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막 멈춘 1945년 8월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벤더스가 폐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여러 모로 상징적이다. 독일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서, 그가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부정(否定)과 극복을 특징으로 하는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가 된 것은 불가피했을까.

'뉴 저먼 시네마'는 영화운동이면서 아돌프 히틀러, 아우슈비츠 같은 아버지 세대의 수치스런 기억을 넘어서려는 역사적 움직임이다. '뉴 저먼 시네마'의 출범선언문이라 부를 수 있는 1962년의 유명한 '오버하우젠 선언(Oberhausen manifesto)'은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Papas Kino ist tot)"로 요약될 수 있다. 벤더스 같은 이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은 필연적으로 '부친 살해'를 요청 받았다. 벤더스는 이후 다른 '뉴 저먼 시네마' 감독들과 함께 작가주의 감독으로 이름을 떨치며 실존적이고 감각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하지만, 그와 그의 동시대인에게 깃든 부친살해의 숙명은 예술세계의 침로를 상당 부분 결정하게 된다.

뮌헨 영화학교 1기생으로 영화를 정규적으로 공부한 벤더스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걸쳐 '뉴 저먼 시네마' 감독의 일원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벤더스 같은 이들은 폐허가 된 조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무엇보다 이 폐허 상태에서 고통을 받았지만, 동시에 나치의 야만성이 남긴 상흔으로 인해 고통이 배가되는 것을 느꼈다. 가해자의 후예라는 자각은 눈앞에 펼쳐진 물리적인 황폐함과 함께 내면의 끔찍한 유산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정신적 황폐함을 깨닫게 했다. 유럽을 석기시대로 돌린 야만과 광기는 자신의 죄가 아니지만, 아버지의 죄이기에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러한 죄의식이 동시에 조국에 대한 애착과 결부될 수밖에 없었기에 독일인 벤더스와 그의 세대는 중층적인 분열을 겪게 된다. 영화적으로는 프랑스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의 영향과, 정신적으로는 특히 68혁명의 세례까지 더해지면서 상상력의 해방과 반자본주의적인 비판정신을 체화한다. '뉴 저먼 시네마'는 여기에 동조하는 일군의 감독들의 일사불란한 특정 사조를 지칭한다기보다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졌지만 각자 다양한 주제와 스타일을 개척한 1970년대 독일의 젊고 재능 있는 감독들과 그들의 영화를 지칭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벤더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뉴 저먼 시네마'를 알아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명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동시에 갖는다.

벤더스를 이해하려면, '뉴 저먼 시네마' 감독인 그의 정신세계에 아메리카니즘이 자리하고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는 자신만의 아메리카니즘을 형성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영화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미국의 라디오 방송과 록음악, B급영화를 정신의 또 다른 자양분으로 섭취하며 자란 것은 빔 벤더스 같은 영화감독에만 국한되지 않고 독일 전후 세대 젊은이들에게 일반적이었다.

독일에 점령군으로 온 미군과 접촉하며 미국을 받아들인 이들에게 미국은 이중적인 존재였다. 수치스런 파시즘으로 기억되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미국과 미국문화는 고통스런 현실의 돌파구였다. 벤더스는 "구명대로서 미국 영화와 미국의 록 음악이 없었더라면 미치지 않고 유년기를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전쟁 직후에 유년기를 맞은 벤더스 세대의 곤고함은 상당한 것이었으리라. 배드가이 '아버지'를 '굿가이' 아메리카가 혼내주고 정의를 확립한 상황에서 그들은 아메리카에 열광하였다. 그 열광은 당연했지만, 동시에 부끄러운 것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반복되는 문제로, 벤더스를 포함한 전후세대가 결정적으로 '아버지'의 아들이란 사실이 망각될 수 없었다. 그들은 부끄럽고 수치스런 아버지를 싫어도 계승해야 할 처지였다. 그러므로 '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회피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메리카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도 필연적인 귀결이다. 정의의 사도는 '아버지'의 살해자였으며, 아메리카에 대한 열광은 그들을 부친살해의 공모자로 만들었다. 원죄는 죄를 지은 아버지 세대가 아니라 무죄한 아들 세대가 짊어지게 된다. 벤더스에 관한 평론에서 반드시 인용되는 말은, 그의 영화 <시간의 흐름 속으로(Kings of the Road)>(1976)에서 누군가 "양키는 우리의 잠재의식을 식민화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벤더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 말로 보아도 틀리지는 않았지 싶다.

