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19 유관순 > 포스터.

영화 < 1919 유관순 > 포스터.ⓒ (주)마운틴픽쳐스

  
지난 2월 27일 개봉된 <항거: 유관순 이야기>(아래 항거)에 이어 유관순을 다룬 새로운 영화가 보름만에 또 한 편 선을 보였다. 바로 3월 14일에 개봉된 < 1919 유관순 >이라는 작품이다.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이 작품은 3개의 화법을 선보인다. 이를테면 탐방기 형식, 드라마 형식, 다큐 형식으로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전개하는 식이다.
 
극 중 유관순의 순국에 관한 뒤늦은 부고 기사를 외국 신문에 쓴 한국인 강 기자(황현주 분)는 1919년으로 돌아가 사건 현장을 둘러보며 그때 상황을 탐방기 형식으로 보여준다. 황 기자가 들르는 역사 현장에서는 배우들이 그때 상황을 드라마 형식으로 연출한다. 한편 전문가나 종교인들이 출연해 설명을 해주는 다큐 형식도 중간중간에 나타난다.
 
드라마 형식으로 제시되는 부분은 <항거>와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다. 서대문형무소 여성 감방 8호실에 수감된 유관순(이새봄 분)이 옥중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을 묘사함과 더불어, 수감 이전의 사건들을 중간중간에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영화가 앞서 개봉한 <항거>와 다른 점은, 유관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작다는 점이다. < 1919 유관순 >은 유관순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8호실 동료들의 비중도 함께 높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감방 동료들인 어윤희·권애라·김향화 등이 만세운동을 거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는 과정도 간략하나마 보여준다.
 
제목에는 유관순만 거명됐지만, 영화 속 비중을 놓고 보면 유관순은 주인공들 중의 1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이 영화는 유관순 중심의 관점을 극복하고 여성들의 독립운동을 좀 더 폭넓게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영화 < 1919 유관순 > 스틸컷.

영화 < 1919 유관순 > 스틸컷.ⓒ (주)마운틴픽쳐스

  
드라마 형식으로 제시된 부분에서 인상적인 것은, 일본 군경의 잔혹한 시위 진압과 더불어 경찰의 잔인한 고문이다. 영화 속의 고문 장면들은 그간의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보기 힘들었던 것들이다. 고문 과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관객이 스크린을 똑바로 보기 힘들 수도 있다.
 
예컨대, 보통 영화에서는 칼로 다른 사람의 배를 찌르는 장면을 묘사할 때 찔리는 사람의 얼굴을 비추는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이 영화에서는 칼이 옷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뿐 아니다. 쇠꼬챙이로 손톱을 찌르는 과정도 그대로 보여주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을 머리에 들이붓는 장면도 그대로 보여준다. 사람에 따라서는 끔찍해서 눈을 뜨기 힘들 수도 있다.

< 1919 유관순 > 속 고문 장면, 실제로는 더 끔찍했다
 
 영화 < 1919 유관순 > 스틸컷.

영화 < 1919 유관순 > 스틸컷.ⓒ (주)마운틴픽쳐스

  
그런 장면들을 보다 보면, 민족주의를 자극하려고 실상을 과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3·1운동 당시 옥고를 치른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의 고문은 훨씬 더 악랄하고 지독했다. 지금의 중학교인 여자고등보통학교 교원인 노영렬도 < 1919 유관순 > 속의 고문보다 훨씬 더한 고문을 겪었다. 노영렬은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들어가 있지 않다.
 
노영렬의 체험담은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역사학자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소개돼 있다. 이 책에는 노영렬이 학생으로 소개됐지만, 오늘날의 언론 보도에서는 교사로 소개되고 있다. 책에서 박은식은 "(1919년) 3월 하순, 서울의 여학생 31명이 감옥에서 출소하고는 곤욕을 당한 실상들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라면서 노영렬의 체험담 부분을 아래와 같이 전해준다.

"처음 수감되어서는 무수하게 매를 맞고, 그 후에는 발가벗겨져 알몸으로 손발이 묶인 채 마굿간에 버려졌다. 밤은 길고 날씨는 혹독한데 지푸라기 하나도 몸에 걸치지 못했다. 왜놈들은 예쁜 여학생 몇 명을 몰래 잡아가서 윤간하고는 새벽에 다시 끌고 왔다. 눈은 복숭아같이 퉁퉁 붓고 사지는 옭아 맨 흔적이 남아 있었다."
  
< 1919 유관순 >에 나오는 장면처럼 실제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지독한 고문 기법이 동원됐다. 십자가 위에 눕혀 놓고 쇠꼬챙이와 칼로 몹쓸 짓을 하는 일도 있었다. 박은식의 보고는 이어진다.

"신문할 때는 십자가를 늘어놓고 말하기를 '너희들은 신자이므로 마땅히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 그들은 여자고등보통학교 노영렬을 알몸으로 십자가 위에 반듯이 눕힌 다음, 이글거리는 화로를 십자가 옆에 놓고 쇠꼬챙이를 시뻘겋게 달구어 유두를 서너 차례 난자한 후에 결박을 풀어주었다."
  

뒤이어 칼까지 들이댔다. "그런 후에 칼로 사지를 오이 자르듯이 나누어 자르자 선혈이 비처럼 쏟아졌다"고 한다. 곧바로 새로운 고문이 이어졌다. 십자가에 묶은 채 공중에 매달아놓고 괴롭히는 것이었다.

"또다시 다른 십자가로 옮겨서 머리채와 함께 다섯 군데를 묶어 공중에 매단 채 누이고는, 고약을 불에 녹여 머리털과 음문, 좌우 겨드랑이에 붙이고 이를 식힌 후에 힘껏 잡아떼었다. 털과 살갗이 함께 벗겨져 선혈이 땅에 그득하였다."
  
그 직후, 가관이라 할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왜놈들은 이를 보고 크게 웃으며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노영렬과 일경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소위 우두머리라는 자가 '너는 그대로 감히 만세를 부르겠는가?'라고 물었다. 노영렬이 대답하기를 '독립을 이루지 못한다면 죽더라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원래의 감옥에 다시 가두고 며칠 동안 음식을 주지 않았다."
  
고문은 3일 뒤 재개됐다. 이번에는 십자가 대신 죽침이 동원됐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들고 고문을 재개했다.

"3일 만에 다시 악형을 가하였는데, 왜병 2명이 좌우에서, 한 사람은 여학생의 손을 꽉 잡고, 한 사람은 죽침으로 머리를 무수히 찔렀다. 그래도 굴복하지 않고 도리어 꾸짖으니, 왜병이 더욱 화가 나서 칼로 입술을 자르려 하였다. 우두머리가 이를 저지하며 '얼굴은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자 할 수 없이 옷을 던져주며 엄하게 경고하고 이내 석방하였다."
  
사실관계를 파악하거나 자백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세 운동을) 다시는 안 하겠다'는 각서를 받고자 그토록 잔혹한 고문을 가했던 것이다. < 1919 유관순 > 속의 고문 장면도 끔찍하지만, 실제의 고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훨씬 더 잔혹했다. 그런 고통을 인내하면서도 우리 조상들이 제국주의를 몰아내고자 온몸을 던져 맞서 싸웠다는 것은 백번·천번을 다시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 1919 유관순 > 스틸컷

영화 < 1919 유관순 > 스틸컷ⓒ (주)마운틴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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