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포스터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미국에서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는 '존경하는 어른'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를 패러디한 '노토리어스 R.B.G'라 부르며 열광한다.

긴즈버그의 얼굴과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에코백, 네일아트, 타투, 머그컵 등이 유행하고 그녀의 한 마디는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군다. 그녀는 미국 코미디쇼 < SNL >의 단골소재이고 영화 <레고 무비2>에도 나왔다.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는 이런 'R.B.G 현상'에 주목한다. 연출을 맡은 벳시 웨스트와 줄리 코헨은 R.B.G 현상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긴즈버그 대법관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심했다고 설명한다. 영화는 여성과 소수자의 '합법적인' 차별을 알게 된 긴즈버그가 소송을 통해 법의 부당함을 증명한 역사를 들려주고 그녀가 새로운 세대의 희망이 된 이유를 보여준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는 첫 장면에서 긴즈버그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들은 긴즈버그를 '마녀', '악랄한 운동가', '괴물', '대법원의 수치', '극도로 불쾌한 인간', '반미주의자', '좀비'라고 부른다. 반대편의 비난에 대해 긴즈버그는 대답한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하려는 부탁은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달라는 것뿐입니다."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는 법조인 긴즈버그가 맡은 소송들이 어떻게 편견과 차별의 역사를 바꿔나갔는가를 그린다. 그리고 인간 긴즈버그의 삶과 사랑, 가족을 다룬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인물을 조명하는 연대기적 구성을 취한다. 사진, 신문, 기록 영상, TV 자료, 음성 자료 등을 사용하고 때론 그림도 활용한다.

가장 중심이 되는 자료는 인터뷰다. 벳시 웨스트 감독과 줄리 코헨 감독은 긴즈버그 본인을 비롯하여 가족, 친구들, 그녀를 추종하는 사람들, 여성 운동가, 긴즈버그를 대법관에 지명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긴즈버그를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두루 만난다. 그들의 생각들이 모여 "마녀라 불렸던 긴즈버그는 어떻게 세상의 아이콘이 되었나?"의 해답이 만들어진다. 소송은 해답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영화는 변호사 긴즈버그가 맡았던 역사적인 소송들을 조명한다.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 사건(1973)'은 기혼 남성이 받는 주택수당을 기혼 여성도 받을 수 있게끔 했다. '와인버거 대 와이젠웰드 사건(1975)'은 편모에게 지급되는 양육수당을 편부에게도 지급하도록 해주었다. '에드워즈 대 힐리 사건(1975)'은 배심원의 성 차별, '칼라파노 대 골드파브 사건(1977)'은 유족 성 차별에 도전했다.

이 판결들은 남성과 여성이 법 앞에서 동등한 위치가 되는 데 큰 진전을 끌어냈다. "지금 누리는 미국 여성의 법적 지위는 1970년대 긴즈버그의 공로"란 평가를 받을 정도다.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1993년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된 이후에도 사회의 평등을 위한 싸움은 계속되었다. '연방정부 대 버지니아 주 사건(1995)'은 남성만 입학할 수 있는 군사학교에 여성의 입학을 허가했다. 2019년 현재까지 대법관 자리를 지키며 미국 사회의 지나친 보수화에 맞서 가장 기본적인 가치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법원이 참정권 차별을 감시하던 투표권법의 핵심 조항을 "더는 흑인 투표권자들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지 않다"는 이유로 삭제한 '셀비 카운티 대 홀더 사건(2013)'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서는 긴즈버그는 "투표 과정의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 판결은 폭풍이 몰아치는데도 우리는 젖지 않을 것이라고 우산을 내던진 꼴이다"란 반대의견을 냈다.

회사가 신앙을 이유로 직원 건강보험에서 피임을 제외하는 것을 허용한 '버웰 대 하비로비 사건(2014)'에선 다수 의견에 반대하며 "여성의 동등한 참여를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려하기 위해 보장해야 할 것은 출산에 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다"란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긴즈버그의 싸움을 보며 영화에서 어떤 이는 말한다.

"굉장히 연약해 보이고 체구도 작아요.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사나운 수호 전사예요. 소수자와 여성과 이상을 굳게 지켜나가죠."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엔 긴즈버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역할, 또는 흥미로운 인물 3명이 등장한다. 긴즈버그의 어머니는 긴즈버그에게 "숙녀가 되어라.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라"란 두 가지 가르침을 주었다. 숙녀가 되라는 건 일을 하며 쓸데없는 분노에 휩싸이지 말라는 의미이고 남성에게 의존하지 말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라는 말은 자립 능력을 키우란 소리다.

긴즈버그가 17살에 만난 남편 마티는 그녀의 삶을 바꾸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다. 긴즈버그가 차별과 싸우며 역사를 바꿔 나갈 수 있었던 건 남편 마티의 헌신적인 지지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긴즈버그는 "그 시대의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에게도 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마티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진보 성향 법관의 대명사인 긴즈버그는 강경 보수 성향의 엔터닌 스캘리아 대법관과 매년 가족끼리 식사를 즐기고 오페라를 함께 감상하는 등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미국에선 두 사람의 관계를 '위대한 우정'이라 부른다. 법의 철학과 가치관이 달라도 이해와 존중으로 대한 두 사람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갈등을 해소할 것인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러닝 타임 98분은 우리 시대의 거인을 깊이 다루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러나 긴즈버그가 세상을 공정하게 바꾸기 위해 사법 제도 안에서 어떤 성취를 이루었고, 지금의 평등과 기본권 확립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는 시청각 자료로 손색이 없다. 그 속에서 인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과 가치관도 놓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를 보고 "양성의 존엄성은 동등하게 중시되어야 한다"란 긴즈버그의 메시지가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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