아메리카니즘에서 로드무비로, 그리고 다큐멘터리

이러한 매우 복잡한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었을까, 벤더스의 아메리카니즘은 늘 긴장을 드러낸다. 아마도 '뉴 저먼 시네마' 감독 모두가 직면한 사태일 텐데, 독일 영화인으로서 벤더스와 동료들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극을 받고 자양분을 섭취했지만 동시에 독일 영화를 잠식하는 상업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미국 영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소명감을 느꼈다. 분열은 벤더스에게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와 벤더스 간의 불화를 보여주는, 널리 회자되는 일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초청으로 벤더스는 미국에서 영화 <하메트(Hammett)>(1982)를 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할리우드 시스템에 경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벤더스 같은 유형의 영화인이 할리우드에 적응하기란 태생적으로 불가능했을 터이다. 더불어 또한 태생적으로 아메리카를 벗어날 수는 없었기에 벤더스는 <미국인 친구(The American Friend)>(1977), <사물의 상태(The State of Things)>(1981), <파리 텍사스(Paris, Texas)>(1984) 등의 '미국식' 영화를 만들지만, '미국식 영화' 안에서 미국과 유럽 사이의 대치와 불화가 끊임없이 노정된다.

벤더스의 영화에서 여행이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은 자연스럽다. 분열되고 부유하는 감독의 정신세계가 로드무비로 이어진 건 본능이었을 수도 있다. '로드무비의 왕'이란 별칭을 듣게 된 데는 전후세대로서 '뉴 저먼 시네마' 감독인 그의 DNA에 내재된 이 같은 본능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고 하여도 과하지는 않아 보인다.

로드무비 <파리 텍사스>는 초반에 보여주는 광활한 사막만큼이나 광범위하고 탁월한 성취를 보여준다. 전후세대로서 부친살해의 숙명 앞에 선 벤더스는 <파리 텍사스>의 주인공 트래비스처럼 현실도피의 여행을 떠나, 그 이중성과 분열의 미로에서 어렵사리 갈피를 잡고 복원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며 미래를 모색하는 열린 결말의 여행을 다시 떠난다. 그러나 그 복원의 가능성은 트래비스로 상징되는 벤더스 세대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트래비스의 극중 대사처럼 과거의 상흔이 너무 클 때는 복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친살해 세대는, 아들과 모성에게 가능성을 제시하고는, 자신은 그 화해의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채 결말을 알 수 없는 여행을 새롭게 시작한다.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새로운 여행은 나름의 합당한 목적지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아메리카니즘과 로드무비에 이은 벤더스 영화의 또 다른 키워드는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젊은 날 68혁명을 경험한 '뉴 저먼 시네마' 감독으로서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연 건 필연적으로 보인다. 벤더스의 다큐멘터리는 극영화 못지않은 감수성으로 평론가들과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세기 말에 발표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은 다큐적인 엄밀성과 극영화적인 서정을 잘 버무려낸다.

벤더스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이미지 생산자에서 이야기 전달자로 돌아서겠다. 오직 이야기만이 이미지에 의미와 도덕을 던져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친살해의 운명을 극복한, 혹은 극복하진 못했지만 극복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그리하여 어느새 원숙한 나이에 접어든 '저먼 시네마' 감독의 포부가 느껴지는 말이다. 벤더스는 여러 가지 표현방식으로 이미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아마도 그에겐 아직도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싶다.

