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계의 레전드' 요기 베라가 남긴 말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포츠 각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스포츠의 특성에 딱 잘 맞는 격언이다. 예상 가능한 밋밋한 드라마, 별다른 스토리 없는 지루한 드라마, 예상을 깨는 반전드라마 등 매 경기 다른 스토리가 연출된다.

24일(한국 시간) 미국 내슈빌 브릿지 스톤 아레나에서 진행된 'UFC Fight Night 148' 메인 이벤트에서는 엄청난 반전쇼가 만들어져, 지켜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날 메인 이벤트를 책임진 선수는 '원더보이' 스티븐 톰슨(36·미국)과 '쇼타임' 앤서니 페티스(32·미국)다.

웰터급 최강 타격가로 명성 높은 가라데의 톰슨, 전 라이트급 챔피언이자 페더급에서도 뛴 바 있는 태권도의 페티스. 두 사람의 파이팅 스타일상 화끈한 격돌이 기대됐지만 체급 변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보여준 페티스의 몸놀림이라면 충분히 톰슨과 기동력 싸움이 가능해보였으나 둘이 격돌한 전장은 웰터급이었다.

'페티스가 웰터급에서도 화려한 테크닉을 뽐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선뜻 예상이 힘들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같은 우려는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 둘의 충돌은 UFC 역사에 남을 반전드라마까지 만들어내며 팬들을 크게 흥분시켰다.
 
 앤서니 페티스는 자신의 격투 인생에 영원히 남을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어냈다.

앤서니 페티스는 자신의 격투 인생에 영원히 남을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어냈다. ⓒ UFC

 
대반전, 원더보이 무너뜨린 페티스의 원샷
 
개인 대 개인으로 맞붙는 격투기에서는 뜻밖의 타격 한 방이나 서브미션 한 수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 전력 차 혹은 전략 대결로 승부가 갈리지만 변수라는 이름 아래 만들어지는 이변도 적지 않다.

프라이드 시절 가위치기 이후 힐 훅으로 앤더슨 실바를 잡아낸 초난 료, 차엘 소넨의 레슬링에 고전하다가 막판 트라이앵글 초크로 타이틀을 지켜냈던 챔피언 시절의 앤더슨 실바 등이 대표적이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 역시 지난 'UFC Fight Night 139' 대회 메인 이벤트에서 경기종료 1초를 남기고 역전 넉아웃 패배를 당하며 국내 팬들을 안타깝게 한 바 있다.

공이 울리기 무섭게 페티스는 가드를 굳건히 한 채 전진 스텝을 밟고 압박해 들어갔다. 톰슨은 언제나처럼 사이드를 돌며 거리싸움을 펼쳤다. 페티스는 킥 거리보다 펀치 거리에서 대결을 펼치려 하는 모습이었다. 노련한 톰슨은 로우킥, 미들킥을 차며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페티스는 장기인 미들킥을 차주며 톰슨의 몸통을 공략했다. 톰슨은 뒤로 피하는 듯 하다가도 빈틈이 보인다싶으면 스탠스를 바꿔가며 펀치와 킥을 부지런히 냈다. 전체적 거리싸움에서 톰슨이 흐름을 잡아가는 분위기였다.

2라운드에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페티스는 과감하게 밀고 들어갔으나 더 큰 데다 기동성까지 갖춘 톰슨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데는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다. 점차 탄력을 받은 톰슨은 로우, 미들킥에 스피닝킥, 사이드킥까지 자유롭게 구사했다. 페티스가 케이지 인근까지 압박해 들어오면 앞손으로 치고 사이드 스텝으로 유유히 빠져나가 버렸다.

페티스는 압박까지는 좋았으나 이후의 움직임이 문제였다. 위협적인 한방이나 레슬링 없이 유효타 싸움에서 톰슨을 감당하기는 벅차보였다. 톰슨의 치고 빠지는 타격에 페티스의 얼굴이 피로 물들어갔다. 반면 톰슨의 얼굴은 깨끗하기만 했다. 분위기 반전 없이 그대로 2라운드가 끝나는 듯 싶었다.

