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포스터

영화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포스터ⓒ 에스와이코마드


다큐멘터리는 날 것의 힘을 가졌다. 실재하는 인물과 사건 가까이 다가서서 그 안에 담긴 본질을 길어 올리는 이 장르엔 '가짜의 예술'이 갖지 못한 '진짜의 힘'이 있다. 가끔 다큐멘터리 감독을 마주할 때면 일종의 경외심이 들곤 하는데, 그건 그들이 장르가 가진 여러 불편함에도 그 불편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다큐멘터리는 몹시 불편한 장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하기에, 감독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발생하는 사실 곁에서 맴돌아야 한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만약 그것이 몇 년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면, 감독은 고스란히 몇 년 동안을 카메라를 들고 사건과 사람 뒤를 따라다닐 밖에 별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커다란 이야기라 해도, 길어야 몇 주에서 몇 달이면 뚝딱 찍어낼 수 있는 극영화와는 마음가짐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다. 기획단계에서 이러저러한 계획을 세워도 촬영과정에서 일이 꼬이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다큐멘터리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가끔은 도저히 구해낼 수 없는 구렁텅이로 밀어 떨어뜨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전자는 절망한 다큐멘터리 감독과의 술자리에서나 들을 수 있는 비화가 될 뿐이지만, 후자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패한 다큐, '허비 행콕만 있고, 고민이 없다'
 
 영화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스틸 컷. 20세기를 대표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

영화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스틸 컷. 20세기를 대표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 에스와이코마드

  
홍형숙 감독의 다큐 <경계도시2>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당초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삶과 가치관을 내보이고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매몰돼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사회를 에둘러 비판하기 위해 제작됐으나, 송 교수 입국 이후 빚어진 일련의 사태를 통해 본격적으로 한국 정부의 부조리한 행태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요컨대 다큐멘터리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객체에 다가서고 그로부터 마침내 가치 있는 이해를 구하는 예술이다. 중요한 건 다큐멘터리가 외부자의 시선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찍어야 하는 대상과 '라포(관찰자와 피관찰자 사이의 유대감)'를 형성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관찰자의 시선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내부자의 입장이 되는 순간, 다큐멘터리는 홍보영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홍보영상에도 나름의 가치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다큐멘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 이상이어야 하는 것이다.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실패한 다큐멘터리다. 영화 전반에서 어떠한 비판 혹은 중립적 자세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급기야 자체 홍보영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대부분이다. 일부 장면에선 카메라 뒤에서 열의로 불타는 감독의 모습 대신, 한껏 늘어져 아무렇게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영화는 걸출한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의 2005년 발매 앨범 < Possibillities > 제작과정을 담았다. 감독은 이를 통해 행콕의 삶과 음악관을 조명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일종의 위인전처럼 느껴질 정도다.

앨범 메이킹 필름에서 '갑툭튀'한 평화 메시지
 
 영화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스틸 컷. 이제 '팝블루스의 거장'이란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존 메이어.

영화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스틸 컷. 이제 '팝블루스의 거장'이란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존 메이어.ⓒ 에스와이코마드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90%를 차지하는 앞부분은 행콕이 다른 음악가들과 협연하는 과정을 나열했으며, 나머지 10%는 세계평화에 앞장서려는 그의 태도를 내보이는 대목으로 꾸려졌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존 메이어·라울 미동·스팅·데미언 라이스 등 유명한 음악인이 즐비하다. 영화는 행콕이 이들과 함께 곡을 녹음하는 장면과 그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메이킹필름처럼 담았다.

재즈음악, 특히 행콕의 팬이라면 이 영화가 꽤나 만족스러울 듯하다. 수준 높은 음악인들을 한 영화에서 만날 수 있음은 물론,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서 담아냈기 때문이다. 언뜻 드러나는 행콕과 여러 음악인의 음악관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아쉬운 건 영화가 메이킹필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러 음악인이 등장하는 장면을 나열시킨 것 말고는 특별한 장치도 집중하는 부분도 없어, 당초 앨범 홍보성 메이킹필름 이상의 무엇을 의도했는지가 불분명하다.

이를 의식했기 때문인지 영화는 막판 10여 분 동안 기존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영화를 본 관객 상당수가 뜬금없는 장면이라 비판하는 대목으로, 행콕이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 수련을 하고 2차 대전 참상을 돌아보는 부분이 그것이다.

일본 불교종파 일련종(日蓮宗)의 독실한 신자로 알려진 행콕은 앨범작업 후반부에 갑자기 일본으로 날아가서는 불교수행을 하는 모습을 영화에 담아낸다. 이어 그는 히로시마 전쟁박물관을 찾아 원자폭탄 피폭 참상을 돌아보고 가해국인 미국 국민으로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13년 지난 메이킹필름에 불편한 지점까지 있다면
 
 영화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스틸 컷. 영화의 첫 장면을 장식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영화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스틸 컷. 영화의 첫 장면을 장식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에스와이코마드

  
이는 앨범 메이킹 영상에 가까웠던 영화 대부분과 완전히 동떨어진 감상을 자아내는데,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운 나머지 대부분의 관객이 당혹감을 느낄 법하다. 특히 행콕 스스로 세계평화와 꿈에 대한 메시지를 직접 언급하는 대목은 실제 의도와는 별개로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더욱이 제2차 대전 당시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본 대부분의 국가가 아시아에 있는 상황에서 미국인의 시선으로 전쟁 가해국인 일본을 피해자처럼 바라본 점도 안타까운 지점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일본에 우호적인 서구 정치·문화계 인사들에게 이같은 시각을 적극 홍보해왔다는 사실은 이 영화를 더욱 불편하게 하는 요소다.

물론 외국인의 입장에서 원자폭탄의 피해자인 일본 내 국민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전쟁의 다른 모든 측면을 도외시하고 오직 이 부분만을 떼어서 담아낸 건 그 의도를 의심케 할 정도다. 더구나 일본은 상업적으로 행콕의 주요 판매처로 알려진 곳이 아닌가 말이다.

제작 후 13년이나 지난 영화를, 더욱이 앨범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데다 유튜브 등 인터넷 기술 발달로 비슷한 영상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수입해 배급한 배급사의 의도 역시 궁금하다. 영화적 완성도도 높지 않고 메시지가 집중된 후반부 역시 한국인의 보편적 감정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데, 과연 어떤 점에서 승산을 본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위대한 음악가의 일상이 모두 위대한 일상인 건 아니다.

물론 장점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 스스로도 일류 재즈피아니스트인 행콕이 스팅을 비롯한 최고의 가수들과 협연을 펼치는 장면을 일부나마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특히 순간에 집중하는 재즈음악의 맛과 멋이 그대로 반영된 몇몇 장면은 매력적이란 말이 아깝지 않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7703)에서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즐겨보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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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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