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그 존재의 증명이라는 건, 시험에 합격한다거나 외모를 가꾸거나, 좋은 곳에 취업하여 능력을 인정받는 것 등일 것이다. 그래서 늘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고 그 기준에 들기 위해 자만과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 여기서 평가하는 자들이 가진 기준은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많은 부분 그 기준에 들어가지만 여전히 외모적인 부분과 보이지 않는 사회적 등급이 그 평가에 포함된다.

사회적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성별, 키가 크고 작음, 돈이 많고 적음, 부모님의 계급, 동성 연인의 유무 등 직접 드러나진 않지만 어떤 평가를 할 때 은연중에 점수에 영향을 준다. 현시대는 그런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공개적으로 드러나 있고 가능하면 그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능력만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유리 같은 장벽은 존재한다. 특히나 성별에 의한 사회적 차이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유리 장벽 중 하나다.

처음으로 여성이 단독 주연을 맡은 마블 영화
 
 영화 <캡틴 마블> 장면

영화 <캡틴 마블>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캡틴 마블>은 그동안 마블이 내놓은 히어로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이 단독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마블 히어로 시리즈는 페이즈 3(Phase 3)의 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그래서 <캡틴 마블>은 마블 시리즈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를 보여주는 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 캐롤 댄버스(브리 라슨)가 기억을 잃고 크리족 행성에서 눈을 뜬 상황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자신의 과거까지 잃어버린 채, 크리족의 팀 리더이자 스승인 욘-로그(주드 로)에게 훈련을 받는다. 그는 일대일 전투 수련 시 캐롤에게 이야기한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폭주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어야 해. 아직은 수련이 더 필요해. 늘 능력이 폭주하지 않도록 감정을 잘 컨트롤하도록 해." 때문에 캐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감정 컨트롤 능력을 키우는 데 더 시간을 쏟는다.

능력을 자제하고 정신을 다스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수련

캐롤이라는 캐릭터는 과거를 기억해선 안 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사용하기보다는 능력을 절제하고 억제하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위치는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지점에 있다. 언뜻 보면 스승인 욘-로그가 말하는 수련의 방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캐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가둬둔 채 그것 없이 정신으로 버텨가며 싸워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부각하기 어렵다. 특히나 영화가 배경으로 하는 90년대는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면 여러 번의 증명과정을 거쳐야 했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애를 봐야 하는 존재였고 남성의 영역인 군인과 같은 조직에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면 군대 내 남성들의 비웃음 속에 몇 번이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해야만 비슷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물론 남성들도 비슷한 고난의 과정을 겪지만 그 당시 여성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금은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편견이 존재한다.
 
 영화 <캡틴 마블> 장면

영화 <캡틴 마블>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여성 히어로 주연 영화가 마블 페이즈 3에서야 등장하게 된 것은 지금 사회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분위기가 되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영화 <캡틴 마블>은 캐롤을 자연스럽게 다시 지구로 귀환시키며 자신의 과거를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 와중에 퓨리(사뮤엘 잭슨)를 만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철저하게 조력자로서 도움을 주게 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여성과 흑인이 한 팀이 되어 사건에 참여하게 되는 것인데, 영화 중반 이후에는 우주에서 소외받은 외계 종족까지 가세하면서 일종의 사회적 힘이 떨어지는 존재들이 한 팀이 되어 거대 악에 대항하는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역시나 여기에 캐롤 댄버스 즉 캡틴 마블이 차지한 위치는 해당 집단의 중심이다.

페미니즘과 난민에 대한 마블의 관점

캐롤이 과거의 기억들을 다시 찾는 과정은 중요하다. 과거의 캐롤은 도전적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결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밝음과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한 인간이었다. 그런 캐롤이 알 수 없는 사고로 크리족 행성에서 눈을 떠 자신을 철저히 통제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깨어난 것이다. 옛날 프랑스혁명 초기에 여성들이 앞장서 혁명을 주도했던 것처럼, 캐롤은 과거 포기를 몰랐던 기억을 찾음으로써 소외된 자들의 선봉에 서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캡틴 마블의 능력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나 실험을 통해 얻게 된 것이 아니다. 우연히 방어 과정에서 얻게 된 것인데 그 거대한 능력을 극대화시켜 자유롭게 활용하는 건 그 자신이다. 그런데 그 능력에 대한 통제 방법을 깨닫는 건 가진 능력을 억제하는 장치를 통해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본 후에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캐롤이 자신을 임의로 통제하던 어떤 것을 파괴하고 벗어나는 과정을 볼 때 어떤 짜릿함이 있다. 그건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닌 캐롤 스스로 자각한 것이다. 그 자각으로 스스로의 힘을 통해 보이지 않는 유리 장벽들을 하나씩 깨나가기 시작한다.
 
 영화 <캡틴 마블> 장면

영화 <캡틴 마블>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승 욘-로그가 캐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캐롤의 능력을 믿지 않고 움츠러들게 만드는 현대의 사회 분위기와 맞닿아있다. 현대의 여성들도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는 데에 주변인의 눈치를 봐야 했고,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기보다 정신적으로 외부의 압력이나 자신의 스트레스를 다스려 그 상황을 그저 억누르고 참아내야만 한다. 최근에 조금씩 그런 장벽은 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 수많은 캐롤들이 자신을 억누르며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것을 깰 스스로의 자각이 필요하다.

캐롤의 자각은 우리 모두의 자각

캐롤의 자각은 모두의 자각이다. 결국 그가 하는 행동과 액션들은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약자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는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고, 그들이 돕는 건 다름 아닌 외계의 난민들이다. 영화 <캡틴 마블>은 페미니즘과 난민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를 영화에 직설적 담으면서 그것이 향후 마블 시리즈에 반영될 내용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사회의 유리 장벽을 깰 힘은 우리 자신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힘들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났던 과거의 역사를 다시 기억하고, 자신의 진정한 힘을 마음껏 발휘하여 사회적 약자와 같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유토피아적 상상이 캡틴 마블의 막강한 힘 속에 담겨있다.  

<캡틴 마블>의 주인공을 연기한 브리 라슨은 캐스팅 단계부터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낳았지만 막상 영화 속에서는 강력한 아우라를 뽐내며 주인공다운 연기를 보여준다. 자신감 있고 포기를 모르며 에너지가 넘치는 그는 캡틴 마블에 딱 어울리는 적역 캐스팅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위트 있는 캐릭터는 고양이 구스일 것이다. 꽤나 귀여운 구스는 영화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모두의 사랑을 받을 캐릭터다. 영화 자체로는 평범한 구성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캡틴 마블>은 다음 마블 시리즈의 개봉작인 <어벤저스 : 엔드게임>을 위한 징검다리 영화로서도 제 몫을 하고 있다. 영화적 재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미도 상당히 담겨있는 <캡틴 마블>은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가진 마블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캡틴 마블> 포스터

영화 <캡틴 마블>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