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전팔기', '진인사대천명' 아마도 쇼트트랙 간판 임효준(고양시청)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일 것이다. 그는 1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일곱 번의 수술대 위에 오르고 수없이 넘어지던 좌절의 시기를 극복하고 한국 선수단의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겨줬다. 그의 금메달은 한동안 침체기였던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그 후 1년 임효준은 여전히 지치지 않고 다시 얼음판을 제치며 달렸다. 그 결과는 자신의 첫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 쇼트트랙 선수에게 있어 올림픽 금메달만큼 꼭 이루고 싶은 목표를 달성한 그는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포효했고, 그가 주장으로 이끈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세계선수권 대회에 걸려있던 금메달을 모두 스윕해오는 대기록을 써내렸다.
 
임효준은 "수시에 합격해 먼저 편하게 고3 수험생 생활을 끝낸 느낌"이라며 지난 3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 1차 대회를 선수가 아닌 관중의 입장으로 편하게 즐겼다. 평창 이후에도 쉼 없이 달린 그에게 이날은 잠깐의 휴식을 즐길 기회이자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지난 3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만난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효준

지난 3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만난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효준 ⓒ 박영진

   
세계선수권 우승, 커리어에 남아 영광

임효준에게 있어 이번 세계선수권은 꼭 이루고 싶었던 목표였다. 국가대표 자동발탁이라는 혜택이 걸려있기도 하지만, 쇼트트랙 선수로서 커리어에 꼭 남는 영광이기도 했기 때문. 초심을 잃지 않고 준비한 그는 500m를 제외한 4개 종목(계주 포함)에서 모두 금메달을 휩쓸며 대회 4관왕으로 압도적인 챔피언이 됐다.
 
"세계선수권 종합우승은 쇼트트랙을 하면서 한 번도 못 해본 선수도 많아요. 선수들이 올림픽 금메달 다음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세계선수권 우승이거든요. 제 커리어에 남아서 좋았어요. 사실 기쁜 건 올림픽 금메달만큼은 아니었고 기분은 그때(평창 올림픽)가 더 좋았어요. 사실 제가 대회에 나가서 1등 한 직후에 소리를 지른 적이 평창 때 외에는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너무 좋아서 다섯 여섯 번 질렀어요(웃음). 올림픽 못지않게 기분이 좋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이번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임효준은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고양시청 실업팀에 입단했다. 고양시청 쇼트트랙팀은 이호석, 조해리, 이정수, 곽윤기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다수 배출해낸 명문 실업팀으로 유명하다. 그는 "실업팀에서 뛰게 되니 이제 학생이 아니고 사회로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실업팀에서 서로가 배려해주면서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데 '이제는 정말 실력으로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이런 커리어를 쌓기 위해 무엇보다 지독한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훈련은 과거부터 선수촌 내에서 가장 강도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새벽인 오전 5시부터 오전 8시까지 3시간 동안 스케이팅 훈련으로 하루로 시작한 다음, 오후 1~6시까지 다시 얼음판을 제친다. 여기에 지상훈련까지 더해지는데 이런 스케줄을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매일 지속한다. 이런 훈련이 밑바탕이 돼 한국 쇼트트랙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 대표 선발전 때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치열하다.
 
"과거에 대표했던 선수들이나 지금 선발전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누구든지 국제대회에 나가도 금메달을 딸 수 있을 정도예요. 그 덕분에 매년 좋은 선수들이 계속해서 배출되고 있는 거죠. 하지만 빛을 보지 못하는 선수도 많고 부상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도 정말 많아요. 모두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친한 친구예요.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 한국 쇼트트랙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종목을 제패한 최강

임효준의 특징은 단거리부터 장거리까지 모든 종목을 능수능란하게 탄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은 1500m와 같은 장거리에 치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500m에서는 스타트를 비롯한 순발력에서 외국 선수들에게 크게 뒤지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임효준은 달랐다. 기본적으로 스피드가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단거리에서도 상당한 반응속도를 보이며 순발력에서 외국 선수들에게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 때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이번 시즌 월드컵 500m 랭킹 1위에 오를 정도로 단거리에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는 제가 정말 장거리 종목 선수인 줄 알고 장거리에만 집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단거리를 뛰어 보니 그렇게 느린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죠. 평소 단거리를 위해 특별하게 한 것은 없지만 순발력 운동을 비롯해 외국 선수들의 단거리 영상을 많이 보면서 스타트 부분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단거리도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임효준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스피드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무려 6명이 출전한 1000m 결승전에서 막판 2바퀴를 남기고 모든 선수들이 동시에 스퍼트를 시작하면서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바퀴에서 아웃코스로 추월을 해내면서 가장 먼저 통과하면서 엄청난 순간 스피드를 보여줬다. 이런 점은 계주에서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해결사 역할인 2번 주자는 지난 시즌부터 그의 몫이 됐다.
 
