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편집자말]
나는 운전을 할 때마다 최신 가요를 틀어 놓는다. 익숙한 노래를 반복해 듣는 것보다 잠도 덜 오고, 그러다 의미 있는 가사라도 발견하면 길에 쏟아 부은 시간이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차에 자주 동석하는 초등학생 아들은 본의 아니게 요즘 어른들이 듣는 가요를 많이 듣게 된다. 여느 때처럼 차트100곡을 몽땅 걸어 놓고 운전을 하고 있는데 아들이 갑자기 킥킥 거렸다. "너는 멍청이!" 이러면서. "엄마, 저 노래에서 지금 멍청이래. 도대체 왜 멍청이라고 하는 거지?" 아들의 질문 덕에 이 노래, 화사의 '멍청이(작사 김도훈, 박우상, 화사, 작곡 김도훈, 박우상, 화사)'를 유심히 듣게 됐다.

'멍청이'와 '심청이'
 
 화사 '멍청이'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화사 '멍청이'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주) 카카오 M

 
첫 소절부터 귀에 딱 꽂혔다. '너는 멍청이' 그러더니 계속 영어로도 'twit(멍청이)' 라고 반복한다. 이어 'I don't like it, Nobody likes it' 이라며 '나는 이런 게 싫고 아무도 이걸 좋아하지 않아'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무슨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직설적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 소절은 내 마음을 더 혼란시켰다. '가녀린 심청이'. 왜 '멍청이' 이야기를 하다 '심청이'가 나오는 건지, 게다가 '가녀린 심청이'를 두고 계속 'twit twit twit'하며 놀려대지를 않는가. 이 노래 예사롭지 않다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어 알다시피 심청이는 마음씨 착한, 효녀의 대명사다. 엄마 없이 홀아비 심 봉사의 젖동냥으로 자란 심청이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처녀로 자란다. 그러던 중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다는 말에 자신의 몸을 팔아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이 후 용왕을 만나 연꽃이 되어 떠오른 심청이는 왕비가 되고 맹인잔치를 열어 아버지를 만난다. 심 봉사는 딸을 만난 기쁨에 눈을 뜬다.

도대체 이처럼 자신을 희생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준 효녀 심청이를 도대체 왜 멍청이라고 하는 걸까. 정말 궁금했다. 다음 소절. 드디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밖에 모르는 사나이'. 이 노래 속에서 '멍청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자기 자신은 존중하지 못하고 상대방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헌신 vs. 희생

흔히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면,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사랑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도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서 열정, 친밀감, 헌신을 사랑의 3가지 요소로 꼽았다. 여기서 열정은 사랑에 빠져있을 때 느껴지는 강력한 감정, 친밀감은 상대방에게 정서적인 편안함과 우정을 느끼는 것을 헌신은 상대방을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삶에 함께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스턴버그는 이 세 가지가 균형 잡혀있을 때 가장 완전한 사랑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이들이 '헌신'과 '희생'을 착각한다는 것이다. '헌신'은 나 자신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희생'은 나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무조건 상대방의 욕구에만 맞추는 것이다. 심청이는 나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아버지를 살리려고 했다. 그런데 과연 심 봉사는 딸이 죽고, 자신이 눈을 뜨는 상황을 바랐을까? 심청이가 사라진 후 심 봉사는 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시력을 잃은 것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물론, 심청전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는 희생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결코 기쁨이 되지 못한다.

때문에 화사는 '멍청이'와 '심청이'를 대등한 위치에서 사용했을 것이다. '한 번씩 주위를 둘러봐 너는 아파도 모르고 있잖아' 라는 부분은 자신이 아픈 것도 모른 채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상대방에 대한 답답함을 잘 표현한 소절이다.
 
 화사 '멍청이'의 앨범 재킷

화사 '멍청이'의 앨범 재킷 ⓒ (주) 카카오M

 
부적절한 희생이 일어나는 지점

그렇다면 친밀한 관계, 혹은 사랑하는 관계에서 부적절한 희생이 일어나는 때는 언제일까. 화사는 이 지점을 'You make me royal, You make me hero, You make me genius'라고 표현한다. '너는 나를 귀족으로, 영웅으로 천재로 만들었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를 한 없이 높여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이상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상화'는 상대방의 특정한 면, 혹은 전체를 매우 고귀하고 높은 것으로 추켜세우는 심리적 현상이다. 흔히, 사랑을 할 땐 상대방의 좋은 면을 보게 되고, 이런 면을 과장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내가 간절히 원하거나 선망했던 특성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다면 상대방을 높이고 스스로의 욕구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부적절한 희생이 일어나는 또 다른 지점은 '자기희생'의 가치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을 때다. 대부분의 문화권은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고귀한 가치로 여긴다. 특히, 여성들은 오래도록 남성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착한 여성'이라는 가치를 오랫동안 주입받아왔다.

