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백명희 배우

백명희 배우 ⓒ 백명희

 
1997년 대학로에 입성한 백명희 배우는 이랑씨어터가 문을 닫은 지난 2017년까지 도합 20년의 세월을 극장과 함께 보냈다. 거센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그녀는 연기와 기획, 홍보와 공연장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기꺼이 도맡으며 우직하게 한곳을 지켰다. 비록 많은 관객을 울고 울렸던 이랑씨어터는 사라졌지만, 연극을 향한 그녀의 순애보는 여전히 변함없다. 오랫동안 맡았던 고단한 중책들을 내려놓고, 본연의 역할인 '배우'로 돌아온 그녀를 봄의 빛깔을 머금은 대학로에서 마주했다.

청춘의 페이지를 장식한 연극과의 인연

대학생 시절, 수업 후 귀가하던 그녀는 연극동아리 모집 공고가 붙은 대자보를 보고 한달음에 동아리 방으로 달려갔다. 고등학교 시절, 취미로 연극을 했던 만큼 낯설기보다는 익숙한 기억의 손길이 그녀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동아리 활동에 빠져서 대외활동은 뒷전이었어요.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겠다는 꿈도 있었는데 공연 연습 기간이랑 접수 시기가 마침 딱 겹친 거예요. 정신없이 리허설에 열중하다 보니 접수처를 잘못 알아서 지원도 못 한 거 있죠? 그 뒤로부터는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 없어요. 연극으로 가는 오직 그 한 길만을 생각했죠."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은 <용띠 위에 개띠> 속 한 장면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은 <용띠 위에 개띠> 속 한 장면 ⓒ 백명희

 
대학 졸업 후에도 연극배우로서의 꿈을 키워나가던 그녀는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연극 <불 좀 꺼주세요>에 출연 중이었던 이도경 배우를 만났고, 그 만남이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맨 앞줄에 앉아 대표님이 연기하시는 모습을 봤는데, 굉장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어요. 그 뒤로 대학로를 지나며 대표님을 몇 번인가 우연히 마주쳤는데 '우리 극장 한 번 안 올래?' 하시는 말씀에 극장으로 찾아뵙게 된 거예요."

당시는 대학로극장에서 1997년 초연 이래 큰 화제를 모았던 연극 <용띠 위에 개띠>가 절찬리 공연 중이던 시기였다. 이 인연을 필두로 대학로극장에서 스태프로 일을 시작한 그녀는 2000년에 이도경 배우와 이랑씨어터를 함께 개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용띠 위에 개띠>의 주연으로 무대에 오르며 배우의 꿈을 이루게 된다. 

"아직도 생생해요. 7월 17일이었는데 당시에는 제헌절이 공휴일이었거든요. 그래서 공연이 하루에 2회였어요. 그때 매표소에서 티켓 배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낮 공연이 끝나고 갑자기 내려오라는 호출이 온 거예요. 공연에 출연 중이던 선배가 사정상 저녁 공연을 못 하게 되면서 제가 급하게 투입되어야 했던 거죠. 오랫동안 연습을 해와서 자신은 있었는데, 분장하고 옷 갈아입을 시간이 필요해서 불가피하게 10분 정도 공연 시간이 지연됐어요. 그날 이후로 2010년까지 공연을 쭉 이어갔죠."

 
 <용띠 위에 개띠> 속 한 장면

<용띠 위에 개띠> 속 한 장면 ⓒ 백명희

 
<용띠 위에 개띠>는 10여 년간 3000회가 넘는 공연을 이어갔으며, 약 29만 명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을 정도로 대학로를 대표하는 연극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작품의 롱런이 이어질수록 극장의 곳곳은 그녀의 손길을 더 필요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가 무섭도록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 같아요. 한창 인터넷 홍보가 중요해지기 시작하던 시기라, 오후 시간에는 기자들이 보통 자리를 비우다 보니까 이른 아침부터 직접 기자를 찾아가서 만났어요. 그 아무리 작은 매체라도 예외 없이 찾아갔죠. 그리고 오후에 극장에 돌아와서는 공연 자료를 기자에게 이메일로 발송하는 일을 했어요.

공연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으니까요. 눈이 무릎 아래까지 쌓였을 때도 포스터를 붙이러 천호동까지 갔어요. 그러다 공연 준비하고 저녁에는 직접 무대에 오르는 생활을 반복했죠. 공연이 끝나도 일은 끝나는 법이 없었어요. 그날 정산을 마치고 나서 미흡하다 싶으면, 홍보하는데 더 시간을 쏟았죠. 그러다 보니 새벽에 귀가하기 일쑤였어요."


배우를 넘어 극장장의 역할까지 맡아 하면서 극장의 온몸을 살뜰히 챙기고 돌본 것도 그녀였다. 무대기술을 배워 새롭게 들어오는 스태프들에게 조명과 음향에 대한 지식을 직접 전해주면서 공연이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애쓴 것도 그녀 몫이었다. 

