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전주 르윈호텔에서 열린 20회 전주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장병원 프로그래머가 주요 상영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3일 오후 전주 르윈호텔에서 열린 20회 전주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장병원 프로그래머가 주요 상영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 전주영화제


패기 넘치는 신인 감독들의 영화가 경쟁에 포진했다.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의 약진도 눈에 띈다. 중견 감독들의 신작에 거장 감독들의 향연도 단연 주목할 만한 볼거리다. 그리고 영화, 표현의 해방구를 향한 굳건한 의지 역시 전주의 영화축제를 기대하게 만드는 핵심요소다.
 
20회를 맞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특징은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전년보다 출품국가와 작품 수가 늘어 52개국 262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이중 전 세계 기준 첫 공개 작품인 월드프리미어가 68편이고, 자국에서 상영 후 해외 첫 상영되는 인터내셔날 프리미어는 5편으로 총 73편이 프리미어 작품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 상영되는 아시아 프리미어도 모두 69편이다.
 
영화, 표현의 해방구
 
자넌 3일 오후 전주 르윈호텔에서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인상 깊었던 순간은 조직위원장인 김승수 전주시장이 올해 슬로건인 '영화, 표현의 해방구'를 강조한 부분이었다. 기존 슬로건 '영화 표현의 해방구'에서 쉼표가 하나 추가된 것이지만, 그 의미는 크게 넓어졌다. '영화를 표현하는 해방구'에서 '영화'와 '표현의 해방구'를 따로 강조한 것이기 때문. 

전주영화제는 박근혜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를 통한 탄압 속에서도 표현의 자유 수호를 강조하며 국내 영화제의 자존심을 지켜내 그 위상이 높아졌다. 전주영화제의 가치와 의미를 당연직 조직위원장인 전주시장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주영화제에 특별한 애정을 쏟았고 뚜렷한 성과도 남겼다. 전주영화제가 제작을 지원한 2017년 <노무현입니다>나 2016년 전주영화제 2관왕을 차지해 주목받은 <자백>은 김 시장이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준 덕분에 좋은 성과를 얻은 영화들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이충직 집행위원장의 역할도 상당히 컸다. 다소 어수선한 상황이 있었던 전주영화제를 이충직 집행위원장이 안정시켜 놓았다. 지난해 이충직 집행위원장은 3년의 임기를 마치고 사임의사를 표하고 전주영화제를 떠났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할 일을 다 했다면서 미련없이 물러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를 돌려 세운 게 김승수 전주시장이었다. 서울로 직접 찾아가는 등 거의 삼고초려 끝에 이충직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일을 이어 가기로 했다. 덕분에 전주영화제는 20회 준비에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올해 영화제를 앞두고 울타리 역할을 강조하는 김승수 시장의 말에는 이런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 집행위원장과 영화제를 든든하게 감싸 안겠다는 의지다.
 
 전주국제영화제 김승주 조직위원장과 이충직 집행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김승주 조직위원장과 이충직 집행위원장 ⓒ 전주영화제

 
장편에 없고 단편에만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이탈리아 영화 <나폴리: 작은 갱들의 도시>와 미국 영화 <스킨>을 올해 영화제의 시작과 끝에 배치한 전주영화제에서 정작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새로운 한국영화들이다. 대부분이 프리미어로 상영되는 한국영화들은 최근 영화들의 경향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늘 관객들의 관심이 쏠리곤 했다.
 
한국경쟁의 경우 젊은 신인감독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전주영화제 측은 "한국사회 출구 없는 현실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와 좌절을 다룬 최근 한국독립영화의 경향에서 새로운 기류와 에너지를 뿜어내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추렸다"고 밝혔다.
 
심혜정 감독의 <욕창>과 정승오 감독의 <이장>은 전주영화제의 지원을 받아 완성된 작품들이며 <파도를 걷는 소년>은 2년 연속 경쟁에 진출한 최창환 감독의 신작으로 서핑을 소재로 한 영화다. 김민경 감독의 <리메인>은 불감증을 겪는 여성 주인공의 일상생활에 흐르는 감정의 기류를 예민하게 담아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도 한국경쟁에 포진했는데, 정다운 감독의 <이타미 준의 바다>는 저명한 재일교포 건축가의 삶과 예술적 성취를 카메라에 담은 영화고, 김송미 감독의 <다행(多行)이네요>는 대안 공동체 수립으로 새로운 생활 형태를 모색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작품이다.
 
