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끓는 20대를 1980년대에 산 이들이라면 엄인호, 이정선(기타), 김현식, 한영애, 정서용(보컬)이 모여 결성했던 '신촌블루스'를 기억한다. 신촌블루스는 많은 보컬리스트가 객원가수로 활동했다. 그 중에선 대중에겐 널리 알려진 이은미와 강허달림도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은근이 있는데 그는 5년 전 춘천에 정착해 활동한다.
  
이은근 신촌블루스의 객원가수로 활동할 정도로 음악성이 탁월한 이은근 가수가 양양군의 산골마을 갈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이은근신촌블루스의 객원가수로 활동할 정도로 음악성이 탁월한 이은근 가수가 양양군의 산골마을 갈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덕수


23일 양양군 구룡령 아래 갈천마을에 '2019 강원도 에베레스트 원정대' 출정식으로 갔을 때였다. 이은근씨와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또래 아닌가요"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대화를 하는데 가수와 시인이란 관계에서 흔히 존중의 의미로 쓰는 경어가 아닌, 상당한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느낌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피부가 참 곱네요" 정도라면 손아래 사람에게도 인사로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피부가 정말 고우세요"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는 일종의 최대한 예의를 갖춰 상대를 기분 좋게 하려는 의도가 담긴 말이기 때문이다.
 
"저 용띱니다"라고 하자, 잠시 멈칫 하더니 "정말요? 그럼 우리 친구네요"란다. 이런 일 한 두 번 겪은 게 아니다보니 충분히 이해한다. 노래 '한계령' 탓이다. 어느 정도 세상을 살아 본 누군가가 노랫말을 썼으리라 생각하는 이들은 노랫말의 당사자가 앞에 있어도 자신이 생각했던 이미지를 쉽게 거두지 못한다. "정말 열여덟 살에 그 시를 썼어요"란 말은 "너 그렇게 조숙했니"란 말이다.
  
이은근 대화를 하며 이은근은 잘 웃었다. 마침 내린 봄눈 풍경 속에서 여전히 동심을 간직한 그의 모습을 만났다.

▲ 이은근대화를 하며 이은근은 잘 웃었다. 마침 내린 봄눈 풍경 속에서 여전히 동심을 간직한 그의 모습을 만났다.ⓒ 정덕수

  
이은근 ‘나 춘천 살아요’란 신곡을 내는 이은근은 산골마을에서 치른 ‘2019 강원도 에베레스트 원정대’ 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달려왔다.

▲ 이은근‘나 춘천 살아요’란 신곡을 내는 이은근은 산골마을에서 치른 ‘2019 강원도 에베레스트 원정대’ 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달려왔다.ⓒ 정덕수

 
당사자 앞에서 신촌블루스에 대해 얘기를 한다는 건 상대에 대한 관심이 있거나, 잘 모르면서 괜히 아는 척 해 관심을 끌려는 행동이다. 이미 '나 춘천 살아요'란 신곡가지 준비했다는 걸 아는데 뭘 더 알려고 파고 들 필요성을 못 느낀다.
 
어떤 인연이 되어 갈천이란 산골마을에 왔는지도 체로금풍의 박황재형 선생은 물론이고, 춘천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가수를 통해 이곳 강원도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알게 됐을 수도 있다.
 
한 사람 소개로 그가 또 다른 인연을 맺어도 모두 스스로 할 도리만 다 하면 되는 법이다. 미덥지 못하면 애초 사람과 사람을 인연되게 할 판을 안 만들면 된다.
 
30여 년 전 한동안 춘천에 머물렀다. 그때 확인했다. 호반의 도시란 이름에 걸맞게 춘천은 안개가 점령군처럼 도시를 채우는 날이 많았다. 늦은 밤 넓은 유리창을 밀고 들어올 기세로 안개가 도시를 점령하면 별도의 엄폐물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어딘가에서 매서운 눈으로 기다렸을 매복조를 비웃기라도 하듯 태연자약 안개 속을 걸었다. 낙엽이 지고 기온이 낮은 날이면 공지천엔 얼음꽃이 나무마다 피어났다.
 
초겨울부터 3월까지 춘천은 자주 그런 장면을 보여줬다. 그때마다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안개와 공지천의 얼음꽃이 피는 장면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지켜보곤 했다.
 
그런 춘천이 좋아 정착한 이은근은 인제가 고향이다. 인제군은 춘천 공지천의 최상류에 속한다. 소양강에서 배를 타면 인제군 신남면의 남전리까지 거슬러 오른다. 설악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길들이 원통을 벗어나기 직전 북쪽에서 흘러온 물길을 만나 인제 합강머리에서 다시 내린천과 몸을 섞어 인제를 가로질러 마침내 소양강이 된다.
  
이은근 ‘봄날은 간다’를 끝낸 이은근이 ‘한계령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는 봄눈 내리는 한계령을 촬영할 기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겐 또 다시 한계령을 떠 올리게 했다.

