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 네이션> 메인포스터 영화 <원 네이션> 메인포스터

▲ 영화 <원 네이션> 메인포스터영화 <원 네이션> 메인포스터ⓒ 플레이리스트


01.
영화의 시작과 함께 철옹성 같던 바스티유 감옥의 큼지막한 벽돌들이 하나하나 해체되어 내려지고 한번도 햇빛이 들지 않았던 유리 장인의 작업장에는 처음으로 하늘의 빛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 빛보다 더 환한 미소와 환희가 차오르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관객들은 혁명이라는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사전적 의미의 봉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국민의회를 통해 가결되지만, 오히려 파리의 식량 공급은 더욱 더 어려움을 겪게 되고, 하층계급의 주부들은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하기에 이른다.

피에르 쉘러 감독의 영화 <원 네이션>은 프랑스 혁명 23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으로 절대주의의 상징물인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지던 순간에서부터 시작해 혁명 정부에 의해 루이 16세의 목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 1793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은 지구 상의 수많은 역사 사건 중에서도 해석에 대한 시각이 다양하고 논란이 많은 사건 중 하나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제 3공화국 시대, 혁명 100주년 이후를 지나면서 두드러지기 시작한 아래로부터의 혁명, 민중이 중심이 된 혁명의 시각에서 그려지고 있다.

프랑스 혁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레 미제라블>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원작 자체가 유명한 까닭도 있고, <레 미제라블> 자체가 높은 오락성으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원 네이션>은 프랑스 혁명의 시작 지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레 미제라블>은 그 이후 민중의 삶과 워털루 전쟁, 6월 항쟁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극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에 있다. 극의 드라마에 치중하고 극적 구성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 <레 미제라블>의 톰 후퍼 감독과는 달리, 피에르 쉘러 감독은 좀 더 절제된 표현과 함축적인 의미 형성으로 드라마보다는 사실 그 자체를 핵심적 사건의 나열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 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

▲ 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 플레이리스트


02.
이 영화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 세 가지는 그 당시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혁명을 주도하고자 했던 혁명 정부와 그들과 불안한 동행을 함께하다 죽음에 이르게 되는 루이 16세를 비롯한 왕가 사람들, 그리고 민중들이다. 세 집단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며 시대를 나아가게 하는 톱니의 날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왕국인 프랑스를 버리고 홀로 오스트리아로 탈주하고자 했던 루이 16세와 그런 그를 도중에 붙잡아 다시 파리로 되돌아 오는 민중, 그리고 그런 민중의 요구를 반영하여 새로운 체제를 세우고자 하는 혁명 정부의 모습이다.

이 중에서 가장 선행되어야 했던 것은 영화에서도 표현되고 있듯이 신성시 되고 있던 왕의 지위를 해체시키는 작업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왕은 신의 대리자로서 대우받았기 때문이다. 탈주 끝에 민중에게 붙잡혀 파리로 되돌아오는 왕과 왕가 일족이 마차에서 내려 숲 속에 용변을 보는 장면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그들 또한 민중과 똑같이 생리 현상을 해결해야만 하는 자들이며,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이전의 특권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 말이다.

다음은 민중을 그려내는 일이다. 몇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작품 속 민중들의 대화를 유심히 들어보면 당시 참정권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국민과 프랑스 혁명기의 국민은 의미가 조금 달랐다. 당시에는 가난한 이들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바질(가스파르 울리엘 역)이 대표적인 예로 등장한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가장 유명한 선언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보면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쓰여있지만, 그 국민이라는 집단은 지금과 달리 전체 시민들 가운데 참정권이 있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여성과 노약자, 장애인은 그 대상이 될 수 없었고, 건장한 청년 남성 중에서도 납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소유한 이들에게만 참정권이 주어졌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드라마적 요소를 그나마 이끌어내고 있는 바질과 프랑수아즈(아델 하에넬 역)의 내러티브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가장 하층민의 삶을 살던 두 사람이 프랑스 혁명기의 가장 중심에서 서로의 삶을 보듬으며 자신의 자리를 마련해가는 과정이 마치 프랑스 혁명의 흐름 전체를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루이 16세의 처형과 동시에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기는 것 또한 프랑스의 미래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이전의 왕정에서는 물론, 참정권이 생긴 이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문턱 앞에서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원 네이션>이 프랑스 혁명이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기조로 연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 거의 모든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했던 미약하지만 귀한 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 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