"무모하면서도 미련하다 싶을 정도의 책임감 때문에 제가 맡은 일 만큼은 완벽하게 해내려고 했어요. 제가 그만두면, 극장이 어떻게 돌아갈까 하는 걱정에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죠. 협찬이나 티켓 단체 구매 문의도 제가 직접 응대했어요. 출연 준비를 하느라고 한쪽 얼굴만 화장한 채로 뛰어나간 적도 있었다니까요."

 
 장기간 롱런한 연극 <용띠 위에 개띠> 중에서

장기간 롱런한 연극 <용띠 위에 개띠> 중에서 ⓒ 백명희

 
빛나는 재능으로 환우들의 삶에 온기를 불어 넣다

운영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이랑씨어터는 2017년 극장의 문을 굳게 닫게 된다.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곳이 사라지면서 그녀도 매일 향하던 보금자리를 하루아침에 잃었다. 허무함과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던 그녀가 삶의 활력을 다시 찾게 된 것은 2018년 종로문화재단이 장기 입원 중인 환아들을 위해 진행한 문화예술지원사업 '어린이병원힐링플레이'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15년부터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 희귀난치질환 환아들을 위해 만들어진 다목적공간 '꿈틀꽃씨쉼터'에서 운영되어왔다.

그녀는 '배우가 읽어주는 사계절동화' 프로그램에 참여해 약 3개월간 환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다. 

"조카가 아홉 명이나 되다 보니, 조카들에게 동화책을 많이 읽어주곤 했었죠. 배우 생활을 오래하면서 대본 읽고 연기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다 보니 사실 큰 걱정 없이 갔었어요. 그런데 직접 가보니까 그동안 제가 책 읽어줄 때 재밌으면 까르르 웃고, 무서우면 소리 지르고 하던 그런 꼬맹이들이 아닌 거예요. 거동도 자유롭지 않고, 몸에 수많은 치료기구가 꽂혀있는 아이들을 보니까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미처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떨림과 반응을 보이면서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어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화구연을 좋아하는 자녀를 보고 기뻐하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가슴 벅찬 감동이었달 까요. 그래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무대에 배우로 서면서 많은 관객 앞에서 연기했지만, 이렇게 환우들 곁에서 책을 읽으며 연기하는 것은 그녀에게도 실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자신의 재능으로 누군가에게 기쁨과 행복감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 그녀는 지난해 종로문화재단이 한국연극배우협회와 함께 추진한 '액터닥터' 양성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액터(Actor)와 닥터(Doctor)의 합성어로 배우의 재능을 의료 활동에 접목해 장기입원환자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된 액터닥터 프로그램을 수료하면서 환우들에 대한 이해도도 한층 깊어졌다.

"그동안은 제가 가진 재능을 잘 살려서 아이들에게 책을 재미있게 읽어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면, 이 과정을 마치면서 기초병리학이나 심리학, 상담학 등을 공부하면서 이론적으로 의학지식을 배울 좋은 기회가 됐어요. 또 연극치료, 마임, 마술, 인형극 등을 배우면서 아이들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할 방법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직접 실습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죠. 

수업이 끝날 때마다, 강사분들께서 참여 소감을 물어보시곤 하는데 저는 늘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이 교육을 받으면서 저 스스로도 크게 힐링을 받은 느낌이었거든요. 병원에 짧게는 하루를 머물다 가는 아이들부터 장기적으로 몇 년간 이곳에서 사는 친구들도 있는데 특히 장기 환우들 같은 경우에는 이 병원 자체가 집이고, 유치원이고, 학교고 또 놀이터인 셈이잖아요. 물론 치료를 받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렇지만 오랜 병원 생활로 지친 환우들이 이곳을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넘치는 삶의 공간으로, 또 안식처로 느낄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요. 비록 저는 전문 의료인은 아니지만, 교육을 통해 배운 이론지식과 배우로서의 경험을 살려서 아이들이 더 많이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꿈틀꽃씨쉼터 앞에 선 백명희 배우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꿈틀꽃씨쉼터 앞에 선 백명희 배우 ⓒ 종로문화재단

 
그녀는 액터닥터를 수료한 이후에도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환우들을 계속 만나오고 있다. 

"6개월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만 가능한 봉사였어요. 저는 대학로에 살고 있으니, 집이 가까운 게 큰 장점이잖아요. 그리고 과거 봉사를 한 경험을 살려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막 한 달을 넘겼는데, 이 봉사만큼은 꾸준히 하려고 해요."

뜻깊은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그녀는 배우로서의 또 다른 비상을 준비 중이다. 극장에서 일하던 시기에는 다른 곳에서 캐스팅 제안이 올 때 바쁜 스케줄 때문에 거절을 해야만 했지만, 홀로서기를 한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공연과 극장을 신경 쓰느라 스스로의 꿈에 대해 돌아볼 시간도 없었어요. 극장 대표 번호를 제 전화번호로 연결해놓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이곳저곳에 들어온 캐스팅 제안을 직접 거절했어야만 했던 순간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안타깝죠. 이제는 저를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있다면, 충분히 잘할 자신이 있어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더 많이 뛰어다니면서 무대에 설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자신의 재능을 가치 있는 일들에 쓰며 세상을 훈훈하게 밝혀온 그녀가 맞이할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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