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가 18일 오후부터 박양우 문체부 장관 내정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왼쪽부터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대표,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대표, 김병인 한국영화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정상민 아우라픽쳐스 대표, 낭희섭 독립영화협의회 대표

영화계가 18일 오후부터 박양우 문체부 장관 내정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왼쪽부터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대표,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대표, 김병인 한국영화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정상민 아우라픽쳐스 대표, 낭희섭 독립영화협의회 대표 ⓒ 반독과점 영대위

 
"편하게 CJ 사외이사로 지냈으면 본인 자리가 아니라고 물러나야 하는데, 사람이 염치가 없어요. 삼성 이사를 경제부 장관 시키는 것과 뭐가 다른 건가? 다른 자리 맡기는 거야 모르겠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영화인들이 용납하기 힘든 거예요."
 
18일 오후 청와대 앞 천막에서 농성 준비를 하던 중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은 주위에 모인 기자들을 향해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를 강하게 성토했다.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아래 반독과점 영대위)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양 이사장은 "영화인들이 문재인 정부에 이런 반대를 보인 적이 없었다"며 "이번 인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기에 나서는 것"이라며 결의를 나타냈다. (관련기사 : "CJ거수기, 박양우 문체부 수장 안돼"... 영화인들 노숙 농성 돌입)
 
삼성 이사 경제장관 시킨 격
 
문체부 장관 내정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영화인들의 행동이 본격화 됐다.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박양우 CJ 사외이사 장관 내정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영화인들은 곧바로 청와대 앞으로 이동했다. 정지영 감독과 이민용 감독, 김병인 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등은 영화계를 대표해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시작되는 25일까지 릴레이 농성을 이어가기로 하고 이날 오후 2시부터 본격 농성에 돌입했다.
 
 청와대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있는 영화인들 반독과점 영대위 이은 공동대표, 정지영 감독, 이민용 감독, 김병인 공동대표

청와대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있는 영화인들 반독과점 영대위 이은 공동대표, 정지영 감독, 이민용 감독, 김병인 공동대표 ⓒ 반독과점 영대위

 
농성 첫날 주자는 이은 공동대표가 맡았다. 이 대표는 지난 2014년 여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광화문에서 영화인들이 단식 농성이 시작됐을 때도 첫 주자로 참여했다. 또 다시 노숙 농성을 시작하는데 대해 이 대표는 "지난 10년간 계속 이랬는데 특별하지도 않다"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이날은 명필름 심재명 공동대표와 결혼 25주년이었다고 한다. 저녁시간 농성장을 다녀왔다는 심 대표는 SNS에 올린 글을 통해 유감을 나타냈다.

"대기업 거수기 역할을 했던 사람이 과연 많은 영화인들과 관객의 바람인 '영화 다양성'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가 가져온 양극화와 획일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공정경제의 소망'과 정반대되는 인물을 내정한 청와대의 결정이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영화인들이 노숙농성까지 하면서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영화산업 개혁 작업이 좌초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영화산업을 개선하기 위한 영화인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면서 행동 수위를 높인 것.
 
스크린독과점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가 문재인 정부에서는 조금이라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영화인들 입장에서는 국정철학과 배치되는 인물이 장관 후보가 된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은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독과점 문제 해결에 고민 해오던 중 장관 지명 이야기를 듣고 혼란을 겪고 있는 상태"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김병인 한국영화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는 "문체부가 한국영화 투자를 지원한 이래 CJ 등 대기업들은 자신의 투자한 금액의 두 배까지 마음으로 쓰는 '레버리지 투자'를 해왔다"며 "규정위반이지만 편드 매니저와 이면계약을 맺고 정부 예산으로 투자 금액을 늘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다 2013년 하반기에 감사에서 적발돼 규제를 받았는데, 올해부터 이게 풀렸고 다시 예전처럼 모태펀드가 대기업 투자배급사에 불법 전용될 가능성이 생겼다"라며 "이걸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문체부 장관에 CJ 사외이사가 지명된 것이라 크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18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한 김병인 반독과점 영대위 공동대표(현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18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한 김병인 반독과점 영대위 공동대표(현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 성하훈

 
CJ 거수기, 대기업 규제 불가능
 
반독과점 영대위 측은 2018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영화상영 부문은 CJ CGV를 비롯한 세 개 회사가 무려 96.9%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는 비정상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장의 집중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HHI 지수 3610으로 심각한 시장 집중과 경쟁 제한 상태다.
 