때문에 내가 나의 욕구를 생각하고, 건전하게 충족하는 것 마저 '이기적'일까봐 걱정하고, 타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며 사는 것은 일종의 가면을 쓴 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상호 존중이 일어나는 진솔한 관계로 나아가기 보다는 한 사람의 희생에 의해 관계가 유지되는 불건전한 '종속'관계가 되고 만다.

일방적인 희생의 결과
 
 화사 '멍청이'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화사 '멍청이'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주) 카카오 M

 
이런 부적절한 희생의 결과는 무엇일까. 화사는 이 또한 분명하게 알려준다. '주는 게 많아. 근데 왜 너만 불행해질까. 나를 위해서만 숨을 쉬니까. 너무 외로워 보여.' 화사의 노래처럼, 먼저 희생하는 쪽이 불행해진다. 자기 자신의 욕구는 알아채지도 못한 채, 상대방의 욕구만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희생하는 대상의 반응이 삶의 전부가 된다. 따라서 상대방이 나의 희생을 받아주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온통 상대방에게만 매달리게 되고, 혼자 있거나 상대방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 땐 한없이 외롭고 불행하다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희생하는 상대방을 둔,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파트너가 있는 사람은 행복할까? 화사가 '주는 게 없지. 근데 왜 나도 불행해질까'라고 노래하듯,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어쩌면 상대방보다 더 심한 심리적 갈등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들이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죄책감이다. '내가 멍청이 너를 병들게 한 싸가지' 라는 소절은 나만을 위해 사는 상대방을 보며 느끼는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를 탓하는 소절이다. 또한, 답답하고 숨이 막혀올 것 같은 구속감을 느낀다. 끊임없이 나를 맞춰주는 상대방을 보며, 오히려 자신의 세계가 침범당한 듯 한 느낌을 갖게 된다. '내가 늦더라도 기다리지마' '나를 위해서만 숨을 쉬지마'는 이런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

사실, 일방적이고 부적절하게 희생하는 사람의 깊은 내면에는 자신을 '착한 사람'으로 포장해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파트너에게 지나치게 잘해줌으로써 미안한 마음을 유발하고, 상대방을 자신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만드니 말이다. 이런 사랑은 위험하다. 때문에 화사는 이를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욕심이 널 밀어내니까'라며 희생하는 모습에 숨겨진 이기적인 마음을 읽어낸다. 이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다. '우린 길을 잃었어' 라는 화사의 외침처럼.

일방적인 '희생'의 덫에서 벗어나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일방적인 희생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상화, 즉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 떠받들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희생이라면, 이상화의 기제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상화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내가 가지고 있으나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나의 긍정적인 면을 상대방에게 투사하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즉,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좋게 생각하는 상대방의 모습이 내 안에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방의 좋아 보이는 것을 무작정 높여 받들기 보다는 내 안에 숨어있는 그 모습을 찾아내 계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나 역시 상대방처럼 멋진 사람으로 느껴지고 보다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

'자기희생'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경우라면, 스스로의 욕구를 존중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 전,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인지,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구분해보는 것이 좋다. 의식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파트너와 함께 해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마 상대방이 훨씬 더 편안해하는 것을 곧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기에 매달린 예수는 희생과 사랑의 대명사이다. 그런데 이런 예수조차 그냥 '네 이웃을 사랑해야한다'가 아니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 자신을 먼저 존중하고, 나를 잃지 않는 선에서 사랑에도 헌신하자. 그럴 때 자신은 외롭고, 사랑하는 이는 숨 막히게 하는 '멍청이'가 되지 않고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사 '멍청이'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화사 '멍청이'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주) 카카오 M

 
"너는 멍청이
twit twit twit twit
I don't like it
Nobody likes it
가녀린 심청이
twit twit twit twit
I don't like it
Nobody likes it

너는 멍청이
나밖에 모르는 사나이
가녀린 심청이
한 번씩 주위를 둘러봐
너는 아파도 모르고 있잖아
You make me royal
You make me hero
You make me genius
주는 게 많아 근데 왜 너만 불행해질까
나를 위해서만 숨을 쉬니까
너무 외로워 보여
 (후략)"

- 화사 '멍청이' 가사 중에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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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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