▲ 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 플레이리스트


03.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루이 16세의 처형 장면만큼이나 인상 깊은 장면은 루이 16세에 대한 처분을 놓고 약 700여명 사람들 모두 한 명씩 기명 투표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루이 16세에 대한 유죄 판결 당시 국민공회는 그 사안이 워낙 중요했기에 재판부에 맡기지 않고 국민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의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은 실제 당시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표현된다.

프랑스 혁명 자체가 급진적으로 이루어진 만큼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극단적인 상황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 당시에는 의식적인 신념에 의해서든 외부적 영향에 따라서든 어느 한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감독은 이런 지점까지 놓치지 않고 포착해 옮겨낸다. 특히 치열한 다툼으로 혈육을 잃은 이들은 감정적인 이유로 특정 진영을 선택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까지 민중의 대사를 통해 전달한다. – 국왕이 무죄라면, 혁명이 유죄가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루이 16세의 친척 뻘이 되는 이들까지도 그의 처형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사실 국왕을 죽이는 건 혁명을 일으킨 이들 쪽에서도 피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한다. 찰스 1세가 영국에서 참수당한 뒤에 벌어진 일들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크롬벨의 독재가 시작되었고 왕정은 복고되었다. – 하지만 프랑스 국민들을 등지고 오스트리아로 도망을 치고자 했던 루이 16세의 행동은 너무나 명백한 잘못이었고, 영화 속에서처럼 사형과 금고 사이에서 갈등을 빚지만 결국 그에게는 사형 처분이 내려지게 된다.

그리고 루이 16세의 처형. 그의 죽음을 직접 보기 위해 광장을 메운 시민들 속에서 루이 16세는 홀로 외로이 자신의 진짜 국민은 어디에 있냐고 외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그의 외모에 대한 평가와 빨리 죽이라는 성화뿐. 그의 편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는 단두대의 계단을 오르는 그에게 한 병사가 이렇게 말한다. '미끄러우니 조심하시오.' 이제 곧 죽음을 앞둔 이에게 주어진 배려라고 하기에는 너무 보잘것없고 의미도 없다.

영화의 처음에서 민중들에게 압송되던 왕가의 사람들이 권위를 잃은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권위의 상실은 권위를 갖고 있던 이들의 행동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두대의 칼에 의해 목이 잘린 루이 16세의 뿜어져 나온 피는 광장에 있던 이들의 머리 위로 흩뿌려지고, 그들은 그 장면을 지켜보며 즐거워한다.

영화는 여기까지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지만, 그 이후의 프랑스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짧은 공화정 시대가 끝나고 나폴레옹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 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

▲ 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영화 <원 네이션> 스틸컷ⓒ 플레이리스트


04.
처음에서 언급했던 대로 <원 네이션>은 드라마를 따르는 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따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전후 맥락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영화의 소재가 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사전적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다소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지점에 대해서는 관객들 스스로가 영화에 직접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창작된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물리적으로 정해진 러닝타임 내에 모든 맥락을 설명하기도 어렵거니와, 이 경우 국가별 혹은 관객 개개인이 갖는 역사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를 동일한 표현으로 모두 충족시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는 개인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충분히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오락용으로 소비하는 영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지점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로 삼고, 또 그 내용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원 네이션>을 대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오락성은 다소 떨어지는 작품으로 평가 받을 지도 모르겠으나 많은 관객들이 적극적이고 열린 태도로 받아들여 프랑스 혁명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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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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