▲ 이은근‘봄날은 간다’를 끝낸 이은근이 ‘한계령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는 봄눈 내리는 한계령을 촬영할 기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겐 또 다시 한계령을 떠 올리게 했다.ⓒ 정덕수

   
칠형제봉 오색에서 한계령으로 오르는 길목에 칠형제봉이 있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이곳을 중심으로 한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 칠형제봉오색에서 한계령으로 오르는 길목에 칠형제봉이 있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이곳을 중심으로 한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정덕수

   
한계령에서 백두대간엔 동과 서를 연결하는 많은 고갯길이 있다. 그러나 이곳만큼 조망의 즐거움이 큰 장소는 없다.

▲ 한계령에서백두대간엔 동과 서를 연결하는 많은 고갯길이 있다. 그러나 이곳만큼 조망의 즐거움이 큰 장소는 없다.ⓒ 정덕수

   
한계령 1981년 18살 가을 바로 이 장소에서 ‘한계령에서’를 썼다. 그 시가 1983년 다른 이의 손을 거쳐 노래 한계령으로 만들어지고 양희은 가수가 불러 세상에 나왔다.

▲ 한계령1981년 18살 가을 바로 이 장소에서 ‘한계령에서’를 썼다. 그 시가 1983년 다른 이의 손을 거쳐 노래 한계령으로 만들어지고 양희은 가수가 불러 세상에 나왔다.ⓒ 정덕수

 
제법 넓은 마당엔 차들이 주차돼 풍경을 배경으로 하기엔 산만했다. 그는 개의치 않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 몇 곡 부른 뒤라 잠겼던 목이 많이 풀렸는지 그의 음색이 완연하게 살아났다. 40대도 어린 축에 속할 정도로 모인 이들의 연령을 고려했는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장르인 가요를 불렀다.
 
재즈를 공부하기 위해 마흔 넘어 미국으로 떠날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의 그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불렀다.
  
산수유꽃 산수유꽃에 쌓였던 봄눈이 녹기 시작했다. 이은근 가수가 부르는 한계령과 봄날은 간다 등 몇 곡의 노래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녹여 봄으로 이끌었다.

▲ 산수유꽃산수유꽃에 쌓였던 봄눈이 녹기 시작했다. 이은근 가수가 부르는 한계령과 봄날은 간다 등 몇 곡의 노래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녹여 봄으로 이끌었다.ⓒ 정덕수

   
한계령 시인은 어느 순간 사진 한 장을 보고 그 감정을 시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수는 그 노래의 장소를 담은 사진을 보면 그 노래가 지닌 의미를 보다 또렷하게 표현하게 된다.

▲ 한계령시인은 어느 순간 사진 한 장을 보고 그 감정을 시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수는 그 노래의 장소를 담은 사진을 보면 그 노래가 지닌 의미를 보다 또렷하게 표현하게 된다.ⓒ 정덕수

   
한계령 짙은 구름이 바람의 결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바위와 나무는 봄눈으로 곱게 단장한 풍경은 노래를 부르는 이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 사진 한 장이 가수에겐 노래를 그려낼 또 다른 동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 한계령짙은 구름이 바람의 결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바위와 나무는 봄눈으로 곱게 단장한 풍경은 노래를 부르는 이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 사진 한 장이 가수에겐 노래를 그려낼 또 다른 동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정덕수

 
산수유꽃에 쌓였던 눈이 녹기 시작했다. '봄날은 간다'를 3절까지 부른 그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한계령을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 같은 날은 한계령을 올랐으면 제대로 설경을 만날 수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구룡령 아래 이곳 풍경에 만족해야겠군요"라 했었고, 그도 "정말 오늘 그곳은 근사하겠군요"라 대답했었다.
 
심연(深淵)에서 길어 올린 한 두레박의 물맛 같다고나 할까. 그런 음색으로 부르는 한계령을 들으며 어느덧 한계령의 사계로 이끌려 들어갔다. 봄,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거쳐 다시 봄의 한계령으로…
 
"올해 춘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앨범을 제작해요."
 
그의 음악에 대한 생각이나, 강원도 춘천시에 정착해 살며 느낀 점들에 대해서 듣고 싶었지만 개인적인 만남이 아닌 탓에 다음 기회로 미뤘다. 다만 어떤 장소에서나 그는 노래 부르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또 세상의 노래를 향한 욕심을 감추지 못하리란 걸 알기에 몇 장 사진만 담았다.
 
한참 위가 아니라 우리 동갑내기다.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쓰기에 우린 많은 나이도 절대 아니다. 보다 완숙한 시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고, 보다 완숙한 노래를 부를 아주 근사한 시절이다. 하여, 오늘도 또 누군가의 영혼을 위로할 노래를 부르며 등장할 그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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