스스로 풀어내는 드라마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포스터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포스터ⓒ 백두대간 , 오드

 
1927년 쿠바 산티아고의 산루이스란 마을에서 태어난 이 남자는 12살 때 어머니를 여읜다. 그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형제자매마저 없어 말 그대로 천애고아 신세가 되었다. 이때부터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여, 60살을 훌쩍 넘길 때까지 대중가요 가수로 살았다.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는 늙은 가수의 삶을 중단한 뒤에는 아바나 구시가지의 낡은 아파트에 살며 적은 연금과 구두닦이로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평생 노래를 불렀지만 명성을 얻지도 돈을 벌지도 못한 그의 삶은, 운명의 호출이 없었다면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잦아들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완연한 노인이 된 이 남자에게 우연찮게 로또 같은 행운이 찾아온다. 옛 노래를 다시 불러 새 음반을 만들고 세계 전역에서 공연하였으며, 모든 가수에게 꿈의 무대인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도 섰다. 영화에도 출연하였고 70살을 넘긴 나이로 '라틴 그래미상 최우수 신인 예술가상'까지 받는 이른 바 노익장을 발휘하였다. 모두 노년에 생긴 일이다. 꿈같은 노년을 즐기다 2005년 여든 살을 얼마 앞두고 영면한 이 남자는 쿠바의 전통음악 가수 이브라힘 페레르이다.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는 세계인에게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1999)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 영화는 빔 벤더스가 만든 다큐멘터리이지만, 장르만 다큐멘터리일 뿐 나머지 모든 것은 극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한 장면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한 장면ⓒ 백두대간 , 오드

 
이 스토리는 세계적인 음반사 월드서킷의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인 라이 쿠더와 벤더스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쿠더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1984)의 영화 사운드 트랙의 기타리스트로 참여하였다. 쿠더는 월드서킷의 또 다른 프로듀서 닉 골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서아프리카 음악인들과 음반을 만들기 위해 쿠바에 갔다. 그러나 오기로 한 아프리카 음악인들이 비자 문제로 프랑스에 발이 묶여 쿠바로 건너오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쿠더는 궁여지책으로 서아프리카 음악인 대신에 쿠바 현지 음악인들을 발굴하여 음반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때 급조된 공연팀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페레르는 쿠바 시내를 걷다가 이 공연팀에 합류하여 음반 녹음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벤더스는 쿠더에게서 쿠바에서 만난 늙은 음악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 녹음테이프를 건네받는다. 차 안에서 음악을 틀은 벤더스는 음악을 듣자마자 차를 멈춰 세웠다고 한다. 음악에 매료된 벤더스는 그날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반복해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을 들었고 마침내 직접 쿠바에 가서 그들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벤더스는 나중에 이 이야기를 영화화하면서 "이 놀라운 쿠바 예술가들을 같은 비중으로 담되, 음악이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자."는 제작방침을 세웠다.

이 영화는 음악 영화이자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페레르를 비롯한 쿠바 전통음악 거장들의 인생과 음악을 담았다. 다큐멘터리이다 보니 꾸밈없이 담는 방법을 택했다. 꼼빠이 세군도, 엘리아데스 오초아, 루벤 곤잘레스, 쿠더, 페레르 등 모든 등장인물이 그저 자신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꾸밈없이 보여주는 방법은 다큐멘터리 정신에 가장 부합하지만 자칫 지루해질 소지가 있다. 벤더스는 공연과 녹음, 인생과 음악을 대칭으로 연결하여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잡아내었다. 관객은 자신이 듣는 한 곡 안에서 공간을 이동한다. 공간이동은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녹음장면과 공식적이고 치장한 상태인 공연장면 사이의 대조를 보여준다. 이러한 공시성(共時性)의 선명한 대조는 그들에게 찾아온 사건이 세계 대중음악사의 전무후무한 기적이었음을 제3자에 의한 별도의 내레이션 없이 드러낸다.