"속도에서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기술을 좀 더 보완해야 속도에서 장점이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쉽게 말하면 '스케이트를 내 맘대로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 속도에서 장점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으니 단점을 보완해서 장점을 단점으로 살려 나가겠습니다."
 
쇼트트랙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전통 강국인 한국, 캐나다, 중국을 제외하고도 러시아, 헝가리, 카자흐스탄, 네덜란드 등 과거에는 결승 진출조차 생각하기 어려웠던 국가들이 치열한 각국을 벌이고 있다. 그 속에서 임효준은 굳건히 1위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큰 유럽 선수들을 상대하는 점이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스피드스케이팅이라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모든 선수들마다 장단점은 하나씩 있기에, 장점인 속도를 통해 노력한다면 더 좋지 않겠느냐"며 결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3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만난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효준

3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만난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효준 ⓒ 박영진

 
 
올라운더의 꿈, 베이징 500m 금메달을 향해

1년 전 평창은 그에게 있어서도 조국인 대한민국에도 영광스러웠던 대회였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난 후 그에게도 정신적인 허탈감이 찾아왔다. 그는 "운동만 해왔다 보니 목표를 이뤘을 땐 훨씬 더 쉬면서 놀고 싶고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올림픽 직후였던 이번 시즌에도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고 얼음 위를 달렸다. 이에 대해 임효준은 "제가 당연히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만약 1년을 쉬면 다시 컨디션을 되찾기가 많이 어렵기에 쉬지 않고 준비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평창의 영광을 뒤로하고 이제는 3년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을 바라봐야 할 차례. 베이징에서는 무엇보다 영원한 라이벌인 중국 쇼트트랙 팀의 홈 이점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과거부터 여러 대회 때마다 한국 선수들과 여러 번 부딪힌 전례도 있다. 임효준은 베이징에서 500m 금메달을 꼭 획득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베이징에서는 500m가 욕심이 나요. 우리나라에서 올림픽 500m 금메달이 채지훈 선수 이후에 없다 보니 다시 단거리를 꼭 되찾아 오고 싶고 욕심이 나요. 우 다징(중국) 선수가 이 종목 최강자인데 한 번 이겨보고 싶어요.
 
평창 올림픽은 어렸을 때부터 제가 꿈꿔왔던 이유였고 지금의 베이징 올림픽은 평창 올림픽으로 인해서 새로운 출발이라고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쇼트트랙을 해온 이유가 평창올림픽이라고 많이 말씀드렸는데, 평창 금메달을 따고 난 이후에 나태해진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습니다."

 
거듭 반복되는 부상에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지독했던 절망과 시련을 안겨줬던 쇼트트랙. 어린 시절 대구에서 올라와 친구도 없이 홀로 적응해가며 그저 좋다는 얼음 위를 신나게 달릴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껴 시작했지만, 이제는 내 삶의 전부이고 운명과 같았다.
 
"어릴 때 쇼트트랙은 그저 너무 재밌어 보였고 속도가 빠른 것도 좋아했다는데 지금은 더 재밌어졌어요. 시합 때는 '내가 이걸 왜 선택했나' 싶기도 하지만, 시합이 끝나고 제가 탄 영상을 보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요. 그리고 발전 가능성과 고쳐야 할 점도 보여요. 쇼트트랙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정말 재밌는 스포츠입니다(웃음)."
 
임효준 선수 프로필
생년월일 : 1996년 5월 29일
소속팀 : 고양시청
소속사 : 브리온컴퍼니
주요성적 : 2019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개인 종합우승 (1000m, 1500m, 3000m 슈퍼파이널, 계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1500m 금메달, 500m 동메달
2018 코카콜라 체육대상 남자 신인상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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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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