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소중한 인연과 깨우침을 준 종로, 그곳으로 회귀하다

어려서부터 쭉 종로에서 살면서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워왔기에 종로는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상작가인 정재진에게 늘 소중한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꿈과 현실의 양 극단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예술을 향해 끊임없이 구애를 펼치던 대학생 시절, 그녀는 가수 전인권의 삼청동 자택 이웃으로 살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체득하기도 했고,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집이 산 속에 격리되어 있다 보니 아무리 소리쳐도 잘 들리지 않을 만한 아득한 곳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외로움을 넘어 고독을 뼈저리게 느끼던 시간이었죠. 전인권 선생님과는 이사 첫날 우연히 마주쳐서 알게 되었고, 제가 예술가 지망생이란 걸 알고 참 잘해주셨어요. 가끔 선생님이 연주하면, 저도 건반을 치면서 즉흥 연주를 하기도 했고요.

저도 그때는 배고픈 예술가 학생이니까 선생님이 중국집에 전화하셔서 저희 집에도 매일매일 볶음밥을 배달해달라고 하신 거예요. 제가 뭘 시키면 장부에 본인 이름을 달아놓으라고 하시면서요. '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먹어. 사람은 배가 불러야 돼!'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해요. 덕분에 1년 넘도록 잘 먹고 버틸 수 있었어요. 예술가로서 대선배님이시기도 하지만, 제게는 가족처럼 따스하게 대해주셨기에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요."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전인권과 우연히 가회동 골목에서 마주친 그녀는 그의 콘서트 소식을 듣고 그간의 감사했던 마음을 재능으로 보답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까지 제가 받은 것들을 보답하고 싶어서 2주 동안 콘서트에 참여했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영상 소스 중에서 노래 분위기에 맞는 영상들로 무대를 채워드리고, 사소한 것들까지 챙기면서 거의 비용을 받지 않고 공연을 도와드렸죠."
 
 전인권 콘서트 후 촬영한 사진

전인권 콘서트 후 촬영한 사진 ⓒ ⓒ EPITAPH.Corp

  
과거의 추억과 예술적 정취를 찾아 그녀는 한남동에서 북촌 한옥마을로 작업실을 옮겼고, 한옥에 대한 사랑에도 눈뜨게 됐다.

"한남동에서 굉장히 바쁘게 작업하면서 일을 기능적으로 하게 됐던 것 같아요.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차에 다시 초심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자연친화적인 곳에서 영상을 구상하면서 영감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때마침 지금의 은존당을 만나게 됐어요.

사실 한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기에 집을 다시 재정비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한옥 예찬가로 유명한 마크 테토도 알게 되었고, 마크를 통해서 한옥 전문가분들을 소개받게 되면서 조금씩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죠."

 
 영감의 근원지인 은존당

영감의 근원지인 은존당 ⓒ ⓒ EPITAPH.Corp

  
 
 은존당의 내부

은존당의 내부 ⓒ ⓒ EPITAPH.Corp

  
그녀는 '박노수 미술관' 기념 전시의 공간과 영상 디자인을 맡아 종로에서 받은 영감을 고스란히 종로에 돌려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비록 박노수 화백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분과 작업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어요. 비록 대극장에서 했던 작업처럼 대규모 작업은 아니었지만, 저의 시점으로 작업할 수 있어서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박노수 미술관' 기념 전시에 참여한 정재진 미디어아티스트

'박노수 미술관' 기념 전시에 참여한 정재진 미디어아티스트 ⓒ ⓒ EPITAPH.Corp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에 과감히 도전하며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이제는 부족한 예산이나 제작한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추게 된 그녀다.

"이제는 텍스트를 읽고 나서 바로 이미지가 연상되고, 그걸 투사했을 때 어떻게 보일지 까지 다 파악이 되거든요. 그러다보니 '관객들이 이 영상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그 몰입감에 집중해서 작업하고 있어요. 제작 환경이 확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영상 활용의 방법을 결정하는 것도 필요한 운용 능력이라고 생각하기에 거기에 맞춰서 아이디어를 내려고 노력해요. 투자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면, 장비 팀에 이야기해서 과감하게 시도하기도 하고요."
 
 이름 자체로 브랜드가 된 정재진 미디어아티스트

이름 자체로 브랜드가 된 정재진 미디어아티스트 ⓒ ⓒ EPITAPH.Corp

 
정재진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지금도 그녀는 지난 2월 22일부터 블루스퀘어에서 막을 올린 <그날들> 공연에 참여한 데 이어, 광주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와 함께 색다른 서커스 공연을 준비 중에 있다.

또한 '2018평창동계올림픽 1주년' 공연인 '정선아리랑'에도 참여하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는 그녀는 영상의 세계를 더욱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이전 기사 보기] 정재진이라는 이름의 브랜드, 공연영상의 패러다임 바꾸다 http://omn.kr/1ht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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