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7월 22일 > 포스터.

영화 < 7월 22일 > 포스터.ⓒ 넷플릭스

 
폴 그린그래스 감독, 영화를 참 잘 만든다. 리얼리티를 기본 장착하고 사회성 짙은 소재를 가져와 현장감 있게 연출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 비록 2편부터 참여했지만 할리우드 액션 촬영·편집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본 시리즈'가 대표작이다. 

한결 같은 스타일을 2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지만, 그의 영화는 여전히 수많은 관객을 찾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다분히 상업적이지만 마냥 상업적으로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게 그의 영화들이다. 그의 최신작 < 7월 22일 >은 오히려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정도이다. 

영화 < 7월 22일 >은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를 비롯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테러 사건을 소재로 했다. 동일 인물이 정부 청사에는 폭탄 테러를 하고, 노동당정치캠프가 한창이던 우퇴위와섬에는 총기난사 테러를 일으킨 희대의 충격 사건이었다. 

감독은 이 사건의 전말, 특히 사건 이후를 다큐멘터리적인 세심함과 액션 감독다운 긴장감, 현장감 다분한 연출로 불러들였다. 한없이 가슴 아프고 한없이 무서워지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영화를 통해 답을 함께 찾아보자. 

2011년 7월 22일 그날, 노르웨이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 테러는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영화 < 7월 22일 >의 한 장면.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 테러는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영화 < 7월 22일 >의 한 장면.ⓒ 넷플릭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대략의 줄거리는 찾아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7월 22일,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경찰제복을 갖춘 채 폭탄을 실은 차를 타고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위치한 정부청사로 향한다. 곧 폭탄이 터지고 8명이 사망한다. 

그 사이 노동당정치캠프가 열리는 우퇴위와섬으로 향한 그는 무차별로 총기를 난사해 69명을 죽인다. 그러곤 뒤늦게 도달한 특수부대에 자수해 오슬로로 향한다. 그는 또 다른 공격이 계획되어 있다며 더 이상 이민을 받지 말고 다문화주의를 철폐할 것을 주장한다. 

체포된 후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변호사가 그를 변호하는 주요 방법 중 하나는 그가 정신병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한편, 우퇴위와섬 테러에서 총 4발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빌리야는 가족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온 국민과 함께 테러범에 맞선다. 

한 개인의 목숨이 달린 싸움. 그 미시적 문제와 정치적 신념이 복잡미묘하게 오가는 그 거시적 문제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장이 영화에 담겼다. 저런 악마를 왜 죽이지 않나 치가 떨리기도 하며, 결국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야 하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시각각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사회파 영화의 교과서
 
 사회파 영화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 < 7월 22일 >의 한 장면.

사회파 영화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 < 7월 22일 >의 한 장면.ⓒ 넷플릭스

 
< 7월 22일 >은 '사회파' 영화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성 짙은 실화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드라마성 짙은 이야기를 넣어, '큰' 것과 '작은' 것의 균형을 맞추었다. 거시적과 미시적이라고 말을 바꾸어도 틀린 건 아니다. 

아무래도 테러범의 총기난사 장면이 가장 충격적인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전시상황은커녕 그저 캠프에 와서 즐겁고 알찬 시간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 이들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들이닥친다. 이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감을 넘어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체험하게 한다. 

더욱 충격적인 건 테러범 브레이비크의 주장이다. '다문화주의에 빠져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 와중에 본인은 나라를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고 그 일환으로 테러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는 궤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악행을 정치적으로 치환시킬 뿐 아니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이 사건의 주체가 되게끔 하려는 수법이다. 

이에 대응하는 노르웨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보면 매우 이성적이고 인권우선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것처럼 보인다. 테러범은 변호사도 선임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정부는 그를 '인간'이자 '시민'으로 대하며 그의 말을 차근차근히 듣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테러범을 어떻게 살려두며 어떻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다. 전 세계 최고 선진국다운 시스템을 갖추고 견고하게 쌓아올린 국가대계가 단 한 명의 테러범에게 간파당해 무지막지한 피해를 봤으니 말이다.

피해자의 싸움
 
 가해자 아닌 피해자의 싸움도 잊지 않는다. 영화 < 7월 22일 >의 한 장면.

가해자 아닌 피해자의 싸움도 잊지 않는다. 영화 < 7월 22일 >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는 피해자의 지난한 싸움 또한 잊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황을 교차 편집하여 그 자체로 메시지화되고 종국엔 깨달음을 전하는 데 크게 일조한다. 이 사건의 경우를 비추어볼 때, 우리 중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순 없겠지만(없어야 하지만) 피해자가 될 순 있다(이 역시 없어야 하지만). 정치의 일상화를 정치의 범죄화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건 근절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싸움은, 테러범에게 총 4발을 맞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육체적·정신적으로 다시 살아나다시피 하는 노력이 뒤따른 후, 스스로 사건의 주체가 되어버린 가해자와 동일선상에 위치해 이 사건의 주체가 되는 게 피해자의 1차 싸움이다. 

2차는 그 이후 극악무도한 범죄자와 억울한 피해자의 어법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이고 상식적인 어법을 구사하려는 테러범에 맞서 다른 어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건 곧 세계관의 충돌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는 공포의 대상이자 함께 하늘 아래를 영위할 수 없는, 죽이고픈 대상일 것이다. 하지만 빌리야는 인간애와 인류애를 역설한다. 

여기에 '인간애', '인류애'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가해자는 혼자가 된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며 테러는 계속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젠 그저 '공포'스럽고 만인이 멀리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세계를 뒤흔들 수 없게 된다. 반면 피해자는 모든 이들과 사랑, 우정, 믿음을 함께 하는 만인중일(萬人中一)이 되는 것이다. 세계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여전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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