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일> 포스터

영화 <생일> 포스터 ⓒ (주)NEW

* 기사엔 영화 내용 일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분명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슬퍼할 것이다. 나이 든 부모님이나 친지를 떠나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자식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되는 슬픔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보통은 남은 가족들이 어떤 감정과 기분으로 생활하는지, 실제 그들의 삶의 어떤 부분들이 그들을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는 없다. 그저 아픔을 멀찍이서 가늠하며 짐작만 할 뿐이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476여명 중 325명. 꽤 많은 수를 차지했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가던 길이었다. 아침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의 뉴스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구조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결코 그들의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희망들이 절망이 되면서 죽음의 이유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이별이 그들과 그 가족에게 파고들었다. 단 몇 시간 만의 일이엇다. 곧 5주기다. 세월호 참사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 마음에 깊이 아프게 박혀있다.

정일은 곧 외부인의 시선이다

영화 <생일>은 참사에 희생된 수호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에서 세월호를 직접 언급하진 않는다. 사고 이후 해외에서 귀국하는 수호의 아버지 정일(설경구)과 한국에서 살고 있는 수호의 어머니 순남(전도연)의 모습을 천천히 비춘다. 특히 정일은 이 영화에서 해당 참사를 직접적으로 겪지 못한 인물이다. 사건 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해외에 머물렀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정일은 외부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했던 관점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생일> 장면

영화 <생일> 장면 ⓒ (주)NEW

  
정일이 한국으로 와서 딸 예솔(김보민)을 처음 봤을 때, 예솔의 첫 반응으로 그가 가족에게 어떤 위치인지를 알 수 있다. 예솔이는 아빠에게 다가가기를 주저한다. 그리고 집에 들어갈 때도 도어락 번호를 누를 때 아빠가 보지 못하도록 가린다. 그런 어색함을 느낀 정일은 조심스럽게 천천히 딸에게 다가간다.

정일은 가족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직접 보고서야 알게 된다. 경제적 어려움은 둘째로 치더라도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사건으로 순남과 예솔이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정일은 아내에게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하지만 순남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정일은 안산의 집에 드나들면서 여동생에게 이야기한다.

"순남이 좀 이상하지 않아? 좀 이상한 것 같애"  

거기에 여동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오빠가 더 이상해. 수호 그렇게 가고 이제야 들어왔는데, 그렇게 멀쩡할 수가 있어?"

영화 속 외부인의 시선은 정일과 다른 가족들에 의해 세세하게 전달된다. 순남의 행동과 밀어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정일은 세월호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외부인의 관점을 대변한다. 정일에게는 오랜만에 본 아내가 이상하게만 보인다. 순남은 희생자 가족들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다른 사람과 교류를 꺼린다. 애써 밝게 웃고 이야기하는 다른 희생자 가족들의 태도에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자리를 외면하는 순남을 그 안으로 끌어 들어가려는 정일은 더욱 아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거리감을 느끼며 절망한다.

그런 정일이 순남의 위치로 이동하게 되는 계기는 정부 보상금에 대한 타인의 시각이 드러나면서 부터다. 아내와 크게 다툰 후 맞은 가족 제사에서 순남과 나란히 앉아 밥을 먹던 정일은 다른 가족으로부터 보상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두둑하게 받았으니 사업에 투자하라는 친척 이야기에 크게 분노한 정일은 그 자리에서 친척들을 다 집 밖으로 내보낸다.
 
 영화 <생일> 장면

영화 <생일> 장면 ⓒ (주)NEW


유가족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들

어쩌면 많은 외부 사람들의 시선은 그럴 것이다.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로만 사건을 접한 사람들 중에선 분명 보상금을 받고 삶의 형편이 나아졌을 거란 편견을 가진 이들도 있다. 참사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 죽어서 슬프지만 보상금 두둑하게 받았으면 괜찮지 않아? 정부에서 꽤 많이 챙겨줄 텐데."

순남이 일하는 마트에서 한 동료가 한 말이다. 날카로운 칼이 들어있다. 망자가 된 아들. 억만금이 순남 손에 쥐어진다고 해도 아들은 절대 다시 볼 수 없다. 아직 사고 원인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그 사건을 죽을 때까지 트라우마로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주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는 그런 편견의 말들로 그들의 삶은 순간순간 아프게 된다. 

여전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이제 그만하라고.

순남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가끔씩 혼자 켜지는 센서등을 볼 때마다 아들이 왔다는 생각에 펑펑 울음을 터뜨린다. 그걸 보는 정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약을 챙겨주고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관객들을 내부자의 감정으로 이끌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생일은 매년 돌아온다. 그때마다 유가족은 자녀들의 생일을 챙기며 추억한다. 그리고 같이 모인 서로를 위로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수호의 생일 파티는 각자가 기억하는 수호를 이야기한다. 뒤늦게 그 자리에 참석하기로 한 순남도 타인들이 가진 수호에 대한 추억과 슬픔을 나누며 비로소 진정한 위로를 받는다.

정일의 시선, 즉 외부의 시선으로 시작한 영화는 영화의 말미에 관객을 세월호 유가족 내부자로 부드럽게 이끈다. 모든 행사가 끝났을 때, 정일이 보인 태도에서 아마 십중팔구 많은 관객들이 함께 공감하고 특별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여전히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계속 활동 중이고, 유가족들은 여전히 진실을 갈구한다. <생일>은 유가족들이 지난 5년간 살아온 삶과 태도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겼다. 힘들고 고단했지만, 그들은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끝까지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진정으로 자식들을 마음에 담는 것이다. 
 
 영화 <생일> 장면

영화 <생일> 장면 ⓒ (주)NEW

  
순남을 연기한 전도연은 유가족으로서의 삶을 무표정한 얼굴을 통해 전달한다. 그리고 감정이 북받쳐 큰 울음을 터뜨리는 연기에선 어떤 한이 느껴진다. 그는 영화 내내 유가족이 되어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힘들었다고, 여전히 아프다고. 정일을 연기한 설경구의 연기도 훌륭하다. 영화 말미까지 순남을 위로하던 그는 순남보다 더 큰 울음을 터뜨린다. 그도 결국 유가족의 한 사람이고, 위로받아야 마땅한 위치에 있다. 설경구는 그렇게 우리를 내부인 속으로 초대한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결코 가볍지 않게 유가족들을 다루고 있다. 비록 극적인 요소가 많지 않지만, 그들의 삶을 진정성 있게 담아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고이게 만들고, 결국에는 같이 울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이 영화는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외부인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들도 위로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영화생일 세월호 5주기 전도연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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