기자회견에서 고려대 박경신 교수는 "지금 가장 유력한 독과점 판단 기준은 미국의 합병 허가 기준인데 이떄 독과점 지수가 2500인데, 우리는 지금 4000에 가깝다"며 "제대로 된 독과점 기준에 따르면 엄청난 독과점"이라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박양우 장관 후보자가 공동대표로 있던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가 작성한 한국영화 동반성장 모니터링 보고서에는 '독과점 지수가 4000이 넘어야 독점'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어떤 문헌에서도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또 2018년에 개봉한 독립·예술영화 496편의 관객 점유율은 4%, 한국영화로만 한정하면 점유율은 고작 0.5%에 지나지 않아 지속가능발전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적 사안으로 등장했다.
 
OTT(인터넷으로 드라마나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등 디지털 부가시장의 확장 추세도 당장에는 다양성을 보장하는 긍정적 요인이 되고 있지 못하고 있고, 디지털 시장 마케팅을 위해서 영화관을 쇼 윈도우로 삼을 수밖에 없어 영화관을 사실상 대관해서라도 개봉의 증거를 남기는 영화가 많아졌다. 이 영향으로 <칠곡 가시나들> 사례에서 보듯이 의미 있는 독립·예술영화들에 대한 상영배제 사례가 늘고 있다.
 
이의 개선을 위해서는 ▲특정영화의 스크린(상영회차) 점유 상한제 ▲모든 복합관(멀티플렉스)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설치 의무화 ▲대기업의 배급-상영 겸영 금지 등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CJ 사외이사로 거수기 역할만 했던 문체부 장관 후보자가, CJ로 대표되는 영화산업 대기업을 규제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영화계의 인식이다. "CJ에서 2억대 급여 받으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장관까지 맡겠다는 것은 몰염치하다"는 영화인들의 비판에는 박양우 내정자에 대한 큰 반감이 깔려 있다.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박양우 문체부 장관 내정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영화인들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박양우 문체부 장관 내정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영화인들 ⓒ 반독과점 영대위

 
동반성장 노력했다지만 불신만 깊어져
 
이에 대해 박양우 장관 후보자 측은 "영화산업의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계의 불신을 걷어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박 내정자는 지난 2013년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국영화의 성장을 위해 서울지역 직영관에서 배급회사 대 극장 간 부율(배급사와 극장의 입장수입 배분 비율)을 5대5에서 5.5대4.5로 조정하는 조치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내고 있다며 CJ CGV, 롯데시네마 등 상영관 측이 변화의 신호를 보낸 것으로 나름 평가할 만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이어 이행협약서의 실질적 이행과 관련하여 몇 가지 과제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서 ▲극장 부율 조정 전국적으로 확대와 ▲각 극장은 모든 개봉영화에 최소 상영기간 7일 보장 및 교차 상영 금지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고 ▲극장의 일방적인 할인행사 및 판촉활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영화계의 평가는 차갑기만 하다. 18일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영화계 인사들은 "부율 문제의 경우 지금도 진전이 없고 제기했던 문제들이 그대로인 상태"라며 "말만 그렇게 했지 행동은 하나도 안했고, 역으로 독과점이 더욱 고착화 됐다"고 박 후보자를 비난했다. "입장문 하나 낸 걸 가지고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영화의 원로인 정진우 감독은 "CJ나 롯데 등 영화산업을 수직계열화 한 기업에서 일한 사람을 장관으로 내정한 것은 심히 부적절하다"며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던 영화인들이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청와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앞에 마련된 영화인들의 농성장. 25일까지 교대로 릴레이 농성이 이어진다.

청와대 앞에 마련된 영화인들의 농성장. 25일까지 교대로 릴레이 농성이 이어진다. ⓒ 성하훈

 
반독과점 영대위 박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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