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산모와 영유아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잇따라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 원인을 놓고 논란이 분분했으나, 결국 가습기 살균제가 그 범인으로 지목됐다. 일각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두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하곤 한다. 왜냐하면 유해 물질이 시중에 유통되어 살균제 원료로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공산품 안전 검사 대상마저도 교묘히 피해갔던 탓이다.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람만 6천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배상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는 8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왜 이처럼 비대칭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지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에서 이를 취재했다.

해결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울분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 SBS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변영웅씨는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 천막을 쳐놓은 채 한 달 가까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변씨는 자녀가 태어난 2000년부터 10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2011년 급작스레 혈액암이 발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골수이식수술을 받았으며, 병을 치료하느라 가산을 모두 탕진한 상태다.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더 이상 일을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여기에 다발골수증에도 걸려 척추마저 좋지 않았다. 이로 인해 키가 10cm나 줄었단다.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 SBS

 
변씨의 고통은 본인 자신에 그치지 않고 있었다. 딸은 고2 때 자궁근종이 발생하여 수술했으며, 아들은 비염이 심했고 아내는 관절 여기저기가 아프단다. 변씨는 지난 2016년 환경부 산하 환경산업기술연구원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를 냈지만, "폐질환 가능성 없음"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 질환은 폐손상과 태아피해, 그리고 천식 등 세 가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변씨는 결과 통보를 받고 6개월 뒤 폐렴으로 뒤늦게 관련 치료비를 받고 있으나, 혈액암에 대해서는 여전히 피해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이모씨는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들이 감기에 자주 걸리자 습도 조절을 위해 가습기를 틀어놓았다고 한다. 당시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하던 바로 그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게 화근이었다. 이로 인해 결국 모자는 비슷한 질병을 앓게 됐다. 이씨는 "저랑 아이가 호흡기 쪽이 아프다고 하여 진단 받은 내용이 똑같았고, 먹는 약도 비슷했다"고 말한다.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 SBS

 
이씨의 아들은 콧속이 딱딱하게 굳어져 숨쉬기 어려워지는 '비강섬유화'를 앓고 있으며, 최근 뇌전증 진단까지 받았다. 이씨는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는 아들이 미안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고 한다. 지난 2013년 피해 신고 당시 이씨 모자는 그 어떠한 피해 구제조차 받지 못하다가 2017년 말 천식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질환에 포함되면서 뒤늦게 피해 인정을 받게 된 케이스다. 그러나 이씨 모자가 받는 것은 정부가 지원하는 병원비 정도에 불과하다. 가해 기업은 천식에 대해 여전히 배상해주지 않고 있다.

어린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OO. 김양은 5살 때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병원 입퇴원을 반복한 초등학생이다. 이 어린이의 불행 또한 가습기 살균제로부터 비롯됐다. 엄마인 박OO씨는 "사는 곳의 환경이 별로 좋지 않아 가습기를 아이 코 밑에 대고 수시로 틀어주었다. 그런데 그 증세가 4살 때부터 나타난 것"이라며, 몹시 자책하고 있었다.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 SBS

 
엄마는 아이의 치료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완치를 바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아이의 잦은 치료로 남편과 불화까지 생기는 바람에 박씨는 결국 이혼해야 했다. 이렇듯 가습기 살균제는 멀쩡한 가정까지 해체해버리곤 했다. 박씨는 5년 전 피해 신고를 했으나,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재심사를 요청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그녀는 "폐가 굳어야만 인정된다고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피해 구제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었다. 박OO씨는 "병원에 너무 많이 입원하다보니 나중에 우울증 비슷한 게 왔다"고 말했다. 이모씨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알려져 있고, 밝혀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 게 너무 부당한 것 같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변영웅씨는 "휘발유를 뿌리고 환경부 앞에서 분신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경"이라며 격한 반응을 토해냈다.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 SBS

 
가습기 살균제 사건 특별조사위원회가 피해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울분지수 역시 이러한 피해자들의 현재 정신 상태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김동현 한림대 의과대 교수는 "전체 대상자의 66%가 만성적이고 지속적인 울분 상태라고 응답했다. 이들 가운데 절반가량인 33% 정도가 임상적으로 위험한 수위의 울분 상태"이며 "울분지수란 원래 세상이나 사회가 공정해야 되는데 이 공정함에 대한 신뢰가 깨어졌을 때,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생겨나는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수사 마무리 짓고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서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빚어진 지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정부의 대처는 느리기만 하다. 환경부는 2014년 '폐섬유화' 등 폐질환만 피해로 인정하다가 2017년 뒤늦게 태아피해와 천식을 추가했다. 하지만 가해 기업은 폐질환 이외의 질환에 대해서는 여전히 배상을 꺼려하는 입장이다.

방송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검찰 수사가 시작됐던 지난 2016년 최대 판매업체인 '옥시'만 사법 처리됐고, 다음으로 시장 점유율이 높았던 제조판매업체인 'SK케미칼'과 '애경'은 법망을 피해간 것으로 밝혀졌다. SK케미칼이 사용한 원료 물질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 근거로 제시된 독성 실험이 엉터리로 드러나면서 검찰은 SK케미칼 부사장을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이제야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SK케미칼이 쓴 원료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폐 손상뿐 아니라 다양한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이 제기됐었다고 말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의 주장(아래)에 따르면 세종시에서 천막 농성 중인 변영웅씨의 혈액암 또한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피해 질환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 SBS

 
"옥시의 PHMG, PGH의 독성은 폐섬유증에 한정된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물론 기관지를 건드려 기관지염, 천식 등도 일으킬 수 있지만, 주 부작용은 폐석회증이다. 그런데 SK케미칼이 제조한 CMIT/MIT는 그보다 만분의 1, 10만분의 1 더 작다. 얘들이 폐포에 침입하면 세포막을 뚫고 혈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혈액 속을 파고들어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어떠한 부작용을 일으킬지 알 수 없게 된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임산부와 아이들이 잇따라 사망하거나 중증 폐질환에 걸리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지난달까지 환경부에 집계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자는 총 6천325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1천390명은 이미 숨을 거뒀다. 아울러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세 가지 피해 질환 판정을 받아 가해 기업으로부터 배상을 받은 사람은 356명에 그치고 있다.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가습기살균제: 끝나지 않은 고통' 편의 한 장면 ⓒ SBS

 
정부는 다양한 질환에 대한 인정 여부는 아직까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이어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치솟는 분노를 참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관련 수사를 하루빨리 마무리 지은 뒤 피해 구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이들의 울분을 가라앉히고 눈물을 씻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라가 10년이 다 되도록 이걸 안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고 있다. 대통령, 총리가 다 해결해준다고 청와대까지 피해자들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아직도 피해자들의 90%는 해결이 안 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국민들 역시 세월호처럼 거의 해결된 줄 알고 있을 테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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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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