가장 정확한 접면을 찾아내어 이어붙이는 데엔 감독의 재능이 필수적이다. 최적의 접면이 아닌 곳에서 두 공간을 이어 붙이게 되면 논리적이고 시각적인 대조를 창출할 수 없다. 이러한 실패가 예상되거나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면 감독은 결국 내레이션 같은 외부 개입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다큐멘터리에서 모든 내레이션이 실패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션은 자체 문법에 의거해 사용되어야지, 문법의 부재를 감추기 위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쿠바의 아바나를 중심에 두고 여러 공간을 연결 지으며 생기는 횡단면을, 음악을 타고 관통하는 그들의 인생들이란 종단면이 만난다. 이 영화에서 종단면은 음악과 인생이 얼기설기 엮이면서 만들어진다. 다름 아닌 세월의 힘이다. 만일 10~20대의 아이돌을 대상으로 하였다면 벤더스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종단면을 잡아내지는 못하였으리라.

늙어버려 몸도 동작도 옹색한 그들. 얼굴의 주름엔 좌절과 기쁨의 구별 없이 삶이 뒤섞여 모종의 초월처럼 보이는 흔적이 완연하고, 노래로 세월과 음악을 풀어내다 보면 저절로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벤더스는 이 영화에서 소수의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모두의 인생을 포괄하며 큰 조망을 취한다. 많은 사람을 등장시켰지만 정보를 절제한 덕에 산만하지 않다. 그들의 삶의 정보는 전체로서 하나의 종단면을 형성하며, 20세기 쿠바의 음악적 연대기를 기술하는 데 성공한다.

종횡으로 엮어낸 쿠바 음악의 감동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한 장면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한 장면ⓒ 백두대간 , 오드

 
횡축을 통해 기적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종축에서는 미시사로 쿠바 전통음악의 연대기를 일별한다. 영화 대부분의 공간적 배경은 1998년의 아바나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다. 2년 전인 1996년 아바나의 허름한 스튜디오에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음반 녹음을 6일 만에 라이브로 끝내고, 예상치 않은 공전의 히트를 친 쿠더. 그는 2년 만에 새로운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함께 다시 쿠바를 찾았다. 벤더스의 영화에서는 아바나의 1998년 녹음 장면과 암스테르담 공연 장면이 이어지거나 오버랩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벤더스가 연출한 이 영화의 제목이자, 이 영화가 다룬 쿠바 음악인들의 공연팀 이름이다. 동시에 이것은 쿠바 음악의 전성기로 불리는 1930~40년대 아바나 동부에 있던 고급 사교클럽의 이름이기도 하였다. '환영받는 사교클럽'이란 뜻이다. 당시 아바나에는 카바레ㆍ클럽 같은 사교장이 번성하였는데, 많은 음악인들이 이곳에서 음악 활동에 종사하였다.

쿠바혁명 이후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류의 이른 바 쿠바 전통음악은 다소 쇠퇴하고 사회주의 이념을 담은 포크송이 번성하였다. 쿠더의 음반과 벤더스의 영화는 잊힌 쿠바의 전통음악을 되살려냈다. 사실 음악적으로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류의 음악이 쿠바 전통 음악인지, 혹은 쿠바의 주류 음악인지 등에 관한 여러 논란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영화나 음반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인에겐 이것이 쿠바 전통음악으로 고착된 혹은 관점에 따라 오인된 측면이 존재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통해 제안된 쿠바 전통 음악이 서구의 음악산업에 의해 프로듀싱됐다는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어 보인다. 횡축과 종축 모두에서 성공의 그늘은 발견된다.

그러나 벤더스의 영화에다 그 그늘의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영화는 음반의 기적에 후행하며 극적인 그 사건을 기록하는 역할에 충실하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특정한 담론의 결정자를 자임하려는 '의도'는 영화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벤더스의 영화적 성취는 어떤 쿠바인의 입장에서 제기될 법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흠결, 혹은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선다.

말 그대로 심금을 울리는 페레르의 목소리와 우수에 찬 눈빛은 정치와 역사 이면의 인간 실존을 강렬하게 표명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홍일점인 1930년생인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노래가 이 영화에서 자아내는 감동 또한 적지 않다. 암스테르담 공연에서 청중의 환호에 답례하며 흘리는 그의 눈물과, 흘러넘치는 그 눈물을 닦아주는 페레르의 주름진 늙은 손.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만한 작품으로 평가받게 한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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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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