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최근 종영한 <왕이 된 남자>는 '여진구의 발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9살에 데뷔해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소년> < 1987 > 등 대표작이라 할만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15년 차 배우에게 발견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표현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연기 잘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고, 매력적인 배우인 건 진작부터 알았지만, 이 정도로 다양한 매력을 가졌을 줄은 미처 몰랐다.  

tvN <왕이 된 남자>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불과 7년 전 개봉해 1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그래서 걱정되기도 했다. '짙게 드리워진 배우 이병헌의 그림자를, 24살의 배우 여진구가 떨쳐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우려는 <왕이 된 남자> 첫 회 만에 쓸 데 없는 걱정이 돼 버렸다. 미쳐버린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얼굴의 광대 하선. 여진구는 상반된 성격의 두 인물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이병헌의 그림자를 완벽하게 떨쳐냈다. 

하지만 6일 <왕이 된 남자>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여진구는 "하선과 이헌이 맞붙는 장면은 전부 다시 연기하고 싶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1인 2역은 생각보다 더 많은 상상력이 요구되더라. 내 표정을 확실히 알아야하고, 감정을 어떻게 썼는지 기억하고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두 캐릭터가 만났을 때 어우러지는데, 이게 정말 쉽지 않았다. 많이 무서웠다. 정말 중요한 장면들인데 내가 맞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처음 이헌과 하선이 만나는) 1회 엔딩 장면을 보고 안도했지만, 하선이를 더 섬세하게 연기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그의 박한 자기 평가와는 별개로, 시청자 반응은 호평일색이다. 특히 미치광이 왕 이헌 연기는, 기존에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배우 여진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 쏟아진 연기 호평, 작품의 흥행까지. 이보다 좋을 순 없을 성과다.  

"도전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칭찬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선배님들께 많은 것들을 배웠고,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연기에 대한 자세나 방향성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원작을 천만이 넘는 관객이 봤다. 원작이 신경 쓰였을 것 같다. 
"드라마 시놉시스가 원작의 느낌과 많이 달랐다. 감독님 처음 만났을 때도 우리가 리메이크이긴 하지만, 원작을 지우고 재창조해야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작을 빨리 털어내고 새로운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야 했다."

- 광대 하선과 왕 이헌이라는, 상반된 두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많이 신경 썼나. 
"이헌을 연기할 때 가장 걱정한 부분이 시청자분들이 이헌의 매력을 못 잊으시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8회면 물러나야하는 캐릭터인데 이헌의 서사가 너무 안타까운데다, 캐릭터도 외향적이라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자칫 <왕이 된 남자>의 주된 스토리가 하선의 성장이 아닌, 이헌으로 보이면 어쩌나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최대한 악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하지만 표현해본 적 없는 감정과 표정이라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퇴폐적인 이헌의 모습을 연기하면서도, 대중에게 자신이 그저 '여진구'로만 보일까 걱정하기도 했다. 여진구와 퇴폐미. '안 어울려',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이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여진구는 "사실 방송 나가자마자 이헌 캐릭터로 욕이란 욕은 다 먹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좋아해주셔서 의외였다"며 웃었다. 시청자들의 칭찬을 받고 "훨훨 더 날 수 있었다"면서. 

1인 2역은 8회에 이헌이 도승지 이규(김상경 분)의 손에 죽으며 끝이 났다. 원작인 영화에 비할 때 드라마가 명백하게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 중요한 지점. 하지만 작품 초반 여진구 연기력에 대한 찬사는 대부분 이헌에 대한 것이었다. 

- 이헌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헌을 더 길게 연기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 같다. 
"이헌이 죽고 나서 너무 흥분됐다. 드디어 2막이 시작된다는 거니까. 사실 굉장히 파격적인 설정이었다. 왕을 죽여도 되나?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전개였지만, 드디어 '왕이 된 남자'라는 제목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잖나.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가 많이 됐다. 다만 이헌의 마지막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가장 안타까워보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악에 받친 이헌의 표정 속에 담긴 두려움도 표현하고 싶었다."

- <왕이 된 남자>의 주인공은 이헌이 아니라 하선이다. 둘 다 본인이 연기한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이헌에게 쏠리는 반응과 이헌을 연기할 때 받은 더 큰 칭찬이 딜레마가 됐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부분이 <왕이 된 남자>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내가 연기하지만, 두 캐릭터가 다른 인물로 보인다는 거니까. 사실 연기할 때는 이헌이 재미있다. 극 중 모든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역할이지 않나. 실제로 이런 인물을 연기할 땐 내가 중심이 돼서 시선과 연기를 쏟아낼 수 있다. 

