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장 벤투 패장 케이로스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경기를 승리로 이끈 벤투 감독이 콜롬비아 케이로스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 승장 벤투 패장 케이로스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경기를 승리로 이끈 벤투 감독이 콜롬비아 케이로스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구미호나 다름없는 여우 감독 케이로스가 몇 개의 꼬리를 감추고 시작했지만 끝내는 벤투 감독과 우리 선수들이 활짝 웃고 말았다. 에이스 손흥민이 멋지게 포문을 열었고 골키퍼 조현우가 믿기 힘든 슈퍼 세이브로 승리를 지켜낸 것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26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2-1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아시안컵 실패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콜롬비아에 승리한 한국대표팀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콜롬비아 대표팀에 승리한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경기 후 자축하고 있다.

▲ 콜롬비아에 승리한 한국대표팀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콜롬비아 대표팀에 승리한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경기 후 자축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구미호 케이로스

이란 대표팀을 이끌며 한국 축구의 발목을 물고 늘어졌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이번에는 콜롬비아 국가대표를 이끌고 들어와 다시 마주 섰다. 한국 대표팀에게 케이로스 감독과의 지긋지긋한 인연을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지난 주 금요일(3월 22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일본과의 A매치에서 간판 골잡이 라다멜 팔카오의 페널티킥 결승골(1-0)로 이기고 들어온 콜롬비아는 그들이 자랑하는 두 선수(MF 하메스 로드리게스, FW 라다멜 팔카오)를 벤치에 두고 이 게임을 시작했다. 역시 케이로스 감독은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였다. 

이번 기회에 한국 대표팀이 케이로스 감독과의 불편한 인연을 끊어버리기 위해 꼭 이기려고 덤빌 것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에이스 손흥민의 공격적 가치를 더 높이고 새 감독 앞에서 마수걸이 골을 넣으려고 한다는 것까지 알고 나왔기 때문에 압박 강도가 더 거셀 수밖에 없었다.

에이스 손흥민의 마수걸이 골
 
축구팬들로 가득한 서울월드컵경기장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축구 팬들이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 축구팬들로 가득한 서울월드컵경기장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축구 팬들이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 연합뉴스

 
6만4388명의 만원 관중들 앞에서 승리를 다짐한 한국 선수들은 공 점유율에 집착하지 않고 상대 팀의 빈틈을 찾아 어떻게 하면 위협적이고 효율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는가에 주목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손흥민-황의조' 투 톱이 만드는 역습 공간이었다.

콜롬비아의 센터백 단짝은 '예리 미나-다빈손 산체스'의 조합이기에 황의조와 손흥민의 공격 가능성을 시험하기에 최적의 스파링 파트너인 셈이었다. 특히, 벤투 감독 부임 이후 아직까지 골맛을 보지 못한 손흥민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에이스 손흥민은 이 부담감을 멋진 골로 보답했다. 경기 시작 후 7분만에 위력적인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승리 의지를 드러낸 손흥민은 16분에 묵직한 오른발 대각선 슛으로 마수걸이에 성공했다. A매치 9경기 만에 터진 손흥민의 벤투호 첫 골이었다.
   
첫 골 넣는 손흥민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한국 손흥민이 첫 골을 넣고 있다.

▲ 첫 골 넣는 손흥민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한국 손흥민이 첫 골을 넣고 있다. ⓒ 연합뉴스

 
미소짓는 손흥민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과 콜롬비아의 평가전.

한국 손흥민이 첫 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 미소짓는 손흥민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과 콜롬비아의 평가전. 한국 손흥민이 첫 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드필더 황인범의 패스를 받은 골잡이 황의조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오른발 인사이드 전진 패스를 정확하게 손흥민 앞 공간에 밀어준 것이다. 이 순간 손흥민의 소속 팀 토트넘 홋스퍼 동료 센터백 다빈손 산체스가 그의 옆을 따라붙었지만 손흥민의 드리블 스피드는 더 놀라웠다. 그리고 45도 각도의 오른발 강슛 타이밍도 다빈손 산체스의 스탠딩 태클 시도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나흘 전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이보다 더 좋은 득점 기회를 얻고도 슛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던 손흥민의 오른발 슛은 A매치 데뷔전을 치르는 콜롬비아 골키퍼 이반 아르볼레다 머리 위를 지나 골키퍼 글러브를 스치며 골문 안에 떨어졌다.

예상보다 일찍 터진 선취골에도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콜롬비아가 반격에 나설 때 오히려 침착하게 수비 집중력을 높이고, 지혜롭게 역습을 노리는 전술을 펼치며 이 게임을 꼭 이기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
 
정우영 볼다툼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정우영이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정우영 볼다툼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정우영이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조현우 덕분에 승리 지켰지만...

0-1로 뒤진 상태에서 후반전을 시작하는 콜롬비아 벤치에서는 미드필더 모렐로스 빼고 왼발잡이 공격형 미드필더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들여보내며 자신들도 결코 질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콜롬비아 선수들의 뜻은 오래 걸리지 않아 통했다. 48분에 미드필더 루이스 디아스가 왼쪽 측면에서 한국의 오른쪽 풀백 김문환을 기막히게 따돌리는 방향 전환 드리블 기술을 자랑하며 오른발 감아차기를 그림같이 꽂아넣었다. 축구가 팀 플레이이지만 선수 하나하나의 기술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잘 가르쳐주는 명장면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이대로 콜롬비아에 흐름을 넘겨줄 수 없었기에 다시 반격에 나섰고 부상 악몽을 딛고 돌아온 왼발잡이 특급 미드필더 이재성이 단 10분 만에 다시 달아나는 추가골을 왼발 중거리슛으로 성공시켰다. 
 
