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쩌다 로맨스> 포스터.

영화 <어쩌다 로맨스> 포스터. ⓒ 넷플릭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 <귀여운 여인>을 좋아하던 소녀 나탈리(레벨 윌슨 분)는 어머니의 조언 "현실은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말을 새겨 들으며 성장한다. 그가 '로맨틱 코미디'를 비난하고 사랑을 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탈리는 잘 나가는 건축 회사에 다니는 실력 좋은 건축가다. 그러나 회사에서 그는 무시 당하는 존재다. 회사 동료들은 그에게 쓰레기를 대신 버려 달라고 하거나, 프린터 수리 기사에게 전화하는 일 등을 시킨다. 그는 이러한 불합리한 대우에 대응하기가 여러 모로 힘들다.

그나마 동료 조시와 조수 휘트니가 주인공을 응원해준다. 두 사람은 그를 '실력 좋은 건축가'라고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조언을 주고 에너지를 불어넣기도 한다. 하지만 나탈리는 건축가로서 일을 하려 할 때 여전히 수많은 암초에 부딪힌다.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소매치기에 맞서는 나탈리, 가까스로 이겨내 도망치다가 기둥에 맞고 기절한다. 

병원에서 깨어난 나탈리,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온 세상이 무조건적으로 터무니 없이 아름답다. 잘생기고 키 큰 의사가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하고 밖에 나가니 역시 잘생기고 키 큰 남자들이 친절하게 대한다. 우연히 부딪힌 차에서 재벌 블레이크가 내리더니 한없이 호감 어린 눈과 자신을 바라본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를 건축가 아닌 조수로 생각한 사람이었다. 나탈리는 사고 이후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로맨틱 코미디 세상'으로 와 버린 것이다. 그녀는 원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로맨틱 코미디의 법칙을 따라야 했다.

영화 안팎의 영리한 행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어쩌다 로맨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어쩌다 로맨스>의 한 장면 ⓒ Netflix

 
<어쩌다 로맨스>는 영화 안팎으로 영리한 행보를 보인다. 외적으론, 북미에선 워너브라더스가 해외에선 넷플릭스가 배급을 맡아 흥행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동안 이런 류의 영화는 북미가 아닌 해외에서는 흥행은커녕 소개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안방까지 손쉽게 '침투'할 수 있는 넷플릭스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신 북미 시장은 워너브라더스라는 전통의 배급사가 공략했다.

영화 내적으론 <귀여운 여인>을 비롯 전통적 로맨틱 코미디를 고스란히 이용해 공감 어린 웃음을 이끌어냈다. 팍팍하고 아름다울 것 없는 현실에서 한없이 아름다운 로맨틱 코미디 세상으로 가게 된 주인공,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로맨틱 코미디의 정통을 하나하나 따라간다니. 그 자체로 아이러니를 동반한 풍자이기도 하다.

코믹한 겉과 통렬한 속

로맨틱 코미디 세상으로 가서 겪게 되는 황당한 일들, 즉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금발 여성인 주인공 나탈리에게 쏟아지는 잘생기고 키 크고 돈 많은 남자들의 호감 어린 눈빛과 애정 어린 행동들은, 겉으로는 코믹하지만 속으로는 통렬하다.

<금발이 너무해> <아이 필 프리티> 등의 영화도 생각나게 하는 이 영화는, 사실 로맨틱 코미디의 온갖 클리셰들을 나탈리와 함께 아무 생각 없이 하나하나 경험하고 느껴보는 것도 재밌다. 물론 이 재미가 슬랩스틱과 블랙코미디의 경계를 잘 오가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생각거리를 던지는 데까지 가야 하는 숙제가 있다. <어쩌다 로맨스>는 웃음은 높은 타율을 기록했고, 생각거리는 낮으나마 타율이 있기는 했다.

영화는 시대에 맞춰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금발 여성'에서 '여성'만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면도 없지 않다. 뛰어난 건축가이지만 여성이어서 받는 의도적, 비의도적 무시 말이다. 영화가 말하려 한 나탈리의 깨달음은 '뚱뚱한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현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인정투쟁의 장, 로맨틱 코미디 세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어쩌다 로맨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어쩌다 로맨스>의 한 장면 ⓒ Netflix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일 것이다. 나탈리의 삶은 '나' 아닌 '다른 누구'에 의해 점철되어 있다. 거기엔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작용한다.

그녀가 가게 된 로맨틱 코미디 세상은 '진짜'는 아닐지라도 진짜 세상보다 훨씬 '좋은' 곳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건 영화적 재미를 위한 장치이겠지만, 실상은 세상에 대한 비조화와 자신에 대한 비인정의 발로이다.

세상은 아름다울 수 없고, 자신은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없다는 슬픈 생각과 의식. 그래서 이 로맨틱 코미디 세상은 그녀에게 '인정 투쟁'의 장이 된다. 자신은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 고로 세상은 아름답다. 또는 그 반대. 그녀의 문제는 그녀에게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 있었던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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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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