하지만 하선이는 많은 것을 드러내고 행동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시점이 되는 인물이다. 자칫 잘못하면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는 역할이다. 두드러지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하선이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보여드려야 했다. 시청자분들이 '갑자기 쟤가 왜 저래?'라고 의문을 느끼시면 안 되니까, 그런 점에서 하선이가 더 어려웠다."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 아역배우일 때 '사극천재'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으로 '사극전문배우'라는 수식어까지 생겼다. 
"너무 감사하다. 한 분야에서 전문이 됐다고 하니, 이제 전문 장르를 더 넓혀야겠다.(웃음) 사극은 신분이라는 게 있고, 사극 톤의 범주를 벗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표현이 한정적이다. 이런 부분이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했는데 <왕이 된 남자>를 하면서 많이 익숙해졌다. 스스로 전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니 너무 감사하다. 이젠 다른 장르에도 전문이 되기 위해 달리겠다." 

여진구는 9살이던 2005년 영화 <새드무비>로 데뷔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됐고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시작은 자의보단 타의가 컸을 테고, 얼굴이 알려지는 직업이다 보니 다른 꿈이 생기더라도 쉽게 다른 길을 가기란 쉽지 않다. 이 사이에서 많은 아역 스타들이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진구는 "일찍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건 굉장한 행운"이라면서 "연기라는 표현 예술은 내게 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연기를 놓기는 힘들다"며 웃었다. 

- 9살 꼬마 여진구가 24살 청년으로 자라는 동안 배우 여진구도 아역 스타에서 성인 연기자로 자연스럽게 성장한 것 같다. 이렇다 할 논란도 없었고, 별다른 굴곡도 없었던 것 같은데 여진구에게도 슬럼프가 있었을까?  
"있었다. 연기의 방향성을 잃어 힘들었다. 영화 <화이> 이후였던 것 같은데 그때 처음으로 많은 분들에게 칭찬 받고, 상도 받고 하다보니 그 기대에 계속 부응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작품 속에서 원하는 캐릭터도 생겼고, 이런저런 욕심이 생겼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더라. 내 연기를 보면서 왜 이것 밖에 못 하나 싶어 화도 많이 났다. 

그래도 다양한 작품, 장르, 역할에 도전하면서 잘 이어왔다고 생각한다. 분에 넘치는 역할들을 맡았고, 선배들에게 많이 기대기도 했다. <왕이 된 남자>를 통해서는 더 확고하게 배운 게 많고. 어떤 자세로 연기해야하는 지, 연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 차기작을 빠르게 정한 것도 빨리 연기가 하고 싶어서였다."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 아역과 성인의 경계를 무난하게 넘은 것 같다. 
"성인 연기자로 변신해야 한다는 고민이 없진 않았지만, 그게 주된 고민은 아니었다. 나는 연기를 오래도록 하고 싶었고, 연기를 놓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자연스럽게 아역 이미지도 벗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1~2년 안에 인정받고 배우 그만둘 거 아니니까 당장 오늘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더 먼 미래를 보고 연기했지만, 버티는 과정은 힘들었다. 20대가 두렵기도 했고, 이렇게 버터기만 해도 괜찮은 건지 싶기도 했다. 얼른 30대, 40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나를 믿을 수 있을지 몰랐다. <왕이 된 남자>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다. 스스로도 에너지가 달라진 걸 느낀다."  

- 배우는 대중의 평가를 받는 직업인데, 데뷔 이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언젠가 받게 될 부정적인 평가가 두렵진 않나.  
"한 번 좋은 평가를 받으면 계속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은 게 사실이다.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꼭 좋은 평가만 받아야지!'하는 고집은 아니다. 칭찬해주신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지금은 이런 욕심이 충만하게 오른 상태다." 

- 대중은 배우 여진구를 <왕이 된 남자> 이전과 이후로 나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여진구는 이 기대치를 어떻게 충족시켜줄 건가. 
"무거운 질문이다. 매 작품마다 같은 고민을 한다. 하지만 연기할 인물에 대한 이해, 몰입도에 대한 고민이지, '<왕이 된 남자> 보다 더 사랑 받아야지' 이런 고민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왔고, 길게 연기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그래서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래서 차기작을 빨리 정했다.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얻은 자신감과 고집을 잃지 않고 싶다. 지금은 '사극 전문'이라는 칭찬을 들었지만, 계속 노력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면서, 나중에는 모든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다음 작품(호텔 델루나)은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인데 다양한 장르, 다양한 캐릭터로 새로운 질문을 계속 던지고 고민하고 싶다." 

- 여진구에게 <왕이 된 남자>는 어떤 작품으로 남게 될까. 
"새로운 시작? 15년 동안 연기해왔지만, <왕이 된 남자>를 기점으로 배우로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늘 진지했지만, 더 진지하게, 겸허하게 연기에 임할 거다. 그런 마음을 굳건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왕 이헌과 왕과 똑같은 외모의 광대 하선 역할을 맡은 배우 여진구.ⓒ 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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