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질경찰> 메인포스터

영화 <악질경찰> 메인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이정범 감독은 사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감독이다. 그는 첫 장편 연출작인 <열혈남아>(2006)를 시작으로 4년 주기로 영화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가 연출한 <아저씨>(2010)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을지언정, 이 작품의 유명한 장면들은 끊임없이 만나왔을 테니 말이다.

어두운 세면대 앞에서 자신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미는 원빈의 모습이나 어린 김새론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아저씨까지 미워하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신은 여러 매체를 통해 지금까지도 반복적으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는 그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배우 이선균이 주연을 맡은 영화 <악질 경찰>은 이정범 감독의 신작이다. 각종 비리를 저지르며 뒷돈을 챙기는 경찰 조필호(이선균)가 전문털이범인 기철(정가람)과 함께 경찰 압수창고를 털기 위해 모의하다 대기업 태성그룹의 비자금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찰 압수창고가 폭발하면서 두 사건은 우연히 엮이게 되고, 폭발 직전 기철이 필호와 친구 미나(전소니)에게 보낸 동영상 하나가 사건의 실마리로 제시되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02.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복잡한 설정이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얽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영화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는 기준을 정확히 설정하는 작업이 중요한데, 그 기준은 남검사(박병은)와 필호가 조사실 안에서 거래를 하는 장면이 된다. 이 장면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그 지점을 기점으로 전반부에서 진행되던 A와 B 시퀀스가 후반부에서는 다시 A'와 B' 시퀀스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전반부에서 진행되는 A 시퀀스는 비리와 부패로 가득 찬 경찰 조필호 개인과 엮여있는 이야기들이며 여기에는 함께 작업하는 전문털이범 기철의 이야기와 경찰 압수창고가 폭발하고 난 뒤에 벌어지는 상황 일부가 포함된다. 한편, B 시퀀스에는 대기업인 태성그룹의 비자금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엮여있으며 정 회장(송영창)과 권태주(박해준)의 이야기와 경찰 압수창고가 폭발하고 난 뒤의 또 다른 상황 일부가 포함된다. 이렇게 보면, A와 B에서 유일하게 겹쳐지는 곳이 압수창고가 폭발하는 지점인데, 이 지점까지의 이야기는 A와 B가 개별적으로 그 이후에서 후반부가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A와 B가 결합된 이야기가 진행되게 되는 것이다.

03.

조필호와 남검사가 조사실에서 만나 서로의 요구를 – 기철이 남긴 동영상과 필호의 자유 – 놓고 거래를 하는 장면에서 전체 흐름은 크게 변화한다. 전반부에서 A와 B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이 상황 제시와 사건의 전개라면, 이 지점에서 '동영상'이 극의 중심에 등장하게 되면서부터 사건의 해결을 위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경찰 압수창고의 폭발 이후 함께 뒤섞이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왔던 것들이 A는 A'가 되고 B는 B'가 되어 재정립되게 되는 과정이다.

앞서 설명한 A와 B의 케이스처럼 간략히 소개하자면, A가 변화한 A'의 이야기 속에는 필호의 성장에 대한 테마를 중심으로 미나와 지원(박소은)의 플롯들이 함께하게 되고, B가 변화한 B'의 이야기 속에는 사회의 부정부패에 대한 정의 구현이라는 주제 의식 속에 필호와 태주, 남검사와 정 회장 등의 이야기가 함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 <악질 경찰>이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옮겨가는 동안 전반부의 A와 B가 후반부의 A'와 B'로 재정립되는 과정 속에는 부패한 경찰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적 부정부패로 전환하는 기회가 되는 동시에 부조리했던 인물 필호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물론, 그가 완전한 성장을 이루어냈는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04.

