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현재 '낙태죄'가 합헌이다. 형법 제269조 제1항에 따르면 부녀가 약물 또는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제270조의 '의사'와 관련된 부분에 따르면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7년 전인 2012년, 헌법재판소는 "태아는 성장 상태와 무관하게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이므로 유전학적, 우생학적 이유가 아닐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낸 바 있다(2010헌바402).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 사이에서 태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2년 전인 2017년 2월 다시 낙태죄를 둘러싼 위헌소원 사건이 접수되었다. 4월 초 헌재가 특별기일을 잡아 선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에서는 '낙태'라는 단어에 담긴 부정적 함의를 고려해 가치 중립적인 '임신 중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다른 국가의 '임신 중절' 케이스를 살펴보자. 미국의 대부분의 주는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임신중절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이는 지난 1973년 위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로 판결'을 뒤집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Reversing Roe, 2018)는 40여 년이 지난 이후까지 미국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임신 중절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감독인 릭키 스턴(Ricky Stern)과 앤 선버그(Anne Sunberg)는 기본적으로 '임신 중절죄'를 위헌이라고 판결한 미국 연방 법원에 찬성하는 입장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다만 그들은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가 된 상황을 분석하고자 한다. 

로 대 웨이드 판결, 한 판 뒤집기?
 
 넷플릭스 다큐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 한 장면.

넷플릭스 다큐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 한 장면.ⓒ Netflix

 
1973년 미국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헌법으로 보장된다. 이를 두고 '로 대 웨이드 사건(Roe vs. Wade, 이하 로 판결)'이라고 부른다. 당시 임신 중절을 원했던 여성이 이름을 밝히기 꺼려해서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1973년을 기점으로 임신 중절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헌법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게 됐지만 많은 주에서 이후 이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해왔다. 로 판결을 무시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미주리 주의 경우 원래 가능한 병원이 여러 개 있었는데, 지난 10년 간 시술을 금지하는 많은 법과 규제들이 통과되면서 점점 더 시술을 하기 어려워졌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이제는 미주리 주에서는 단 한 군데의 병원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부인과 전문의인 콜린 맥니콜라스(Colleen Mcnicholas)는 임신중절이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 버린 것에 대해 씁쓸해 하고 있다. 그에게 중절 수술이란 당사자가 필요에 의해 선택하는 의학적인 조치일 뿐이다. 자궁 절제술이 누구에게 필요하다면 중절 수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사가 되면서 당연히 임신 중절도 자신의 업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주의 상황으로 더욱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는 전문 의사가 되어 필요한 이들을 위해 거주지인 세인트루이스를 벗어나기도 한다.

'보수적인 주'라는 단어로는 실감이 안 날 수도 있겠다. 그곳에서는 임신 중절 반대 운동을 위한 트럭이 길거리에 다닌다. ('매년 백만 명 이상이 헛되이 죽습니다'라는 문구를 달고 있다) "그냥 뒷짐 지고 여자의 선택이니 존중하자고 할 순 없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트럼프 지지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머릿속에 그려보라. 벌써부터 눈 앞이 아득해진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임신 중절 반대'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1973년 이전에는 한국과 같이, 미국에서도 임신 중절은 쉽지 않았다. 남성 의사들로만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허가를 받아야 했고, 그마저도 자신들은 책임지고 싶지 않다며 손을 떼기 일쑤였다고 한다. 부유한 백인 여성은 그나마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가난하고 불우한 처지에 놓인 이들(특히 흑인 여성)은 사망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다큐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 한 장면.

넷플릭스 다큐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 한 장면.ⓒ Netflix

  
새로이 생겨난 규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텍사스 주의 보건 안전법 171장에 따르면 중절 수술 최소 24시간 전에 뱃속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 언뜻 보면 이게 뭐가 문제인가 싶다. 그러나 텍사스가 지속적으로 규제 법안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사가 초음파 화면에 보이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주의 법은, '여성에게 생각을 바꿀 기회를 준다'는 명목 아래 만들어졌다. 이미 의사와 당사자 여성간의 상의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특히 종교 단체들도 '로 판결'을 뒤집기 위해 노력했다. 로 판결 이후 10년이 지난 1983년에는 렌달 테리(Randall Terry)에 의해 '구원대 (Operation Rescue)'가 설립되었다. 말 그대로 중절 위기에 빠진 아이들을 '구원'한다는 목적으로 정치적 로비를 벌이거나 해당 시술을 하는 병원 입구와 인근 도로를 점거하는 등 직접 행동을 감행해왔다. 그들의 구호는 이렇다. "우린 여기서 죽게 된 무고한 아이를 구하러 왔습니다" 그들은 병원을 차지해서 그들 본부를 차리기도 했다. 

임신 중절죄 폐지가 가져올 새로운 논의의 장
 
 넷플릭스 다큐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 한 장면.

넷플릭스 다큐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 한 장면.ⓒ Netflix

 
"임신 중절에 대한 도덕적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자궁에 뭐가 있느냐'는 거죠. (중략) 반대 운동을 하며 우리가 분노한 것은 무고한 생명을 뺏는다는 겁니다."

텍사스 생존권 위원회(Texas Right to life)의 존 시고(John Seago)의 말이다. 그는 '로 판결'을 공격할 수 있는 논리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말한다. 누구를 위한 생존권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생존권', '도덕'과 같은 수사를 사용하는 많은 임신 중절 반대주의자들은 어쨌거나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숭고한' 일을 뒤집으려고 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한 중절 반대의 흐름은 여성의 결정권을 짓밟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사실 임신중절에 대한 미국의 전반적인 여론은 이들과 같지 않다. 미국의 설문조사 업체인 갤럽이 2018년 실시한 인식 조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연방 대법원이 '로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하는 비율은 28%에 그쳤다. 하지만 임신중절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48%에 달하기도 했다.

물론 일부 공화당 세력의 입법 시도나 극우주의자들의 직접행동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제도권 정치나 일상에서의 백래시(backlash, 사회 변화 등에 대한 반발)가 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여성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인식 역시 변화하고 있는데, 그것을 막고 과거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우리는 임신 중절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중절이 바람직하다는 판결을 내려 달라는 것도 아니죠. 우린 여성이 임신을 유지할지 중절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지하는 겁니다."

변호사 린다 그린하우스 (Linda Greenhouse)가 1973년 당시 '로 판결'에서 제인 로를 변호하며 했던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은, '임신 중절죄'가 폐지되면 아무나 병원에 가서 수술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이 충분히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때나 가능하다. 당연하게도 그 수술은 여성의 몸에 굉장한 무리를 주는 일이다. 그렇기에 임신 중절에 대한 권리는 결국 여성이 자신의 몸에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권리다.

임신 중절죄가 폐지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결국 국가와 사회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40년 전에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이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아직 '합헌'인 한국은 갈 길이 멀다.

현재 한국에서도 임신중절과 관련한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016년부터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주장하는 여성모임 '비웨이브'(BWAVE)가 임신중절죄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개최했고, 지난 9일 19번째 시위가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렸다.

곧 있을 임신 중절죄 조항 위헌여부 선고 이후에도 우리는 좀 더 다양하고 심층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는 우리의 제도권 정치에, 그리고 시민 사회에 묻는다. 몸을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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