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타임 룩 앳 유> 포스터

영화 <에브리타임 룩 앳 유> 포스터 ⓒ BoXoo 엔터테인먼트


중요한 생물학 시험을 망친 율(말라 엠드 분)은 원하지 않았던 임신을 의논하고자 낡은 밴을 몰고 남자친구가 머무는 포르투갈로 향한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출발 당일 카풀 예약에 바람을 맞은 얀(안톤 스파이커 분)과 마주친다.

논문이 과격하다는 이유로 장학금에서 탈락한 얀은 그동안 몰랐던 친아버지를 만나러 스페인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율은 얀을 태워주기로 하고 같이 여정에 오른다. 서로 다른 목적지, 함께 떠나는 차 안. 그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되고 상대에게 서서히 물들어 간다.

<에브리타임 룩 앳 유>는 고민과 상처를 지닌 청춘이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예기치 못한 사랑을 만난다는 내용을 다룬 독일 영화다. 영화는 여행의 수단으로 자동차를 선택한다. 원제가 < 303 >인 까닭은 영화 속 주인공 율과 얀이 함께 타고 여행하는 차종이 '메르세데스-벤츠 O 303'인 사실에 기인한다.

국내 수입사는 영화의 메인 OST인 '마그넷 볼스(Magnet balls)'의 가사 "에브리타임 아이 룩 앳 유(Everytime I look at you)"를 인용해 <에브리타임 룩 앳 유>라는 다소 뜬금 없어 보이는 제목을 붙였다. 아쉬운 것은 제목뿐만이 아니다. 독일에서 상영한 러닝타임은 총 145분이다. 하지만 국내 수입사는 다소 길다고 여긴 탓인지 120분 버전을 수입했다. 25분이나 잘려나간 것이다.
 
 영화 <에브리타임 룩 앳 유>의 한 장면

영화 <에브리타임 룩 앳 유>의 한 장면 ⓒ BoXoo 엔터테인먼트


<에브리타임 룩 앳 유>는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닮은 점에 이끌려 사랑에 빠진다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의 상식을 깬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을 하나로 모아주는 힘은 '대화'에서 나온다. 연출을 맡은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은 "대화를 자연스럽게 들려주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율과 얀은 역사, 정치, 생물학, 인류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열띤 토론을 벌인다. 집단 대 개인,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 이성주의 대 합리주의 등 가치관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치열한 토론의 중심엔 사랑이 위치한다. 얀은 본능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사랑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율은 마음의 느낌과 끌림의 시작만이 본능으로 이어간다고 주장한다.

남녀가 나누는 대화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에브리타임 룩 앳 유>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영향을 받았다. 중간에 나오는 요리를 '오르가즘'에 비유하는 대목은 어쩌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명장면에 바치는 오마주일지도 모르겠다.

대화에 풍경을 더한 '대화의 로드무비'이란 형식으로 보면 <비포 선라이즈>와도 닮았다. 실제로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은 <비포 선라이즈>의 스태프로 참여한 경력을 갖고 있다. <에브리타임 룩 앳 유>는 그저 <비포 선라이즈>의 아류에 머물까? 그렇진 않다. 영화는 '자동차'란 공간과 다양한 '풍경'을 이용하여 차이점을 만든다.
 
 영화 <에브리타임 룩 앳 유>의 한 장면

영화 <에브리타임 룩 앳 유>의 한 장면 ⓒ BoXoo 엔터테인먼트


<에브리타임 룩 앳 유>에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서사와 인물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항공편이 발달한 시대에 베를린에서 포르투갈까지 며칠 동안 자동차로 이동하는 건 분명 시대착오에 가까운 선택이다. 영화에서 율이 그런 결정을 내린 건 미래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으로 향하는 얀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고민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영화는 (비행기에 비해) 느린 속도로 나아가는 자동차를 통해 독일의 베를린과 퀼른,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목적지인 포르투갈을 화면에 담았다. 관객은 같이 여행하는 기분으로 풍경을 구경하게 된다. 율과 얀은 도시, 시골, 숲, 산, 수도원, 동굴 바다, 아이스크림 가게, 빵집 등 다양한 곳을 거친다. 두 사람은 느리게 이동하며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느낀다. 그리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영화 속 풍경은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을 맡았다. 1980년대 차량인 메르세데스-벤츠 O 303은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여기는 율과 얀의 심리 상황일 수도 있다. 꼬불꼬불 계속 이어지는 길은 율과 얀이 처한 고민이자 불안이다. 두 사람은 길을 계속 나아가며 변화를 겪는다. 바다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때론 감추었던 아픔을 드러내고 치유한다. 서로를 향한 사랑도 싹튼다. 진정한 사랑과 청춘의 의미를 깨달아가며 자동차와 길은 점차 무한의 가능성으로 바뀐다.

<에브리타임 룩 앳 유>의 첫 장면에서 시의 한 구절 "영원에 대한 최초의 예감, 그것은 사랑할 시간을 가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는 독일의 시인이자 로뎀의 비서로 유명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썼다. 이것은 더 늦기 전에 망설이지 말고 사랑하라는 뜻일 수 있다. 삶에서 가져야 할 여러 시간의 중요성으로 읽어도 괜찮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불확실한 미래, 누구와 어떤 경로로 얼마의 속도를 내며 갈 것인가'란 선택처럼 말이다.
로드 무비 독일 한스 바인가르트너 말라 엠드 안톤 스파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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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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