다만 그간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한국영화아카데미 작품이 장편에는 한 편도 없다는 것이 아쉬움이다. 대신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들은 한국단편경쟁에 여러 편이 올랐다. <노량대첩>, <지팡이 소녀>, <파테르> 등이다.
 
이 중 두 작품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전 개막작이었다. 영화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1년간의 교육을 받고 만들어낸 영화라는 점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 교수진들이 강조하는 작품들이다.
 
저널리즘 다큐의 역량
 
 4대강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의 한 장면

4대강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의 한 장면 ⓒ 전주영화제

 
전주영화제가 택했던 다큐멘터리가 그간 화제를 몰고 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올해 역시 지금까지의 기조에 충실한 작품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2013년 천안함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 <천안함 프로젝트>나 2017년 사드반대투쟁을 다룬 <파란나비효과>는 <자백>, <노무현입니다>와 함께 전주영화제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이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인데, 4대강 문제, 위안부,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눈에 띈다. 특히 4대강 문제와 위안부 영화는 매체적 역량과 저널리즘의 근기가 살아 있는 문제작이라는 점에서 전주영화제가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김병기 감독의 <삽질>은 4대강의 문제를 깊이 있게 접근한 영화다. 4대강의 지금 모습을 비추면서 4대강사업을 장밋빛으로 치장한 채 대국민 사기에 일조했던 고위인사들의 모습을 다룬다. 당당하기는커녕 카메라를 피하고 도망치기에 바쁜, 4대강사업 부역자들의 민낯이 공개된다. 4대강 사업에 계열사가 참여했던 한 지상파 방송사의 모습도 목도할 수 있는 다큐다. 오마이뉴스에서 10년 넘게 취재해온 탐사보도가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됐다.
 
뉴스타파 송원근 감독의 <김복동>은 여성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였던 김복동 할머니의 오랜 세월 투쟁의 삶을 다뤘다. 1992년 자신을 피해자로 신고한 이후 2011년 1000번째 수요시위에 세워진 소녀상과 함께했던 모습, 일본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투쟁 등 김복동 할머니의 치열했던 삶을 기록했다. 지난 1월 28일 별세할 때까지의 모습이 기록돼 있다.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부결됐던 사안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부활하고, 그 이면에 있던 정권실세와 전경련의 담합이 드러나는 등 해당 사안에 얽힌 논란들을 찬찬히 되짚는다. 

이 외에 <땅의 여자>를 연출한 권우정 감독의 신작 <까치발>과 일본 적군파 세대의 테러리즘을 오늘의 시점에서 조망한 김미례 감독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등도 주목할 만하다. 배우 차인표가 공동연출한 <옹알스>와 유준상 배우가 연출한 <아직 안 끝났어도>도 관객들의 흥미를 끌 다큐멘터리들이다.
 
이현승 감독 신작 <죽도서핑 다이어리>
 
 이현승 감독의 신작 <죽도서핑 다이어리>

이현승 감독의 신작 <죽도서핑 다이어리> ⓒ 전주영화제

 
국내 중견 감독들과 해외 거장 감독들의 신작도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들이다. 한국 중견 감독 중에서는 이현승 감독의 <죽도서핑 다이어리>가 초청됐다. <시월애> 등으로 잘 알려진 이현승 감독이 2011년 <푸른 소금> 이후 8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감독은 강원도 양양으로 이주해 서핑을 즐기고 있는데, <죽도서핑 다이어리>는 본인이 살고 있는 장소로 주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만든 영화다. 지난해 제작 소식을 알리면서 철저하게 충무로를 벗어난 지역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번에 전주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됐다.
 
국내보다는 해외영화제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는 전규환 감독은 <좋은 여자>를 전주에서 공개한다. 박정범 감독의 <파고>, 김희정 감독의 <프랑스 여자>, 고봉수 감독의 <갈까부다> 등도 영화 완성 후 전주에서 관객들과 첫 만남을 기대하고 있는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거장들의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마스터즈'에는 다큐멘터리의 거장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인디애나 몬로비아>를 비롯해 중국 거장 장양의 <산을 그리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인 난니 모레티의 정치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산티아고, 이탈리아>,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인 마이클 윈터바텀의 신작 <웨딩 게스트>, 프랑수아 오종의 논쟁적인 영화 <신의 은총으로> 등이 초청됐다.
 
<글로리아>로 널리 알려진 세바스티안 렐리오의 신작 <글로리아 벨>과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나의 아들에게>도 마스터즈 섹션에 포함돼 있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의 얼굴이 주는 묵직함을 소재로 인생의 초상을 보여줄 예정이다.
전주영화제 저널리즘 다큐 김승수 이충직 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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