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

<빙의>. ⓒ OCN

 
OCN 수목드라마 <빙의>는 이미 죽은 연쇄살인범 황대두(원현준 분)가 산 사람의 몸에 빙의돼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황대두의 유령은 의사나 재벌 2세의 몸에 들어가 무고한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인다. 죽어서도 살인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같은 빙의가 실제 현상인지에 관한 과학적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과학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 현실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빙의 현상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고, 그 현상을 경험하고자 무속인을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일종의 '빙의 시장'이 형성돼 있는 셈이다.
 
빙의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점은, 이것이 한국 현대사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번 강조된다. 빙의 문제는 박정희 정권의 유령이 정권 붕괴 34년 만인 2013년에 부활하게 된 먼 계기가 되는 동시에, 유신 잔재가 결정적 일격을 받게 되는 먼 계기도 됐다.

생전에 '육영수 빙의' 주장한 최태민
 
 <빙의>의 황대두(원현준 분).

<빙의>의 황대두(원현준 분). ⓒ OCN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최순실의 의붓오빠이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이었던 조순제씨. 그의 아들 조용래씨가 아버지한테 들은 내용을 토대로 집필한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다>에 따르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먼 출발점은 빙의 현상이다.
 
이 빙의는 대통령 딸인 20대 초반의 박근혜가 생면부지의 최태민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위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 쏜 총에 죽자, 박근혜는 전국 각지에서 위로의 편지를 받았다."
 
그 뒤 박근혜가 받은 편지 중에 "최태민의 서신도 있었다"라고 책은 말한다. 최태민은 1975년 2월 청와대로 편지를 띄웠다.
 
당시 박근혜가 받은 것 중에는, 자세한 주소도 없이 '청와대'를 포함한 몇 글자만 적혀 있는 편지봉투가 많았을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직후이기 때문에, 박근혜는 그 편지들을 일일이 자세하게 확인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최태민의 편지는 박근혜의 눈길을 단번에 끌어당겼다. <김형욱 회고록>을 근거로 위 책에 소개된 최태민의 편지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는 걸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내 딸이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
 
육영수의 영혼이 자기 몸에 빙의된 것처럼 편지를 썼던 것이다. 직접 대면하는 것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는 상태로 편지를 써서 박근혜가 빙의에 관심을 갖도록 했으니, 대단하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1990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최태민.

1990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최태민. ⓒ 동아일보

  
당시 최태민은 목사를 자칭했지만, 직전까지는 무속인으로 활동했었다. 소수종교(이른바 이단) 전문가인 탁명환(1937~1994년)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의 아들이자 부산장신대 교수인 탁지일의 논문 '최태민과 기독교'(<기독교사상> 제698호)에 따르면, 최태민은 1974년까지만 해도 원자경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무속인이었다. 탁명환 소장이 1974년까지 인터뷰한 그는 분명히 무속인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1975년부터 '최태민 목사'로 변신했던 것이다.
 
최태민의 말이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불러왔을 수도

1973년에 최태민이 배포하고 탁명환 소장이 수집한 '영(靈)세계에서 알리는 말씀 찾으시라'란 팸플릿에 아래와 같은 대목들이 있었다. 이 팸플릿은 1973년 5월 13일자 <대전일보> 광고란에도 실렸다고 한다.
 
"영세계에 알리는 말씀, 귀체만복하심을 앙축하나이다. 영세계 주인이신 조물주께서 보내신 칙사님이 이 고장에 오시어 수천 년간 이루지 못하며, 바라고 바라든, 불교에서의 깨침과 기독교에서의 성령 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 이 모두를 조물주께서 주신 조화로서 즉각 실천시킨다 하오니 모두 참석하시와 칙사님의 조화를 직접 보시라 합니다. ······
 
더욱이 난치의 병으로 고통 받으시는 분께 현대의학으로 해결치 못하여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 난치 병자와 모든 재난에서 고민하시는 분은 즉시 오시어 상의하시라."
 
마지막 문장에서 느낄 수 있듯이 최태민은 문법을 정확히 구사하지 못했던 듯하다. 다른 사람이 대신 써줬다 해도 최태민이 최종적으로 확인했을 것이므로, 문법에 서툰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런 글솜씨로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내 빙의를 연출했으니, 대단하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최태민의 편지를 받아든 박근혜의 반응은 아래와 같았다. 아래는 조용래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사회 경험이 없던 박근혜는 최태민이 놓은 미끼를 덥석 물었고,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최태민은 1912년 혹은 1918년에 출생했다. 박근혜한테 편지를 보낸 1975년에는 57세이거나 63세였다. 이때 박근혜는 23세였다.
 
어머니를 상실한 슬픔에 잠긴 박근혜가 최태민을 처음 대면했을 때 무엇을 가장 궁금해 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죽은 어머니가 정말로 최태민한테 빙의됐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박근혜의 궁금증을 최태민은 '시원하게' 해소해줬다. 조용래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설에 의하면 최태민은 심리적 혼란에 빠진 박근혜 앞에서 육영수 여사의 영혼이 자신에게 빙의되었다며 육영수 여사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연했다고도 한다."
 
최태민이 편지를 통해, 또 직접 대면을 통해 박근혜에게 빙의 현상을 보여준 일은 과학적 타당성 여하를 떠나 한국 현대사에 영향을 주었다.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영적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되고 최태민의 권유대로 미래의 대통령을 꿈꾸는 동력이 됐다. 그리고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부르고 촛불혁명을 초래하는 먼 계기도 됐다. 빙의 현상이 한국 역사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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