많은 작품들 속에서 인물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접할 수 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2014)처럼 육체적, 정신적 성장에 따른 정(正)방향의 성장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터미네이터처럼 악역이 선역으로 전환하는 식의 반(反) 방향의 성장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다만,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어느 한 작품, 혹은 한 인물이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성장이 완성된 상태로 영화의 엔딩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드라마 속 인물은 완전하지 않은 경우도 있기에 성장의 과정에서 성장을 멈추거나, 되려 원래의 모습보다 더 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심지어는 자신이 성장 과정에 있는 것처럼 보여 관객들의 시선을 속이기도 한다.

큰 틀에서만 보자면, 이 영화 속 주인공인 조필호 역시 악역이었던 인물이 선역으로 전환하는 식의 반(反) 방향의 성장을 보여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기철을 괴롭히면서까지 억지로 금고 털이를 시키고, 자신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어떤 나쁜 일도 서슴지 않고 하질 않나. 전반부에서 미나를 찾으러 다니는 일도 사실 그에게는 정의라기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한 까닭이 더 큰다. 그런 그가 변하는 지점은 역시 후반부다. 미나를 따라 간 불법 의료원에서부터 그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미나와 소희(권한솔)를 지키고자 하는 모습. 투신하기 직전에 어른들의 세상을 향해 일갈하던 미나의 모습을 본 뒤에는 또 한번 변화한다.

문제는 작품 속에 필호를 성장시키기 위한 플롯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과연 그가 결과적으로 온전한 성장을 이루었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 지점에서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사건이 종결되는 지점에서 영화가 끝나는 경우, 그 이후 인물의 삶을 추정할만한 근거가 필요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두드러지게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되려, 자신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아이들로 인해 그의 삶이 더욱 난폭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인물의 성장에 대한 지점에서만 보자면 이정범 감독의 전작인 <아저씨>의 차태식(원빈)이라는 인물과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악역까지는 아니지만, 불행한 사건으로 아내를 잃고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던 태식이 소미(김새론)를 만나 세상의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던 모습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이는 감독의 또 다른 작품 <우는 남자>(2014)에서도 등장하는, 그의 작품 속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설정이다.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05.

이 작품에서 미나의 역할은 어쩌면 주인공인 필호보다 훨씬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기철이 남긴 동영상의 행방이 중심이 되는 후반부에서 더욱 그렇다. 필호와 미나에게 남긴 기철의 동영상 두 개 가운데 필호의 영상은 이미 쓸 수 없는 상황이 된 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영화 속 표현, 장면들은 표피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더 직접적인 요인은 앞서 언급한 필호의 성장 시퀀스에 가장 중요한 시퀀스로 활용된다는 점이며, 부제에 가까운 지원과의 이야기를 작품의 메인 스토리 라인과 연결시키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어른들의 세상을 부정하고 고발하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아직 자신의 삶도 제대로 어쩌지 못하는 소녀가 자신이 속에 품고 있는 소중한 것을 더러운 어른들의 세상으로부터 지켜내고자 온 몸으로 부딪히는 모습을 통해 말이다. 자신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소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키고자 하는 것 역시 어른들의 세상과 자신의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실천을 통해 보여주는 부분이다. 지원의 트레이닝 복을 끝까지 자신의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것 또한.

06.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을 두고 이선균이라는 배우의 연기에 대해 생각보다 갑론을박이 많은 것 같다. 특히 그의 연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쪽에서는 지난 <끝까지 간다>의 캐릭터와 거의 동일한 연기라고, 그런 연기만을 골라서 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다소 억울할 법도 하다. <끝까지 간다> 이후 그는 이미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영화 < PMC: 더 벙커 > <미옥> <임금님의 사건수첩> 등을 통해 다양한 인물을 연기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지난 <끝까지 간다>의 건수 역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작품의 필호 역 또한 인상 깊었다고 하는 편이 더 공정할 것 같다.

이전의 장면에서 형성된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전후 양 쪽의 긴장 사이에 위치하며 후자의 긴장감으로 하여금 최대의 낙폭을 형성해 드라마틱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는 작품 속 웃음 포인트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이선균이라는 배우의 뛰어난 연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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