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바하> 포스터

영화 <사바하>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세상엔 마땅히 보살핌을 받아야 할 것들이 있다. 여리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을 따로 포장해서 옮기듯이, 작고 가녀린 것들은 보살핌을 받아야 마땅하다. 제 아무리 강한 야생의 포식자라도 어린 시절엔 가벼운 초식동물 하나 사냥하지 못하는 법이다. 하물며 이빨도 발톱도 없는 인간이야 어떻겠는가.

마땅히 보살핌을 받아야 할 것들이 거친 세상에 그대로 내던져진 경우를 우리는 적지 않게 마주친다. 너무 가난해서, 못된 부모와 선생을 만나서, 때로는 어찌할 수 없는 주변 환경 때문에, 이들은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마주하곤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란 단면을 보고 전체를 아는 것처럼 떠들길 좋아한다. 그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표면 아래 깃든 사연이란 대개 불편하고 복잡하기 마련인데, 이런 것들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세상은 더욱 불편하고 복잡한 것이 되기 십상이다.

선과 악이 뒤엉킨 세상 가운데서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정나한 역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 <동주>의 송몽규 역에 이어 <사바하>에서도 좋은 연기를 펼쳐 주목을 받았다.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정나한 역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 <동주>의 송몽규 역에 이어 <사바하>에서도 좋은 연기를 펼쳐 주목을 받았다.ⓒ CJ 엔터테인먼트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 대부분은 우리가 아닌 그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규모의 횡령을 저지르고 탈세를 하며 사기를 치고 갑질을 한다. 또 그들은 살인과 강도, 강간, 도둑질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뉴스를 보며 도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저리도 못된 짓을 저지르는가 하며 손가락질한다. 그리고 다시 저녁식사를 한다.

<사바하>의 주역 정나한(박정민 분)은 친아버지를 죽인 소년범 출신이다. 수감생활을 하던 중에 교도소를 찾은 김제석(정동환 분)에게 거둬진 그는, 악을 처단하는 사천왕 가운데 한 명으로 길러진다. 나한은 제석을 아버지로 섬기며 그의 명을 받아 위험을 무릅쓰길 꺼려하지 않는다. 친아비를 제 손으로 죽인 나한이 제석을 마음 다해 섬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가 겪었을 과거가 눈으로 보는 듯 선하게 펼쳐지는 것만 같다.

영화는 나한을 포함해 두 명의 사천왕을 등장시킨다. 다른 둘은 같지만 다른 이유로 세상을 떠난 상태다. 주목할 건 영화가 이들이 벌인 악행보다 의도의 순수함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사천왕은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제석을 위한 도구로 쓰이다가 끝내 버려지는데, 그 모든 순간에서 그들은 진실하고 용감하다.

영화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을 그린다. 선이 악을 돕고, 악이 선을 이루며, 그 모두가 상대의 모습을 하고 활개치는 세상에서, 진실이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무엇이다.

사슴동산 교인들의 위로는 거짓이었나
 
사바하 박목사 역을 연기한 이정재. 장재현 감독은 <검은사제들>의 강동원에 이어 또 한 번 매력적인 남자배우를 성직자로 등장시켰다.

▲ 사바하박목사 역을 연기한 이정재. 장재현 감독은 <검은사제들>의 강동원에 이어 또 한 번 매력적인 남자배우를 성직자로 등장시켰다.ⓒ CJ 엔터테인먼트

  
주인공인 박웅재 목사(이정재 분)는 종교단체의 비리를 폭로하며 명성을 얻은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내내 그가 좇는 것이 진실인지 돈인지는 명확하지 않은데, 어쩌면 둘 모두일지 모를 일이다. 버버리 코트를 입고 BMW를 몰며 불교 본당을 찾아 거래를 시도하는 박목사를 보며, 관객은 그를 속물이라 단정 짓기 쉽다. 하지만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감춰진 진실에 다가서는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그가 속물이 아니란 뜻은 아니다. 속물근성과 귀한 가치가 공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슴동산 같은 사이비집단이, 산 김제석을 미륵으로 숭앙하던 바로 그 종교가, 아비를 죽인 범죄자에게 새 삶을 주었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아 분노로 가득했을 나한에게 손을 내민 건 김제석뿐이었다. 비록 사천왕의 쓰임이 옳지 못했다 해도, 그 이전에 김제석과 그의 종교가 그들을 구제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편을 잃은 여인을 향한 사슴동산 교인들이 위로가 거짓이라고 누가 과연 이야기할 수 있을까. 때로 거짓은 많은 진실을 품고 있는 법이어서, 우리는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쉽게 재단할 수 없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이를 거두어 그 삶에 의미를 심은 건 선이었고 그의 손에 무기를 쥐어준 건 악이었다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세상은 춥고 쓸쓸하구나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양화는 공포와 추리물, 반전영화의 성격을 두루 갖췄지만 완급조절을 능숙하게 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긴 어려워보인다.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양화는 공포와 추리물, 반전영화의 성격을 두루 갖췄지만 완급조절을 능숙하게 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긴 어려워보인다.ⓒ CJ 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아이가 아버지를 찔러 죽이도록 방치한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가 다시 수십, 수백의 여자아이들을 살해하도록 한 세상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이것이 <사바하>가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영화의 끝에서, 박목사는 죽어가는 나한에게 그토록 아끼던 제 코트를 벗어 덮어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그는 세상을 돌보지 않는 신을 향해 부르짖는다.

"신이여, 당신은 대체 어디에 계시나이까?"

아무도 돌보지 않는 세상은 이토록 춥고 쓸쓸한데, 세상을 돌봐야 할 이들은 온통 나 아닌 누구에게만 책임을 묻는다. 선이 비운 자리엔 악이 그득하고, 그 악은 제가 악인 줄도 모른 채 다른 것을 겨냥하기 바쁘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세상은 그렇게 더욱 춥고 쓸쓸해져만 간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7703)에서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즐겨보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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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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