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우상> 메인포스터

영화 <우상> 메인포스터ⓒ CGV아트하우스


01.

6년 전, 영화 <한공주>를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였다. 영화의 중심에 선 피해자 한공주(천우희)의 사건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 사건이 발생한 이후 법적인 해결과 별개로 피해 당사자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당사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하여 몰입을 선사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아프고 먹먹했던 감정이 아직도 떠오를 정도로 좋은 작품으로 남아있다. 영화 <우상>은 <한공주>를 연출했던 이수진 감독이 선보이는 6년 만의 신작이다.

도의원 구명회(한석규)는 보기 드물게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인물이다. 옳다고 판단되는 일 앞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이미지로 차기 도지사로 지지를 받을 만큼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사고는 그가 핵발전소 문제를 위해 일본 시찰로 집을 비운 사이 벌어진다. 아들이 뺑소니를 치고는 자수하지 않고 은폐하고자 했던 것이다. 명회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해 아들을 자수시키지만 그 사고로 인해 아들을 잃은 중식(설경구)은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 이 사건을 은폐해야 하는 명회와 아들의 죽음으로부터 진실을 얻고자 하는 중식의 충돌 사이에는 사건 당일 중식의 아들과 함께 있다 사라진 여자 련화(천우희)가 있다.
 
 영화 <우상> 스틸컷

영화 <우상> 스틸컷ⓒ CGV 아트하우스


02.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우상>은 순간 순간 불꽃을 내며 타오르지만 선명하게 타오르지는 못하는 영화다. 장면마다 인상적인 순간들이 쏟아져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볼 때 극의 짜임새가 좋지는 못하다는 뜻이다. 세 인물이 각자 속에 품고 있는 욕망이 꺼내 보여지거나 타인의 것과 충돌하는 장면에서는 분명히 긴장감이 형성되지만, 그 긴장감이 작품 전체 스토리와는 함께 호흡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인물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약하고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장면들이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은 사건 및 갈등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과 그 지점이 어떻게 해소되어 가는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기승전결의 가장 표면에서 드러나는, 눈으로 확인하기 가장 쉬운 지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건 및 갈등을 실제로 겪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부분이다.

그들이 타인과 갈등을 형성하고 있을 때, 혹은 집단이나 사회와 대척된 지점에서 하나의 사건을 형성하는 인자가 될 때, 행동을 직접 보여주거나 그 행동의 동인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인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중 레이어 형식 속에서 복잡한 사건을 설명하는 작품일수록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표현, 적어도 예측이 가능한 범위 내의 복선을 형성해주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속 명회와 중식, 련화 세 인물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의 동인을 단순히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혹은 자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슬픔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현실로부터 떨어져 나오기 위해 라고 설명하는 것에는 충분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단적으로, 첫 등장과 함께 이성적인 인물로 등장했던 명회가 아들의 사고 앞에 일순간 돌변하며 자신이 직접 그 사건을 해결하고자 전면에 나서는 것은 해당 인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주어지지 않고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설정이다. 지금 영화 속에 그려지는 그의 모습은 애초에 자신의 아들보다는 자신의 지위가 더 중요한 인물이기에 굳이 자신이 직접 나설 이유가 없다.

03.

물론, 영화의 많은 부분이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전달되고 암시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영화 외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배우들의 발음 및 대사 전달의 지점에 있어 큰 문제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정확한 이유까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일부 후시 녹음의 문제로 추측되는 이 지점의 문제는 영화의 오프닝과 함께 등장하는 중식의 나래이션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 이 영화에서 오프닝 속 중식의 나래이션은 분명히 큰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에 그 전체 내용을 바로 알아차린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 이 문제는 영화의 러닝 타임 내내 반복되어 등장하고 있으니, 의도적으로 장면의 축약을 위해 대사로 옮겨 놓은 영화의 설정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전달될 수가 없는 것이다.

동일한 지점에서 은유와 상징이 주를 이룬다는 점 역시 개운하지 못한 뒷맛을 남긴다. 시종일관 불친절함으로 일관하는 이 작품에서 관객들은 러닝타임 내내 메시지를 획득하고자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요한 단서들이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제대로 알아차리기가 힘들 정도다.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나래이션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면 후반부에서 중식이 명회를 돕겠다고 단상 위에 서는 장면 직전까지 그의 아들이 어떤 상태로 살아왔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게 되어버리는 식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의 머리 폭파 장면도 마찬가지다.
 
 영화 <우상> 스틸컷

영화 <우상> 스틸컷ⓒ CGV아트하우스


04.

작품의 타이틀인 우상(Idol)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다. 많은 사랑을 받는 대상을 의미하는 우상과 신으로 숭배되는 대상으로서의 우상. 만약, 이 타이틀의 의미가 전자의 것이었다면 구명회를 제외한 나머지 두 인물은 애초에 배제되고 있었던 셈이며, 후자의 것이었다면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작품 속 신의 존재에 대한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 극을 오롯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를 영화 속 특정 인물 하나에 (가령 명회는 자신을 도덕성 있는 모습으로 꾸미면서 도민들의 우상으로 군림하고자 한다) 빗댄 표현이라면 나머지 두 인물의 의미가 퇴색하기에 이 또한 받아들이기는 쉽지가 않다.

이수진 감독이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세계관의 판을 키우고 다양한 지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자 했던 것이었음은 알 것도 같다. 다만, 하나의 주제를 끌고 나가는 힘이 집약적이면서도 강렬했던 전작 <한공주>와는 달리 목적이 다른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이번 작품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감독이 연출할 또 다른 작품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전의 작업 형태처럼 상대적으로 단순한 서사에서 깊이 있는 시선을 끌어내는 것에 더욱 특화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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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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