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가 말했다.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랑은 '상대가 어디를 보든 내버려두는 것'이다. 서로의 곁을 지키면서.

결혼 10년 차인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재운 후 소파에서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낸다. 내가 스마트폰을 꺼내어 리오넬 메시의 동영상을 보거나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심정으로 비트코인 시세를 확인할 때 아내는 '트렌디 드라마'에 빠져든다.

왜 그런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남주인공은 너무 완벽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난관은 너무 쉽게 극복된다. 스토리의 개연성도 부족하다.
하지만 간섭하지는 않는다. 사랑이란 상대가 어디를 보든 내버려두는 것이니까. 드라마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내 소소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 아내가 남주인공을 아무리 짝사랑한들 그가 내 아내를 데리고 도망갈 리도 없다.

하지만 트렌디 드라마의 주변인물들이 악역이든 선역이든 너무 평면적이고 전형적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복합적인 감정이나 심각한 고민 같은 건 1도 없어 보이는 그들은 뭘 해도 해피엔딩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말 그대로 '주변인'이다. 나부터가 주변인이니 못내 안타깝다.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JTBC

 
모처럼 아내가 새로 방영되는 드라마를 같이 보자고 한다.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였다. 난 내 신념을 잠시 유보하고 생텍쥐페리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인공 혜자(한지민)는 어릴 적에 주운 특별한 시계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지각을 하거나 시험을 망쳤을 때처럼 후회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바로잡는다. 하지만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자신에게만 시간이 흐른다는 걸 깨닫고 시계를 옷장 깊숙이 숨겨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게 된 혜자는 시계를 꺼내어 다시 과거로 떠난다. 수없이 실패한 끝에 아버지의 죽음을 막았지만 그 대가로 혜자는 70대의 노인이 되었고 아버지는 한쪽 다리에 장애를 입게 된다.

그럭저럭 볼 만한 TV 드라마지만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혜자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과거의 혜자는 어디에 있나? 가족들은 일면식도 없는 노인을 어떻게 그리 쉽게 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버지는 딸에게 왜 그리 냉담한 걸까? 한지민은 언제 나오나?

종영을 앞두고 혜자가 수십 년 전의 자신과 만나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드라마는 진면목을 드러내며 '역대급 반전', '웰메이드 드라마' 같은 찬사를 받았다. 혜자(김혜자)는 시간여행자가 아니라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실제로는 아들과 며느리였다. 초중반의 모든 이야기는 치매 노인의 온전치 않은 정신이 빚어낸 환상이었다.

젊은 날의 혜자는 결혼 후 아이와 함께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경찰의 고문으로 남편 준하(남주혁)를 잃었다. 편부모가 된 후 힘겹게 생계를 꾸려갔지만 아이마저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는 실제로는 남편이 고문을 받던 중에 형사에게 강탈당한 보통의 시계였다. 가혹한 운명을 묵묵히 견뎌낸 혜자는 고통의 끝자락에서 행복했던 기억과 눈앞의 실제를 뒤섞고 자기만의 현실을 재구성했던 것이다. 잠깐 동안 정상적인 의식을 되찾은 혜자는 장자의 호접지몽 같은 독백을 들려준다.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JTBC

 
관련된 책들을 꽤 많이 읽은 아마추어 심리학자로서 해석해 보면,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가 혜자의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한 것 같기도 하다. 인지능력 저하와 환상 덕분에 혜자가 고통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학적 질병이 역설적으로 일종의 심리치료가 된 셈이다. 과거를 재구성해서 대안적인 삶의 이야기를 창조한 것은 마이클 화이트와 데이비드 엡스턴의 '이야기치료'를, 아들 내외를 부모로 인식한 것은 에릭 번의 교류분석을 연상시킨다. 취사선택한 기억을 현재와 뒤섞음으로써 혜자는 과거의 행복에 갇혔지만 과거의 고통으로부터는 해방되었다.

충격적인 반전에 뒤이은 용서와 화해를 목격하는 동안 아내와 난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타인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는 정말 오랜만이다. 혜자의 고통은 본질적으로는 주변인이기에 감내해야만 했던 것들이다.

불현듯 나 역시 과거를 재구성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 속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 비트코인을 처음 알게 된 6~7년 전으로 돌아가 과감한 투자를 하고 몇 년 기다린 끝에 거액을 손에 쥐는 것이다. 경제력 만큼은 트렌디 드라마의 주인공과 비슷해질 것이다.

가만, 트렌디 드라마를 보던 내 아내도 마찬가지였던 건 아닐까? 함께 살고 있는 찌질한 중년남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어서 드라마 남주인공과의 상상 속 로맨스를 즐겨왔을지 모를 일이다.

물론 우리의 불만을 혜자가 겪은 처절한 고통과 비교할 수는 없으니 망상에서 벗어나 객관적 현실에 집중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하지만 고통과 행복은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어느 하루도 눈부시지 않은 날은 없다'는 메시지에 공감하려면 철이 더 들어야 할 것 같다. 혹은 어떻게든 주변인의 굴레를 벗어던지거나.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암호화폐로 돈방석에 앉는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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