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 문체부

 

"촛불혁명으로 선 이 정부가 이래도 되는 건지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에 대해 명필름 심재명 공동대표는 영화인들의 관심을 촉구하면서 SNS를 통해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남영동 1985> <그날, 바다> 등을 배급하고 <천안함 프로젝트> <다이빙벨> 제작 배급에도 관여했던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는 "흔들리지 않는 촛불을 기대했는데, 너무 쉽게 흔들리는 촛불이 되어버렸다"며 "기대한 만큼 허탈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고 생각을 표현했다. 그는 "대기업 중심의 문화 행정을 하겠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라면 이건 아닌 듯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을 지낸 황철민 감독은 "고시로 공무원 돼서 출세한 인간 중에서 인재를 찾겠다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비판했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을 무리해서 굳이 하려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문재인 국정철학과 반대되는 CJ 대변인
 
한국영화계가 박양우 문체부 장관 내정자의 임명 저지를 위한 총력전에 들어갔다. 주축은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반독과점 영대위)지만, 실제로는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단체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계 절대 다수가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독과점 영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영화인들의 면면을 봐도 무게감이 상당하다. 이장호, 정지영, 이명세, 이민용, 민병훈, 정윤철, 한지승 감독, 한국영화제작가협 이은 대표, 한국영화시나리오작가조합 김병인 대표,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성승택 공동대표, 전국영화산업노조 안병호 대표, 한독협 이사장을 역임한 김동원 감독 등 영화단체 대표자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배우로는 권해효, 문소리, 문성근, 정진영 등이 참여하고 있고, 부산영화제 이용관 이사장, 전양준 집행위원장, 송길한 시나리오 작가, 김난숙 영화사 진진 대표, 여성영화인 모임 채윤희 대표, 민병록 전 영화평론가협회장. 차승재 동국대 교수, 낭희섭 독립영화협의회 대표 등도 반독과점 영대위의 일원이다. 이들 중에는 문재인 정부 출범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인사들도 여럿이다.
 
 
 지난해 11월 반독과점 영대위 임시총회에 참석한 영화인들. 정지영 감독, 이장호 감독, 송길한 작가 등

지난해 11월 반독과점 영대위 임시총회에 참석한 영화인들. 정지영 감독, 이장호 감독, 송길한 작가 등ⓒ 반독과점 영대위

 
한국영화가 박양우 내정자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현 정부의 국정철학은 물론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금까지 기조와도 어긋나는 친재벌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대 이유는 반독과점 영대위와 민예총, 민주노총,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한국진보연대 등이 참여해 11일 발표한 성명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박양우 내정자의 CJ E&M 사외이사 경력과 함께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배급-상영 겸업과 스크린 독과점을 줄곧 옹호해 왔던 것을 결격사유로 강조하고 있다. CJ 대변인이나 다름없는 인사가 장관으로 임명하는 건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반독과점 영대위 대변인인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는 "성명에는 일단 가장 핵심적인 것만 넣었다"며 "(극장 및 투자 배급에 관여하던) 대기업에서 사외이사를 맡았던 인물이 장관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그간 진행돼 오던 대기업 규제를 위한 노력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영화 분야 개혁 작업에 재 뿌리는 인선이라는 인식이다.
 
CJ와 롯데 등은 영화산업에서 투자-제작-배급-상영을 장악해 수직계열화한 기업들이다. 케이블 TV 등 부가판권 시장에도 진출해 영화산업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 개봉 과정에서 벌어진 논란은 대표적이다. 비슷한 제작비와 홍보마케팅비가 투입된 영화인데도 자사가 배급하는 영화에는 스크린 배정을 많이 해 노골적으로 흥행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렇지 않은 영화들에게는 형식적인 스크린 수를 배정해 홀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영화계가 대기업들이 배급과 상영을 겸하며 문화 다양성을 입맛대로 파괴해왔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영화인들은 꾸준한 노력을 전개해 왔다. 주로 더불어민주당 쪽과 협력해 왔다. 재벌 친화적이면서 블랙리스트를 통해 영화계를 탄압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자유한국당에는 기대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규제 법안 발의에 보수정당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도, 관련 법안 발의자가 민주당 의원들이 중심이 된 이유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영화산업의 대기업 규제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고, 논의가 이뤄져 왔다. 현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영화계와 협력해 직접 대기업의 상영과 배급 분리를 골자로 한 법안 개정안을 발의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민주당 조승래 의원도 동일한 영화가 스크린 40% 이상을 점유하지 못하게 하는 스크린독과점 규제 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묶여 있는 상태다.
 