내가 넣었다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과 콜롬비아의 평가전. 이재성이 두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손흥민 등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 내가 넣었다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과 콜롬비아의 평가전. 이재성이 두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손흥민 등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얼핏 보면 이재성의 개인 드리블 능력과 낮게 깔리는 왼발 중거리슛 능력이 만든 단순 작품으로 보이지만 이재성의 중거리슛 공간을 열어준 조연은 따로 있었다. 그의 바로 앞에서 빠르게 공간 침투하는 오른쪽 풀백 김문환의 오프 더 볼 움직임이 적절했기에 그 쪽으로 콜롬비아 수비수들의 시선이 몰린 덕분이었다. 

다시 점수판이 2-1로 어그러지자 콜롬비아 벤치의 케이로스 감독은 곧바로 골잡이 자리에 있는 사파타를 빼고 간판 골잡이 라다멜 팔카오를 들여보냈다. 이제서야 콜롬비아가 자랑하는 공격 라인업이 제대로 꾸려진 셈이었다. 

팔카오에게 우리 수비수들의 시선이 흔들리자 미드필더 하메스 로드리게스에게 위험 지역에서 드리블 기회가 비교적 많이 만들어졌다. 76분,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왼발 중거리슛이 아찔하게 구석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골키퍼 조현우의 순발력은 한 수 위였다. 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왼발 슛을 기막히게 쳐낸 것이다.
 
헤딩슛하는 김영권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콜롬비아 축구 대표팀의 경기에서 한국 김영권이 헤딩슛을 시도하고 있다.

▲ 헤딩슛하는 김영권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콜롬비아 축구 대표팀의 경기에서 한국 김영권이 헤딩슛을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리고 83분에 한국 벤치에서 중대 결단을 내렸다. 골잡이 황의조를 빼고 수비수 권경원을 들여보내며 1골 지키기 싸움을 수비력으로 버티기 시작한 것이다. 수비수 다섯 명을 두는 5-4-1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준 셈이다. 

이러한 수비 전술로의 변화는 골키퍼 조현우 덕분에 그나마 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냉정히 평가하자면 공격수를 빼고 수비수 숫자를 늘린 선택은 1골 지키기 방법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후반전 추가 시간에 실점이나 다름없는 위기 상황이 여러 차례 밀려왔기 때문이다.

홍철, 김문환 풀백을 그대로 수비 라인에 두었으니 다섯 명이나 서 있었지만 1차적으로 측면 크로스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했다. 후반전 추가 시간 2분, 콜롬비아의 왼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도 위협적인 헤더 슛이 한국 골문 구석을 노렸고, 곧바로 1분 뒤에는 왼쪽 크로스로 더 아찔한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서 골키퍼 조현우의 놀라운 슈퍼 세이브가 연거푸 빛난 덕분에 바로 그 1골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90+3분에 콜롬비아의 왼쪽 크로스가 한국 골문 앞으로 날아들었을 때 1차 헤더 슛은 수비수 헤이손 무리요의 것이었다.
 
조현우, 눈부신 선방쇼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조현우가 제이손 무리요의 슛을 막아내고 있다.

▲ 조현우, 눈부신 선방쇼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조현우가 제이손 무리요의 슛을 막아내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조현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이 공을 쳐냈다. 이 순간 한국 골문 앞에서 혼란이 발생했다. 조현우가 쳐낸 공을 향해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솟구치며 헤더로 마지막 희망의 화살을 쏘아올린 것이다. 조현우는 이 공에까지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았고 결국 골 라인 바로 위에서 그 공을 걷어올렸다.

콜롬비아 골잡이 라다멜 팔카오는 조현우가 두 번이나 쳐낸 공을 향해 몸으로 밀고 들어가 골 라인 안쪽에 공과 함께 서서 기뻐했다. 점수판 2-2를 만드는 극장 골이 후반전 추가 시간 3분 만에 터진 것이었다. 
 
항의하는 팔카오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라다멜 팔카오가 옐로카드를 받은 뒤 심판판정에 항의하고 있다.

▲ 항의하는 팔카오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 라다멜 팔카오가 옐로카드를 받은 뒤 심판판정에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약간 머뭇거렸지만 주심의 휘슬 소리가 길게 울렸다. 이미 제1부심의 깃발이 올라가 있었던 것, 오프 사이드 판정이었다. 헤이손 무리요의 1차 헤더 슛 순간 오른쪽에서 골문 앞으로 달려든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몇 cm 차이로 오프 사이드 포지션에 있었던 것이 정확하게 적발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평가전은 조현우의 믿기 힘든 슈퍼 세이브 덕분에 이룬 값진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8강에서 미끄러진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의 불편한 기억을 빨리 잊고자 어느 때보다 승리를 원했고 감독이나 선수 모두 그 뜻을 그라운드 안에서 전부 쏟아부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손 흔드는 손흥민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콜롬비아 대표팀에 승리한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의 손흥민이 경기 후 손을 흔들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손 흔드는 손흥민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콜롬비아 대표팀에 승리한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의 손흥민이 경기 후 손을 흔들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26일 오후 8시, 서울 월드컵 스타디움)

★ 한국 2-1 콜롬비아 [득점 : 손흥민(16분,도움-황의조), 이재성(58분) / 루이스 디아스(48분)]

◎ 한국 선수들
FW : 손흥민, 황의조(83분↔권경원)
AMF : 이청용(69분↔나상호), 황인범, 이재성(60분↔권창훈)
DMF : 정우영
DF : 홍철, 김영권, 김민재, 김문환
GK : 조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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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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