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의 신보 '사계'

태연의 신보 '사계' ⓒ SM 엔터테인먼트


내가 두발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중학생 시절, 소녀시대는 '다시 만난 세계'를 들고 가요계에 데뷔했다. 청량한 멜로디, 성장 드라마 주제가처럼 희망적인 가사, 그리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는 소녀들의 모습은 지금도 강력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겠으나, 훗날 '다시 만난 세계'는 20대들의 찬가로 격상되었다.) 그리고 이 곡의 중심에는 시원한 고음을 선보이는 메인 보컬 태연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태연은 가요계에 등장했던 시점부터 노래를 잘했다. '다시 만난 세계'를 차치하고도, 소녀시대의 중심을 잡아 주는 목소리는 분명히 태연이었다. 뛰어난 가창력 때문에 많은 곳에서 그를 찾았다. 태연은 OST의 젊은 여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당시 솔로 가수 태연의 이미지를 규정한 음악은 '만약에', '들리나요' 등 전형적인 한국형 발라드였다.

그리고 데뷔 8년 차였던 2015년, 태연이 자신의 첫 미니 앨범을 발표했다. 발라드 앨범이 나올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그의 선택은 모던 록('I')이었다. 상처를 거름삼아 직접 쓴 가사도 크게 한 몫 했다. 심지어 수록곡인 '스트레스'에서는 '넌 내가 담배를 피우도록 만들어'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그의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음악적 변신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이듬 해 여름, 그는 계절감이 충만한 트로피컬 하우스 'Why'를 들고 나왔다. 이 곡을 발표할 당시 태연이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장르는 많고 나는 건강하다"는 발언이었다. 솔로 가수 태연의 행보는 이 발언을 입증하는 과정이었다. '11: 11'에서는 어쿠스틱을, 'Rain'에서는 재지한 감성마저 뽐냈다.
 
 태연의 솔로 정규 앨범 < MY VOICE >(2017)의 리패키지 버전

태연의 솔로 정규 앨범 < MY VOICE >(2017)의 리패키지 버전 ⓒ SM 엔터테인먼트


2017년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 My Voice >도 꽤 인상적이었다. 신스팝('Make Me Love You)부터 얼터너티브 록('Time Lapse), 블루스(I'm OK) 등 온갖 장르가 담겨 있었다. SM은 수준 높은 프로덕션을 제공했고, 태연은 어색함 없이 이 옷들을 잘 소화했다. 백화점 식의 앨범이지만 산만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들을 원 없이 해 본, '태연의 독무대'와 다름없었다. 각기 다른 빛깔의 노래들을 자신의 빛깔로 비추어낼 수 있다는 것은 태연의 목소리가 갖춘 미덕이다.

예측할 수 없는 태연의 발걸음
  
사실 모든 대중의 박수를 받지 못 할 때도 있었다. 지난 여름 발표된 'Something New' 같은 경우가 그랬다. 'Something New'는 고음이나 서정적인 멜로디보다는 브라스 섹션의 활용 등 네오 소울의 그루브가 강조된 음악이었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태연의 솔로 음악 중 차트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둔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상대적인 난해함, 그리고 전형성에서 탈피한 뮤직비디오 모두 그가 의도한 것 아니었을까.

"낡아 녹슬기 전에 우리 다시 반짝이자. 또 계절이 바뀌잖아."
- '사계(Four Seasons) 중'


얼마 전, 태연이 신곡 '사계(Four Seasons)'를 발표하고 주요 음원 차트의 1위에 올랐다. 어쿠스틱 기타, 신디사이저와 스트링 사운드가 곡을 풍성하게 채우고, 태연은 설렘 대신 사랑에 대한 '회의감'을 노래한다. 지금까지 태연의 음악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정서다. 10대에 데뷔해서 30대로 접어든 지금, 동어 반복을 원하지 않는 그의 의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 태연을 방송에서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꾸민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예능에 출연하지 않고, 인스타그램 라이브, 유튜브 채널 '탱구 TV' 등 팬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즐긴다. 향기로 기억되는 공연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에 조향사를 불러 공연장을 특별한 향기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태연의 활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자유 의지, 그리고 불예측성이다. 2015년 이후, 솔로 가수 태연의 활동은 늘 대중의 일반적인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다. 태연은 자신에게 기대되는 모든 종류의 틀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믿듣탱'(믿고 듣는 태연)이라는 찬사는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그의 자유 의지가 강력하게 반영될수록, 태연의 디스코그라피는 흥미로워질 것이다. 아티스트 태연은 12년 동안 쉴 틈 없이 달려 왔다. 앞으로의 12년은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세상에 음악은 많고, 그가 하고 싶은 것에는 끝이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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