영화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이런 법안 개정 움직임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 2017년 당시 CJ CGV 대표는 "영화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대기업 규제 법안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에 대해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구체제의 반동"이라며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대기업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점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CGV는 거기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영화인들 역시 한 목소리로 CJ의 태도를 비판했다.
 
CJ 돈 받을 땐 좋았겠지만...
 
 
 2014년 <다이빙벨>에 대한 대기업 상영관의 차별적 상영 배정에 항의해 대학로 CGV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영화 및 시민사회 단체들

2014년 <다이빙벨>에 대한 대기업 상영관의 차별적 상영 배정에 항의해 대학로 CGV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영화 및 시민사회 단체들ⓒ 시네마달

 
따라서 박양우 장관 내정자에 대한 영화계의 문제제기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CJ E&M 사외이사로 대기업 돈 받을 땐 좋았겠지만 그런 행동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지 몰랐을 것"라는 영화인들의 지적처럼, 대기업에서 이익을 챙기던 사람이 장관을 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상당히 부도덕하게 보이는 것이다.
 
<칠곡 가시나들> 김재환 감독은 박양우 내정자를 "'CJ 트로이 목마'로 비유하면서 불신을 나타냈다. "고양이에 생선공장을 맡긴 격"이라는 성명 내용처럼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거센 반감이 표출되고 있다. "촛불 정부의 장관이 아닌 CJ 장관"이라거나 "문체부 장관 인사를 재벌기업에게 넘겨준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CJ의 충실한 앞잡이"로 규정된 상태에서 영화계는 어떤 타협도 불가능하다는 자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탄압을 이겨내며 줄기차게 저항해 왔던 한국영화의 특성을 고려할 때 박양우 내정자가 임명될 경우 문체부와 영화계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박양우 내정자 측은 한국영화배급협회 재임 당시 대기업 극장의 동반성장협약 참여와 부율 조정, 디지털 필름 상영시스템 이용료(VPF) 징수 문제 등에서 영화계의 의견에 동조하는 입장을 밝혔음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2013년 11월 한국영화배급협회는 호소문을 통해 제작사와 극장이 50:50이던 부율조정을 요청했다. 이후 부율은 제작사 55%, 극장 45%로 조정됐다. 또 디지털 필름 상영시스템(VPF) 이용료 부담을 중지시켜야 한다고 요청했다. VPF 논란은 대기업 극장들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소송까지 간 사안이다. 메가박스의 동반성장협의회 참여와 이행협약 준수 권고, 무료초대권 비율 3% 이내로 조정해야 한다거나 영화 개봉 전 10일간의 예매일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 역시 영화산업 대기업 규제를 원하는 영화인들의 주장과 같다.
 
내정 철회나 자진사퇴 마땅
 
하지만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는 고작 "몇 개 현안에 입장문 한번 낸 것을 갖고 독과점에 기여한 것을 덮으려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배 이사는 "그렇게 자신 있으면 이사회 등에서 대기업 독과점 문제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입장을 밝힌 발언 등이 있을 경우 공개하면 된다"며 "그런 게 없으니 오래 전 입장문을 갖고 영화계를 기만하려 한다"고 불쾌한 감정을 나타냈다.
 
다른 영화인들 역시 "일제 강점기 때 초반 독립운동에 나섰더라도 나중에 친일로 돌아선 사람들은 다 친일 민족반역자일 뿐"이라며, "지금까지 대기업에 기대 안락하게 살다가 이제 와서 예전 입장문 하나로 변명하려는 태도가 꼴사납다"고 맹비난했다.
 
현재 영화단체는 청와대에 내정 철회를 공식적으로 요청했지만,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만한 인사가 자신의 했던 행동을 돌아보지 않은 채 장관에 앉겠다는 것은 뻔뻔함의 극치라는 것이다. 한국영화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인사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영화인들의 자세기도 하다. 그 결기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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