그 순간 대 역전극이 벌어졌다. 톰슨이 케이지 구석으로 페티스를 몰아가며 분위기를 잡아가려는 찰나 믿지 못할 장면이 만들어졌다. 페티스가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회심의 슈퍼맨 펀치를 날렸고 정확한 일격에 맷집좋은 톰슨도 견디지 못하고 옥타곤 바닥에 쓰러졌다. UFC 역사에 남을 역전 넉 아웃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날 승부로 인해 페티스와 톰슨의 상황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말았다. 페티스는 최근 들어 승패를 반복하며 예전의 강력했던 이미지가 구겨진지 오래였다. 라이트급, 패더급을 오가면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맥스 할로웨이, 토니 포거슨 등 각체급 강자들과의 맞대결에서 연신 고배를 마셨다. 그런 상황에서 웰터급 상위랭커 톰슨을 잡아내며 삽시간에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반면 톰슨은 위기에 몰리게 됐다. 호시탐탐 챔피언 타이틀 기회를 노리고 있던 그는 지난 대런 틸과의 경기에서 잘 싸우고도 석연찮은 판정패를 당했다. 페티스에게마저 패한다면 정상 경쟁에서 멀어지게 될 위기였다. 결과적으로 방심이 화를 불렀다. 어렵지 않은 승리가 예상된 상황에서 뜻밖의 일격을 허용했고 생애 첫 연패-생애 첫 넉아웃 패 등 뼈아픈 기록만 남기게 됐다.
 
 태권도 파이터 존 막데시

태권도 파이터 존 막데시 ⓒ UFC

 
막데시의 조용한 압박, 소극적 피네도 제압
 
태권도 파이터로 유명한 '황소' 존 막데시(33·캐나다)가 가라데로 무장한 '엘무도(El Mudo)' 헤수스 피네도(22·페루)를 잡아냈다. 막데시가 중앙을 선점하고 압박하는 가운데 사이즈에서 우세한 피네도는 옥타곤 주변을 돌며 거리 싸움을 벌였다. 양 선수는 킥 마스터들답게 다양한 킥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막데시가 로우킥과 옆차기, 스피닝 킥 등으로 압박하면 피네도는 미들, 하이킥을 시도했다. 막데시는 거리가 좁혀졌다 싶으면 과감히 펀치를 날리며 싸움을 걸었으나 피네도는 근거리 타격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공간만 벌리는 모습이었다. 최근 경기에서 근거리 안면방어에 약점을 자주 드러냈던지라 더더욱 조심하는 듯 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피네도의 지나치게 소극적인 플레이가 문제였다. 2라운드에 들어서자 막데시는 좀 더 힘차게 압박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피네도는 아랑곳없이 백, 사이드를 오가며 정면대결을 극도로 피하는 모습이었다. 막데시는 꾸준히 공격을 시도했으나 피네도같이 자신보다 큰 선수가 빠른 몸놀림으로 대놓고 회피 위주의 파이팅을 펼치는지라 별다른 답이 없어보였다.

라운드 막판 피네도가 갑자기 적극적인 압박을 시도하자 양 선수는 잠깐의 뜨거운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3라운드에서도 기본 양상은 비슷했다. 막데시가 로우킥을 차주며 전진 스텝을 밟는 가운데 피네도는 사이드로 돌며 거리를 둔 상태에서 간간히 킥을 날렸다.

피네도는 이날 경기에서 자신이 먼저 공격을 시도할 때 타격 적중률이 좋았다. 하지만 선공의 시도 자체가 워낙 적었다. 막판 분위기 전환용으로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는 듯한 퍼포먼스를 잠깐 보여주기도 했으나 성난 관중들의 야유를 잠재우는 데는 부족했다. 결국 승부는 압박위주의 전진 스텝을 밟으며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었던 막데시의 판정승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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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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