 3피트 라인 침범은 공교롭게도 비디오 판독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실 '3피트 라인'이란 베이스와 베이스를 잇는 가상의 주루허용범위이기 때문에 따로 선을 그리지 않는 한 비디오로 판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3피트 라인' 규칙은 전적으로 심판들의 판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야구위원회에서는 시즌 개막 전에 올 시즌부터 3피트 라인에 대한 판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각 구단에 통보한 바 있다.

권위의식 내리고 선수들과 상생 통해 팬들의 신뢰 회복해야
 
 2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K 와이번스와 서울 LG 트윈스의 경기. 9회초 두산 공격 무사 1·2루 상황에서 LG 이형종이 번트를 친 뒤 1루로 질주하고 있다.

2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K 와이번스와 서울 LG 트윈스의 경기. 9회초 두산 공격 무사 1·2루 상황에서 LG 이형종이 번트를 친 뒤 1루로 질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야구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심판들 역시 144경기를 소화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경기 시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특히 원정경기 시 특급 호텔에서 지내는 선수들과 달리 구장 근처의 허름한 여관에서 묵는 경우도 허다하다. 과거와 달리 중계기술이 발달해 야구 팬들은 심판의 작은 실수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오심을 저지른 심판'으로 낙인 찍기도 한다. 조금 억울한 판정이 나오더라도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넘어가던 시대는 지났다는 뜻이다.

심판들의 고충은 분명 개선돼야 할 부분이지만 오심을 줄이기 위한 심판들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심판의 작은 오심 하나로 인해 아웃카운트뿐만 아니라 경기 흐름, 크게는 선수단 분위기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라운드 안팎에서 지나친 권위의식을 가진 심판들 역시 야구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 2010년 카림 가르시아의 '석고대죄' 사건이다.

2010년 9월 8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심판과 설전을 벌이다 퇴장을 당한 롯데 외국인 타자 가르시아는 경기가 끝난 후 자신의 SNS에 "심판들이 공정하지 못한 판정을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올렸다. 가르시아는 이로 인해 잔여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결국 가르시아는 징계를 받은 다음날 사직 야구장의 심판실에 찾아가 심판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다혈질의 외국인 선수 가르시아에게 '석고대죄'를 받아내며 심판들의 권위를 드높인(?) 날이었다.

최규순 전 심판의 금전요구 및 갈취사건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최규순 전 심판은 현직 심판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최소 7개 구단에 금품을 요구해 4개 구단으로부터 뇌물을 받았고 이 돈을 모두 도박으로 탕진했다. 결국 상습사기와 상습도박혐의로 법정구속된 최규순 전 심판은 징역 8개월을 선고 받았지만 심판의 갑질과 그릇된 행동이 자칫 KBO리그의 근간을 흔들 뻔 했던 아찔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선수와 심판은 그라운드 안에서 서로 공생하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이다. 심판이 없으면 선수들은 제대로 경기를 치를 수 없고 선수가 없으면 심판도 존재의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오심하는 심판들을 징계하고 VAR 판독을 통해 실수를 줄여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선수와 심판이 서로를 믿는 신뢰회복이 더욱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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