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끼고 사는 여자, '이끼녀' 리뷰입니다. 바쁜 일상 속, 이어폰을 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백이 생깁니다. 이 글들이 당신에게 짧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편집자말]
 
헤이즈 헤이즈가 신곡 'SHE'S FINE'을 발표했다.

▲ 헤이즈 헤이즈가 신곡 'SHE'S FINE'을 발표했다. ⓒ 스튜디오블루

 
헤이즈의 신곡 'SHE'S FINE'을 처음 들었을 때 왜인지 모르겠지만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미세먼지 지적 때문인가 싶었다. 그런데 몇 번을 더 들어보니 미세먼지보다 더 갑갑한 것에 대한 지적이 있어서 시원했던 거였다.

가사가 좋았다. 사실 처음들었을 땐 "SHE'S FINE"이라고 반복하는 가사가, 이별해서 슬프고 안 괜찮지만 겉으로 "난 괜찮아"하는 반어법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액면 그대로였다. 그녀는 진짜 괜찮다. 그런데 그녀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이별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 괜찮을 거라고 자기 마음대로 지레짐작하고서 괜찮으냐고 신난듯 물어오며 참견한다. 그녀는 이게 안 괜찮을 뿐이다. 미세먼지보다 더 갑갑한 건 다름 아닌 타인의 주제 넘은 오지랖이었다.

39번 반복되는 "she's fine"

"아 괜찮다구요/ 행복하다구요/ 어쩌면 날 걱정하는 너보다"

가사의 첫 시작이 "아 괜찮다구요"다. 탄식어 "아"가 시작인 것이다. 이 한 글자에 그녀의 모든 심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너의 어설픈 위로와 참견에 나 지금 굉장히 귀찮고 짜증난 상태야, 라는 속마음을 거친 말 대신 "아"에 꾹꾹 눌러 담았다.

"she's fine she's fine she's fine"

그리고는 이 가사가 여러 번 반복된다. 끝까지 그녀는 차분하게 "괜찮다"고 말한다. 3인칭을 써서 "그녀는 괜찮아요"라고 덤덤한 척 말하고 있는데, 사실 그녀가 지금 차분한 상태가 아니라 예민해진 상태란 걸 가사 곳곳에서 눈치 챌 수 있다. 

일단은 "she's fine"이란 가사가 노래 안에서 총 39번 반복된다. 웃으면서 "저 괜찮아요^^" 하는 말투는 확실히 아니다. 이건 화가 나 있다는 신호다. 보통 너무 화가 날 때 "됐어, 됐다고, 됐다니까"하고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니까.

"그 사람의 소식을 내게/ 전하지 마세요/ 궁금하면 내가 직접/ 전화해볼게요/ don't need your help/ 부탁할게/ 방해만 말아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이 가사를 보면서도 그녀가 지금 '열 받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내레이션처럼 말하는 부분에서(뮤직비디오를 보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부탁한다) 마음속으로 외치는 말은 사실 '제발 좀! 부탁드릴게요'가 아닐까 싶었다. 억양도 한껏 고조돼서 소리치지 않았을까. 일부러 (조금은 비꼬듯이)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말하는 게 원래 더 센 한 방이니까. 

무례한 위로
 
헤이즈 헤이즈의 신곡 'SHE'S FINE' 뮤직비디오의 장면.

▲ 헤이즈 헤이즈의 신곡 'SHE'S FINE' 뮤직비디오의 장면. ⓒ 스튜디오블루

 

"뭘 기대하나요/ 울었음 싶나요/ 그러기엔 난 좀 기분이 좋아요/ 세상엔 재미있는 게/ 이렇게 많이 있는데/ 좋은 노래와 이쁜 옷/ 그리고 맛있는 것들도 넘치는데/ 사랑 말고도 난 좀 할 일이 많아/ 이만 가 볼게요"

그녀가 이별한 건 사실이지만 그녀는 기분이 우울하지 않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게 정말 많다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예쁜 옷도 입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자신의 '할 일'을 한다. 이게 진짜 그녀의 일상이다. 그런데 이런 그녀의 성향을 잘 모르는 타인들은 그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감정을 종용한다. "뭘 기대하나요. 울었음 싶나요"라는 가사는 이런 타인의 무례한 감정 종용에 피곤과 짜증을 느끼는 그녀의 마음이 여실히 묻어난다. 

너는 이런 상황이니까 이런 감정이겠지 하고 멋대로 생각하고서 괜찮으냐, 힘내라, 다 지나간다 하고 조언해오는 건 얼마나 실례인가. 사람마다 상황과 감정이 모두 다른데 당사자의 진짜 상태를 파악하려고 하지도 않고 말이다. 심지어 오지랖의 은근하고 얄미운 일례로써 그 사람의 소식을 내게 전하는 주변 사람들. 그들에게 그녀는 직접적으로 한 마디 던진다. "궁금하면 내가 직접 전화해볼게요." 속 시원해지는 대목이다. 이 노래에는 이렇게 대놓고 한 방 날리는 부분이 또 있다.

"아쉬운 건 미세먼지와/ 너의 오지랖뿐"

오지랖은 미세먼지만큼이나 답답하고 싫은 대상이다. 이 부분, 정말 '사이다'다. 싫다는 직접적이고 센 표현대신 '아쉽다'는 표현으로 별로 화 안 난 척, 차분하고 조곤조곤한 척하는 게 오히려 진짜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안 하는 쪽에 가까운 연애/ 난 지금이 편해 뭘 해도/ 밤에도 잘 자고/ 커피를 그렇게 마셔대도/ 하는 일도 다 잘 됐고/ 효도는 실천 중이고"

이 가사에서 그녀가 괜찮을 수 있는 배경이 어느 정도 밝혀진다. "안 하는 쪽에 가까운 연애"라는 구절이 설명해주듯 그녀는 원래 연애에 열정적으로 목숨 거는 타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진짜 괜찮은 거다. 이별하면 무조건 슬프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그 선입견은 곧 오지랖이다. 헤이즈가 작사한 이 곡 'SHE'S FINE'은 무례하게 선 넘어 오는 사람에게 날리는 따끔한 일침인 것이다.
헤이즈 쉬즈파인 쉬스파인 이끼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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